영국의 국민 투표 결과 결정된 브렉시트(Brexit) 사태는 불안과 혼란, 감정과 논리의 격돌로 치달으며 앞날을 점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영국 국민 가운데 특히 노년층 다수가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강하고 안온했던 시절의 영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영국이 1973년에 유럽연합(EU)의 전신인 EEC에 가입하게 된 것 자체가 대영 제국의 몰락과 경제의 곤란에 대한 필사적인 대응책 중 하나였다는 배경만 생각하더라도, 브렉시트 찬성 측의 역사적 기억과 논리는 다분히 잘못 재구성된 것이다. 물론 브렉시트의 찬반 이유는 보다 다양하고 영국 국민들의 감정선을 간단히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브렉시트의 혼란상은 1970년대 영국의 풍경을 담아낸 펑크 밴드의 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영국에서 펑크 록의 광풍이 조금은 지난 시기 활약했던 진지한 밴드 '클래시(The Clash)'는 1979년 발표한 앨범 <런던 콜링(London Calling)>의 동명 표제작에서 선동적인 연주와 함께 심각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 송출되는 가상의 방송에서 전쟁이 선포되었으니 소년 소녀들에게 벽장에서 나오라고 전하는 가운데, 밴드는 "빙하 시대가 오고 해가 가까워지며, 멜트다운이 예상되고 밀 줄기는 빼빼 마를 것이다", 그리고 "엔진은 멈추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런던이 잠겨 가는데 나는 강가에 살고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이 부분의 가사는 신문을 즐겨 읽었던 밴드의 조 스트러머가 같은 해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멜트다운 사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빙하 시대와 커지는 해는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기후 변화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가뭄으로 밀이 마르고 홍수로 템스 강이 범람하는 격변을 의미할 것이니 말이다.
1960년대 서구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정치적 충돌과 1970년대의 불만과 분노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좋은 시기, 경제의 선순환적 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고 회의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의 반영이기도 했다. 1972년에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가 출간되었고, 1973년에는 중동 전쟁과 함께 석유 파동이 일어났으며,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은 격화되었고,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노동조합의 파업도 줄을 이었다.
'런던 콜링'에 등장하는 비틀 마니아, 마약에 취한 젊은이, 경찰의 곤봉이 이 시절의 풍경이었다. 만연한 위기는 해결을 요구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이를 어쨌든 해결한 것은 비극적이게도 마거릿 대처의 철권 통치였다. 1980년대 중반의 광부 파업이 분쇄된 것을 상징적 분기점으로 하여 '영국병'은 치유되었고, 영국은 유럽의 맹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모델은 세계로 수출되어 30년 동안 권좌를 누렸다.
브렉시트 사태는 클래시의 불안과 분노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영국의 불안을 만든 원인이 한 세대가 넘게 해결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다. 핵 발전의 위험과 기후 변화의 위협은 더욱 높아졌으되, 그 세월 동안 이를 해결할 국제적 통제력은 제대로 강구되지 못했다.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자원과 노동 착취 경제는 이민자와 열등한 집단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를 낳으며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있다.
유럽연합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고 우리가 진정으로 탈출(exit)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런던의 방송이 지지직대는 잡음 속에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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