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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의 작은 승리…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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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의 작은 승리…아직도 갈 길이 멀다

[초록發光] 7차 장기 송변전 계획과 사회적 수용성

지난 6월 13일부터 한국전력공사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면 공지된 7차 장기 송변전 계획을 볼 수 있다. 2029년까지 핵발전소 13기, 석탄 화력 발전소 20기 등의 발전 설비 확충 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송변전 계획도 확정 공고된 것이다.

줄어드는 전력 수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수요 증가 예측을 토대로 석탄 화력과 핵 발전 증설을 중심으로 한 7차 전력 수급 계획에 근간을 두다 보니 대규모 전력 송전을 위한 초고압 송전로 증설 및 변전 설비 확충 계획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번 계획에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송배전 설비 계획 수립 목표로 "신뢰도, 경제성, 수용성이 조화된 보강 계획 수립"이 두 번째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주요 추진 과제로 송변전 설비 건설 관련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하는 것을 명시해두었다. 즉, 철탑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사회적 수용성이 우수한 초고압 직류 송전 방식을 확대하고 인구 밀집 지역 경과 선로에 대해서는 지중화 등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에 대한 합리적 수준의 보상 및 지원 제도 운영, 주민 참여 입지선정위원회 운영, 갈등에 대한 선제적 관리 방안 검토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신뢰도와 경제성이 조화된 최적 보강 계획 수립"을 세 번째 목표로 제시해두었을 뿐, 송변전 설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던 6차 계획에 비하면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밀양에 이어 경기 지역에서도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로 건설 반대 운동이 확산되자 이번 계획에서는 신한울~강원~신경기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계획을 신한울-신가평과 신한울-수도권 500킬로볼트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변경해 놓았다. 10여 년에 걸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의 성과로는 너무나 초라하지만 시민운동이 전력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송변전 계획에서의 사회적 수용성 방안으로 제시한 입지선정위원회, 갈등위원회 운영은 실질적으로 주민 의견이 반영되고 주민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 운영된다면 송변전 설비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탑 규모가 작아진 초고압 직류 송전이라는 신기술 도입이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의문이 든다.

해상 풍력 단지에서 생산되는 대규모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초고압 직류 송전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독일에서 여전히 송전로 건설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500킬로볼트로 전압이 낮아 765킬로볼트 교류 송전에 비해 약간의 전자파, 코로나 소음 감소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초고압 전류로 인한 전자파 문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약간 낮아진 철탑도 여전히 경관을 해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인구 조밀 지역에는 지중화를 한다고 해도 어느 구간을 지중화할 것인가, 이들 지중화 지역에 들어가는 농토의 피해는 없는가 하는 또 다른 문제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기술 설비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양상들은 단순한 기술 대체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막 송전로 계획과 연관하여 사회적 수용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우리 정부에 시사점을 줄만한 실험이 2014년부터 독일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주에서는 대단위 풍력 단지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남쪽 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해 380킬로볼트 교류 송전로 건설을 이행해야만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전력 송전로 건설이라는 점에서 석탄, 핵 전력을 위한 초고압 송전로 건설 계획에 비해 한국의 경우와 달리 기존 환경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지는 않지만 송전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 운동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활발하다. 독일 어느 지역보다 이곳 주민들은 시민 풍력 발전소 건설에 높은 참여율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송전 철탑 건설에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에너지 전환 환경부(정확한 이름은 에너지 전환, 환경과 지역 공간부)는 '동해안 송전로 구간 계획을 위한 대화'를 출범시켰다. 송전로 계획 확정 이전에 관련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송전로 설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라고 환경부는 밝혔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6월 중순까지 13차례의 지역 간담회 형식으로 열린 이 '대화' 프로그램에는 회의 사회를 맡은 시민 단체 'Deutsche Umwelthilfe', 송전로 건설을 담당하는 Tenne T 회사, 송전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 지역 단체와 주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송전로 계획에 관한 설명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문제 제기들이 이어질 수 있었다.

계획된 송전로 건설 구간 대신에 다른 구간으로의 변경이 이루어지며 구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지중화 요청에 따라 일부 구간을 지중화 시범 구역으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대화' 과정을 거쳐 2015년 말에 송전로 구간 계획이 확정되었고 2016년 3월 1일부터는 지중화 구간에 대한 또 다른 '대화' 프로그램을 5월 31일까지 진행하였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380킬로볼트 지중화 기술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에 이 지중화를 어느 구간에 적용하여 테스트할 것인가를 지역 주민들과 논의하여야 할 필요성에서 마련되었다. 지중화에 대한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설명은 물론, 농민 단체, 환경 단체의 지중화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 개진과 서면으로의 질의 및 제안 등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2016년 6월에 지중화 시범 구역이 결정되었다. 실제적인 건설은 2018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주의 실험에서는 지역 주민들은 어디로 초고압 송전이 들어올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고 이 위험을 피할 수도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위험만을 피하려고 하면 내 이웃이 위험을 맞게 된다는 것을 공표된 계획안을 보고 알 게 되었고 이를 위해 어디로 송전로가 계획되어야 하는지 건설 담당 회사와 합의를 본 것이다.

계획의 공개와 계획에 대한 소통이 초고압 송전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은 이런 사회적 과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초고압 송전의 위험을 기술적으로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수용성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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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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