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난다. 지난 회에 연재했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날, 같은 회사에 다니는 다른 직원이 찾아왔다. (☞관련 기사 : "팀장이 화장실서 전화해…성희롱 아니죠?") 30대 후반의 남성이었고, 당황함이 역력했다.
그는 한 달 전 회사 인사 팀으로부터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는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였다. 그가 소속된 노동조합은 노조 활동을 곱지 않게 보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출범해 자생 중인 소수 인력으로 구성된 강성 노조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속 노조원들에 대한 견제와 징계가 잦았다.
인사징계위원회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고 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장 내 성희롱이었다. 그가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직원에게 외모 비하 발언을 하고, 근무 시간 중 같이 담배를 피다가 음담패설을 하며 허리를 껴안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은 그 외에도 두 명의 다른 부서 직원이 비슷한 시기에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인사 팀은 다른 두 명은 신고 사실을 인정했다며 그에게 자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단기간에 근무 시간 중의 심한 성추행과 언어적 성희롱이 반복됐다는데 증거도 딱히 없었다.
그랬더니 여성이 그와 나머지 직원 두 명을 강제 추행으로 형사 고소했다. 회사에서는 고소 처리 결과를 보고 징계를 하겠다고 말했다. 직원 두 명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게 사과하고 고소를 취하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여성은 '그'가 사실 인정을 안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두 명에 대해 용서했지만 고소를 취하해 줄 수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두 명은 노조원이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일단 거짓말로라도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전화로 간단히 문의해 와서 대답해주었던 사건이었다. 강제 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고 문의를 해와서, 담당 수사관에게 대질 조사도 하고 거짓말 탐지기도 하겠다고 말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해서 소명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했냐고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상담 받은 대로 추가 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서와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단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강제 추행으로 고소를 당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해고를 당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다른 두 명은 가벼운 징계로 끝났다.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가 노조 간부인 탓이 아닌가의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피해자 지원을 집중적으로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가해자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 특히나 공교롭게 앞선 사건과 같은 회사에서의 일이라니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그런 것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이의 등을 떠밀어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그런 행동을 정말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이냐 물었다.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며 펄쩍 뛰었다. 몇 명 되지 않는 노조 간부들이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부당 해고되고 부당 징계되서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럴 수가 있겠냐고 강변하다가 울컥해했다.
고심 끝에 그에게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을 건너뛰고 해고 무효 소송을 하도록 조언했다. 해고 노동자 신분으로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개인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제 추행 고소 건은 검찰 송치 이후에 다시 출석해서 혐의를 부인하고 대질과 거짓말 탐지기 등을 요구하도록 조언했다. 증거가 없더라도 수사 기관이 부득불 이 사건을 기소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약식 기소라도 되겠지만, 그 때 이의 신청해서 형사 재판을 받자고 권유했다.
의뢰인의 말로만 진실을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혐의로 불기소가 되면 그런데도 해고를 한 것은 부당한 일이고,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무리하게 약식 기소가 됐다가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나면 부당 해고임은 물론이고 해당 회사는 물론이고 해당 지역 사회와의 유착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다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 발생한 사안이란 점에서 앞서 다루었던 사건과 비교하여 실제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조사하고 현저히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내리는 점에 대하여 차별 행위로서 인권위원회 등의 진정을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제대로 진정이 이루어지고 조사가 되려면 양 사건의 당사자 모두가 동의해야 할 것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잘못을 했다면 누구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잘못이 누구냐에 따라 책임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명백한 차별 행위이자 부당한 일이다. 절차적으로나마 원칙을 지켜야 할 회사나 국가가 이를 지양해야 할 것임은 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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