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은 이러했다. 어느 날 젊은 여성 고객이 강아지가 아프다며 동물 병원을 찾아왔다. 인근 카페에서 일을 한다는 여성은 다정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이는 그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지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상하게 그를 배려했다.
출근길에 그에게 들려 슬며시 자기 도시락을 싸면서 하나 더 쌌다면서 도시락을 넣어주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기러기 아빠였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기울었다. 둘의 비밀스런 교제가 시작됐다.
교제가 시작되고 얼마간은 오랜만의 연애가 달콤하고 좋았다. 그러나 이내 타국에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매일 인터넷 전화를 하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거기에 여성이 그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남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가 헤어지자고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여성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좋음과 부담스러움이 교차하면서 6개월쯤의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아내가 귀국을 알려왔다. 그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이 되지 않는 여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가 몰래 강아지를 간호하다가 잠든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사진 찍고, 그것을 빌미로 여성을 협박해서 성폭행했다는 혐의였다.
청천날벼락 같은 말이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으니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피의자조사를 받으며 사실대로 진술을 했다. 얼마 후에는 여성과 대질 신문도 했다. 그런데 여성은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다. 진지했고, 많이 울었다. 당황스러웠는데, 여성은 증거라며 그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제출했다. 그녀의 핸드폰에는 그가 모르는 그가 그녀를 협박한 문자들이 있었다. 이게 다 뭔가 싶었다. 당황한 사이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성범죄서 무고의 비중은 다른 범죄에 비해 결코 높지 않지만,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에게 정말 고소된 내용의 범죄를 한 것이 아닌지 재차 물었다. 사실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가볍게 처벌받는 방법이란 조언도 건넸다.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목소리가 흔들리더니, 종래에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었다.
그의 핸드폰에서 그가 보내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발송되려면 해킹이거나 누군가 그의 핸드폰을 이용해야 가능할 일이었다. 사건을 맡고 수사 기관에 확인한 바로는 이미 남자의 핸드폰을 디지털 복원했고, 문제의 문자 메시지들이 그의 핸드폰에서 발송된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가 결백하다면 여성이 그의 핸드폰을 훔친 적이 있거나, 그와 함께 있을 때 몰래 그의 핸드폰을 사용했을 가능성뿐이었다.
그를 다시 불러 질의 응답을 했다. 그는 여성과의 데이트 비용이나 모텔 비용을 절반씩 부담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들킬 것이 염려 되어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카드를 통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여성은 대부분 카드를 사용했다고 했다. 검찰에 의견서를 내고 여성의 카드 내역서를 확인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검찰에서 여성의 카드 내역서를 확인한 결과 반전이 일어났다. 여성이 그로부터 협박 문자를 받은 시간 중 절반 이상이, 여성과 그가 함께 있는 시간으로 추정되는 시간임이 밝혀졌다. 여성이 같은 날 때로 모텔에서, 그의 동물 병원 인근에서 문자 메세지가 오가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어딘가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같이 있는 시간에 험악한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고, 여성이 주장하는 사진이 발견되지 않았고, 남자가 지난 몇 달간 헤어져 달라고 했던 증거들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었고, 종래에 불기소로 처리가 되었다.
수사가 마무리될 무렵 남자가 여성에 대한 무고죄 고소 여부를 물어 왔다. 이 사건의 경우는 무고죄로 고소가 가능해 보이고 혐의 입증도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길어지고 더 많은 감정이 얽힐 것 같은데 괜찮은지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이후 그는 여성을 무고죄 고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원한 것은 여성과의 인연이 잘 마무리 되는 것이었다.
법은 꼭 필요하고, 얽혀있는 일상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언제나 법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이별하고 싶은 연인을 잡는 방법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사랑이 종래에 법으로 끝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이름을 빙자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빨리 구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매우 사적인 영역에 법이 개입하게 되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그 때는 법이, 더 많은 후유증을 막는 최선이 된다.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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