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이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그런 결핍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외로웠던 남자와 연민 많은 여자는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첫아이도 들어섰고, 양가에서도 그들의 결혼에 반대가 없었다. 순조로운 결혼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가진 결핍과 그늘은 의뢰인이 생각했던 것 보다 크고 짙었다.
남편에겐 의처증이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나아지겠지 싶었다. 그러나 첫아이가 태어나도 남편의 의처증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이가 많아지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의처증은 심해졌다. 남편은 아내를 자주 때리진 않았지만, 아내에게 돈이 생기면 도망갈 것을 걱정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집 명의를 아내의 이름으로 돌려놨으나, 그 아내에게 생활비는 주지 않았다. 아내를 술집으로 불러내, 그녀 보는 앞에서 유흥업소 여성을 옆에 앉히고 거침없이 끌어안고 스킨십을 하는 일도 잦았다. 의뢰인은 '아내'라는 이름표를 달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 15년차가 될 무렵이 되었을 때는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멍들어버렸다.
의뢰인은 긴 고민 끝에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의처증을 가진 남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이혼을 할 방법은 이혼 소송을 하는 것뿐이었다. 좀 더 난폭해질지 모를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거처를 옮겼다. 친한 친구가 남편의 늦깎이 학업을 위해 한동안 외국으로 가면서 비게 된 집을 쓰도록 도와주었다.
긴 고민 끝에 어렵사리 결심한 이혼이었던 만큼, 남편의 귀책 사유에 대한 증거들, 집문서와 처분이 가능한 유가 증권들이 확보된 상황이었다. 소를 제기하고 접근 금지 가처분도 받았다. 소송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의뢰인이 유가 증권 일부를 처분하고 현금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의뢰인은 어린 자녀들과 먹고살길에 대해 마음이 급했다. 현금이 생기자 주변에서 이걸 해보라, 저걸 해보자, 말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망할 일이 없는 체인점이라며 당장 결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럴듯했고,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급하게 결정하고 입금을 했다. 그러나 돈을 받은 지인은 종적을 감췄다. 의뢰인에겐 집문서와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월세 점포자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당혹스러운 금전 사기를 당하면서 자신감이 급락했다.
소송 내내 남편은 의뢰인에게 반성하고 있으니 돌아오라 얘기해 왔었다. 애들을 데리고 돌아오고 부동산 명의만 돌려주면 아무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뢰인은 이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명의도 돌려줬다. 당시 의뢰인은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재결합을 할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 사임해 달라고만 말했다. 이런 상황이 걱정 되어 집 명의는 돌려주지 말 것과 유가 증권만이라도 외부에 보관할 것, 남편으로부터 형식적으로나마 합의서를 받을 것을 조언했지만 말이 없었고, 듣지 않았다.
의뢰인이 집으로 돌아간 후 처음 얼마간은 평화로운 새 출발이 될 것도 같았다. 남편도 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급히 재산 관계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외국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이혼의 귀책 사유를 아내의 가출과 재산 유용으로 돌렸다. 의뢰인이 제기한 이혼 소송의 소 취하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동의서를 냈다. 의뢰인은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살 방법을 물어왔다. 기존에 진행해온 이혼 소송을 없앨 방법을 물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혼 소송도 민사 소송의 일종인 이상, 소송이 진행된 상황에서 원고가 소 취하를 원한다고 해도 피고가 동의하지 않으면 소는 취하되지 않는다. 피고가 청구인용을 주장하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다. 상대방이 끝까지 이혼을 원한다면 모든 걸 아무 일이 없던 원점으로 돌리기 어려워지게 된다.
게다가 의뢰인은 처음 부동산이 모두 의뢰인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재산 분할도 청구하지 않은 경우였다. 급한 대로, 청구 취지부터 재산 분할을 원하는 것으로 변경 신청을 했다. 그리고 원고는 이혼을 안 하고 싶으며, 하더라도 재산 분할과 위자료를 구한다는 것으로 청구 원인을 보강하도록 했다.
상황이 이러니 재판부가 이혼 청구를 기각하든가 재산 분할을 최대한 판단해주는 이혼을 인용해주든가 하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사건은 남편이 이후에 마음을 돌리면서 소 취하로 마무리가 되었다. 의뢰인이 그 후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으니 최소한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바라는 중이다.
결혼에도 준비가 필요하지만 이혼에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감행한 이혼 소송을 되돌릴 때에는 신중함과 준비가 당연히 요구된다. 준비할게 많으니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하듯, 더는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이혼을 한다. 그러니 이혼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결별로 덜 불행해질 건지 고민하고, 그 결정을 내렸다면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변호사는 그 고민을 들어주고 준비를 도와줄 수 있지만, 판단하고 준비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소 취하는 그런 결정과 준비를 되돌리는 것이다. 이혼 소송을 결행할 때보다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변호사와 향후 예상되는 문제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예방만한 처방은 없다.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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