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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와 역사적 회담, 왜 이렇게 찜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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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와 역사적 회담, 왜 이렇게 찜찜할까?

[기자의 눈] 억지 외교 성과 집착하는 靑, 쿠바에서만은…

청와대의 조급증이 도진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우간다 등 아프리카 3개국 방문 및 프랑스 국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을 열고 "우간다는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안보, 군사, 경찰 분야에서 협력을 중단하고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 보고서도 며칠 전에 제출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김 수석은 미 국무부 관계자가 '비공식적 외교 경로'를 통해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 사회 공조 강화 측면에서 우간다 무세베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을 "환상적인 성과"로 표현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찬은 공허하게 들린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상황을 보자.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기간 일본에서는 G7 정상 회담이 열렸고, 중국과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치열한 복마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방문해 미-일 동맹의 강화를 만천하에 과시했다. 우리 정상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보수 언론도 안이한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비판했다. 그런 와중에 아프리카 순방 성과가 갑자기 대북 정책의 일환으로 변모한 셈이다. 그것도 '비공식 외교 경로'를 인용해 미국이 칭찬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브리핑'해 알렸다. 아무리 급했더라도, 영 어색한 모습이다.

"환상적인 성과"라 하기에도 찜찜하다. 무세베니 대통령이 북한과 군사 협력을 중단한다는 발언이 언론을 타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우간다 정부 부대변인이 무세베니 대통령의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가 이를 정정한 것이다. 우간다 외교의 허술한 시스템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간단치 않다. 우간다 측이 외교적인 결례를 일으켜 북한에 메시지를 던졌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회담 내용에 '스크래치'를 내, 양국 정상 합의의 무게감을 약화시킨 꼴이 됐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외교 성과 부풀리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란 방문 과정에서 청와대는 설익은 MOU 체결을 금액으로 합산, 외교 성과로 공표했다가, 일부 부실 MOU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며 신뢰도를 상실했다. 프랑스에서는 그르노블 시(市) 방문을 창조 경제 정책을 위한 행보로 포장했다. 이 곳은 박 대통령이 1974년 6개월간 유학했던 곳이어서 "결국 '추억 여행'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정부의 의미 있는 외교 행보 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쿠바 방문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자꾸 불안감이 엄습한다. 쿠바 방문을 둘러싼 외교가의 해석들 때문이다.

쿠바와 관계 정상화 환영, 그런데 이 찜찜한 느낌은 왜?

윤 장관은 브루노 로드리게즈 쿠바 외교 장관과 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쿠바 간 정식 수교 가능성을 타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여러 면에서 접촉면을 넓혀 서로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어떤 시점에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즈 쿠바 외교 장관. ⓒ외교부공동취재단

북한과 쿠바는 특별한 관계다. 1960년 국교 수립 이후 쿠바 혁명의 상징적 인물인 체 게바라가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을 접견했다. 북한과 쿠바는 공통의 '적성국'인 미국에 대항하며 군사 분야에서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2013년 피델 카스트로가 밝힌 데 따르면 1980년대 소련이 군사 원조를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전형적인 군인인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동지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AK소총 10만 정과 탄약을 보내줬다"며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쿠바에 우리 외교부 장관이 방문한 셈이다. 북한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이같은 행보를 일관되게 '북한 겨냥 행보'로 보고 있다. 일본 언론 <요미우리신문>도 "지난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과 우간다를 방문하는 등 한국은 북한의 우방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북한 제재를 목적으로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식의 전략적 접근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특정 국가의 지정학적 이익을 목적으로 외교전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본 목적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이를 의식했는지,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윤 장관은 부르노 로드리게스 외교 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이어진 기자 간담회에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윤 장관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언론의 보도를 쿠바 정부가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주쿠바 북한 대사관이 한국어로 쓰여진 쿠바 관련 민감한 보도 등을 쿠바 정부와 공유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윤 장관의 말처럼 우리 정부가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꾸준히 접촉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는 쿠바에 수교 교섭을 처음으로 공식 제안했었다. 당시 남북 간 냉전의 분위기가 풀려가던 것과 맞물린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남북 간 대치를 강화하기 위해 쿠바에 수교를 제안하는 듯한 모양새로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와 관계를 회복한다는 '포지티브(긍정)'한 접근보다는 북한을 때리기 위해 쿠바와 관계를 튼다는 '네거티브(부정)'한 접근이다.

이번 양국 외교 장관 회담을 북한과 연관시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보다는 환경의 변화에 종속된 이벤트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쿠바가 자국의 외교 전략상 가장 큰 고정 변수인 대미 정책에 변화를 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쿠바 스스로 외교적 환경을 바꾸고자 하는 적극적인 인식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의 대화도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 쿠바 외교부 장관은 윤 장관과의 회담에서 편한 옷차람을 선보여 정장 차림의 윤 장관과 대조를 이루도록 했다. 양국 국기를 내걸지도 않았다. 회담 공개 문제에 있어서도 쿠바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북한을 의식한 조치다. 이번 회담의 무게감도 덜어내는 효과를 냈다. 우간다 정부의 행동처럼 '외교적 결례'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회담을 최대한 가볍게 보이려 애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실제 북한과 한국의 영향력은 쿠바 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측은 민간 교류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해, 한국인이 쿠바에 한인 식당 하나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지금까지 행태로 미뤄보면 우려되는 부분들이 없지 않다. 특히 쿠바와 수교 논의를 '북한 압박용'으로 지나치게 연결지으려는 부분는 우려스럽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에 그칠 수도 있다.

다시 한반도 주변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공세를 강화하며 중국과 마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등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일 정상은 북한 문제를 두고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여기에 사드 문제가 다시 튀어 나왔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미국의 입장에 그대로 끌려가고 있다.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대북 제재 성과라 하기에 애매한 결과물을 들고 온 후, 건강 악화를 이유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한국이 북한 문제의 당사국이 과연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주변 강대국의 의지대로 끌려가다 '쿠바와 수교 노력을 통해 북한을 압박했다'는 식의, 효력도 의심스럽고 결과물도 나오지 않은 '성과'를 내세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쿠바와 수교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 정부가 정치적 욕심을 지나치게 드러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외교는 '백년지대계'다. 근시안적 성과에 급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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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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