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인물인) 김철수 씨는 매주 토요일 돼지고기 한 근을 산다. 그는 돼지고기에 성욕을 느끼므로, 방 안에서 한 번 자위한 후 고기를 구워 먹는다. 김철수 씨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인물인가. 격렬한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전 인류의 99%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김철수 씨는 왜 잘못되었는가. 돼지고기에 성욕을 느끼는 게 이상하므로? 논리적으로 김철수 씨의 잘못을 질타하기란 쉽지 않다. 진화 심리학자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김철수 씨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했'으므로 도덕적으로 정당한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논리적이라고 착각하며 내리는 결정의 상당 부분은 실은 우리 마음에 의해 조종된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우리 마음을 '관광객을 태운 인도코끼리'에 비유한다. 어디로 갈지는 코끼리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조종하지 못한다. 추론은, 불행히도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길잡이가 아니다.
'극우적 학문',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학문' 식으로 오해받는 진화 심리학을 가벼운 사례를 들어 독자에게 설명하는 책이 나왔다. 한국 최초의 진화 심리학자로, 진화 심리학 대중화의 기수로 잘 알려진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본성이 답이다>(사이언스북스 펴냄)는 크게 마음, 폭력, 협력, 성(性)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눈 여러 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진화 심리학의 눈으로 세상을 엿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의 주제를 요약하면,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사람은 (이성이 아니라) 본성에 따라 움직인다. 사람의 행동, 사람의 문화, 사람의 제도는 모두 본성이 세웠다. 그리고 그 본성은, 수백만 년에 걸쳐 사람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원인이자 결과다.
이제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이야기는 정치와 관련된다. 왜 사람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로 나뉠까. 소득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지하게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양심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다르다’라고 패기 있게 답할 지도 모르겠다.
전중환 교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저 두 성향의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책에서 그는 전염성 병원체에 방어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사람은 보수주의자라는 가설을 소개한다. 실례로 그는 유럽 제국주의자가 아메리카 대륙에 옮겨온 천연두 때문에 원주민 75%가 사망한 사건을 든다.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실험 사례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배설물, 쓰레기, 구토물, 시체 등 병원체 매개물을 남보다 더 역겨워하는 사람이 대개 보수적이라는 게 최근 실험으로 밝혀졌다고 책은 전한다.
뒤이어 책은 현대 사회 문제로 넘어간다. 원초적인 혐오를 잘 느끼는 사람은 자연히 난민, 동성애자 등에도 보수적 입장을 가지게 된다. 실제 보수주의자에게 구더기를 먹는 상상을 하게 한 후 동성애자에 관한 나쁜 선입견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전중환 교수의 말끔히 정리된 문장 위에서 각 단락마다 풍부히 넘치는 낯선 연구 사례가 소개되고, 이에 더해 더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한 참고 서적까지 친절히 곁들여진다. 덕분에 진화 심리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찬찬히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불편함을 느낄 이가 적잖을 것 같다. 남녀 간 차이에 관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책은 왜 유독 남성이 성매매에 적극적인지, 왜 남성은 성추행한 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고 뻔뻔하게 말하는지, 왜 남성은 유독 포르노에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남성은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진화하다 보니, 이처럼 가벼운 성관계에 환장하는 동물이 되었다' 정도가 되겠다.
여성의 눈웃음이 친절인지 성적인 신호인지를 추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남성의 이야기를 대표적으로 소개할 만하다. 책은 두 가지 오류 가능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성적 의도가 상대방에게 실제로는 없는데, 있을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과대평가하는 오류'와 '성적 의도를 실제로 갖고 있는데도 없으리라고 과소평가하는 오류'다.
이 때, 소심하게 추론하는 바람에 여성과의 성관계 기회를 놓치는 건 수백만 년간 위험한 삶을 살아온 남성에게는 진화적으로 엄청난 재앙이 된다. 거친 자연에 내버려진 채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서 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는 차라리 '과대평가하는 오류'가 더 낫다. 따라서 남성은 상대의 의도를 성적으로 과대평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버렸다.
책은 이처럼 남성이 애초에 여성과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을 당당히 제기한다. 이는, 양성의 평등을 지향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높여야 한다는 지상과제를 안은 현대인에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야기로 들린다. 실제 적잖은 이가 진화 심리학을 나쁘게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강조한다. 진화 심리학은 '지진이 일어난다'는 말과 같이 과학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을 바라보듯 진화 심리학을 이해하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학에는 가치 판단이 없다. 이와 같은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남녀를 무조건 동등하게 교육해야'한다는 식이 아니라, 남성의 이와 같은 본성을 어떻게 잘 다스리는 방향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할 것이냐라는 게 저자의 대답이다.
이 책은 '남성은 원래 가벼운 성관계를 원하는 동물이니 성매매를 용인하라'는 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왜 이런 식으로 진화했는지 이해한다면,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더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 진화의 종착점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떤 영장류보다 깊이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동물이다.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을수록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동물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인류 출현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 우리는 절대 이기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제법 괜찮게 진화한 것 같다. (비록 수만 년 후에나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먼 훗날 지구의 남성은 더는 성매매에 집착하지 않는 동물로 진화하리라는 희망도 가져볼 만하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여성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향으로 남성의 진화를 촉진할 제도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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