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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능가하는 '디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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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능가하는 '디젤 게이트'

[기자의 눈] 연비조작이 아니라, 오염 은폐 사건이다

언론은 흔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특정되는 단기적 사건에 치중한다. 최근에는 사망자만 수백 명을 초래하고 피해자로 의심되는 사례만 수십 만명에 달한다는 가습기 살인 살균제 참사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제조업체와 정부가 5년 간 침묵한 끝에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 대통령까지 나섰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이나 대기오염처럼 모든 사람들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더 큰 참사는 주목하기 쉽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만시지탄이지만, '디젤게이트'가 마침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디젤게이트'는 디젤 차량이 내뿜는 배기가스가 겉으로 깨끗해 보인지만 사실은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독극물(질소산화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온 것이 들통난 사건이다.

'조작'이건 '조정'이건, '클린디젤'은 사기극


독일 자동차제조업체 폭스바겐의 디젤차들이 연비조작을 해왔다는 사실이 지난해 9월 폭로된 후, 국내에서 시판중인 수입자 11종, 국산차 5종 등 디젤차 16종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교통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실제 도로 주행에서 수입차 두 종을 빼고는 모조리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현행 실험실 기준치(1킬로미터 당 80밀리그램)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실험실과 실제 도로는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실험실 기준치를 초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초과한 정도가 3배에서 10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난 걸 보면, 실험실 측정 기준이 비현실적이거나, 실험실에서만 기준치를 맞추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폭스바겐의 '연비조작'은 연비와 배기가스 측정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려, 실험실에서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도록 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사기극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조작하지 않았다"는 디젤 차량도 '차량 보호'를 명분으로 실험실에서만 작동하는 장치를 장착해 '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계 디젤 차량 97%가 기준 초과"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를 기준치에 맞출 기술은 이미 있다. 하지만 디젤 차량 제조업체들은 마케팅 포인트인 연비와 출력,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피하는 꼼수를 써온 것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전세계 디젤 차량을 대상으로 한 가장 광범위한 최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제 도로 주행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공식 기준치를 초과하는 디젤 차량 비율은 무려 97%다. 특히 최소 25%는 기준치의 6배가 넘는다.

국내 시판 디젤 차량들은 2014년부터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는 유로 6형에 속하는데도 기준치를 초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질소산화물의 경우 유로6 기준은 '1킬로미터 당 80밀리그램 이하'로 유로5(180밀리그램 이하)보다 엄격해진 것이다. 유로6 기준을 충족한 디젤차는 국내에서 2014년 말부터 시판되기 시작했다. 작년 11월부터는 '유로6' 기준을 충족해야만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주행에서 유로6 기준치는 의미를 상실했다.

미세먼지로 바뀌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휘발유 차량이 1킬로미터 당 20밀리그램인 반면, 디젤 차량은 2014년 이전 출시된 경우 휘발유 차량보다 36배나 많고, 유로 6 기준에 맞춘 차량도 평균 8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환경부는 다음 달까지 검사를 마무리해 그 결과를 공식 발표한 뒤, 기준치를 넘는 차종에 대해선 판매정지나 결함 시정 등의 행정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또한 실험실 측정이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내년 9월부터 새로 출시되는 모든 경유차는 실제 도로 주행 검사를 받도록 규정했다. 실제 도로 주행 배기가스 기준치는 현행 실험실 기준의 2.1배인 168밀리그램이다

이런 식의 규제로 언제 도로에서 주행해도 괜찮은 디젤 차량으로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는 2020년까지 디젤 차량을 완전히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에서 디젤 차량이 사실상 독극물을 대량으로 뿜어내는 차량인 것을 알고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디젤 천국' 유럽연합, 당국이 조장


'디젤게이트'는 폐암의 최대 원인이 흡연이라는 학계의 이론마저 의심받게 만드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요즘은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의 최대 원인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이마시는 대기의 미세먼지, 특히 초미세먼지가 주범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기의 미세먼지가 어디서 발생하느냐 다시 따져보니, 최대 주범이 중국발 황사가 아니었다. 중국이 억울할 지경이다. 황사가 약해져 대기가 깨끗해 보여도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주범은 디젤 차량이 내뿜는 '질소산화물'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미세 먼지(PM2.5), 오존(O₃)과 함께 최근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3대 대기오염 물질'로 꼽힌다. 오존보다 훨신 더 많은 사람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극물이다.

특히 질소산화물은 그 자체가 세계보건기구 지정 1군 발암 물질인 미세 먼지를 유발하고, 오존 스모그의 원인 물질이기도 하다. 대기 중 초미세 먼지의 절반 가량은 기체 형태로 자동차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등과 결합해 오존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환경과학원 연구 등에 따르면 수도권 대기의 미세먼지 중 최고 40퍼센트 이상이 질소산화물에 의한 미세먼지로 드러났다. 초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것도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다.

환경부 조사 결과 국산 디젤 차량들 모두 기준치를 초과하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산차 제조업체들은 "우리는 조작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실 기준에서만 작동하는 장치를 장착해 배기가스를 '조정'한 것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조작이건 조정이건 '클린디젤'은 전대미문의 사기극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문제는 이 사기극은 사실상 유럽연합 등 규제 당국이 '공범'으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대부분의 디젤 차량이 판매된 유럽 소비자들에게는 배상을 거부했다. 유럽 시장까지 배상을 하다가는 파산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모양이다. 유럽연합에서는 특별한 장치가 부착된 검사용 차량으로 검사를 통과해도 되는 엉터리 규제뿐이라는 것이다.


디젤 차량에 대한 유럽연합의 규제는, 개인이 인터넷 보고 대충 만들어 팔아도 허용된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규제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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