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디젤'이라고 광고해 한국을 비롯해 열풍을 일으켰던 폭스바겐 그룹이 올해 상반기 판매량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등극했으나, 자칫하면 그룹이 파산할 지 모를 위기에 처했다.
자동차 리콜 사상 "결함이 아닌 속임수에 의한 리콜"이라는 전대미문의 범죄 행위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아우디 디젤 자동차 48만2000여 대에 리콜 명령을 내린 것이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23일 폭스바겐 그룹의 최고경영자 마틴 빈터콘 회장도 "전세계 1100만대 이상이 리콜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시인했다.
중요한 것은 리콜 규모가 아니다. '클린디젤'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였고, 이를 속이고 판매하기 위해 실험실 측정에서만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고 실제 주행에서는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왔다는 '범죄행위'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폭스바겐의 '클린디젤' 차종들은 실제 주행에서 도로 조건에 따라 최대 40배까지 산화질소 배출량이 늘어났다는 게 EPA 측의 설명이다.
기업의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는 미국 당국은 이 범죄행위에 대해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21일 이후 이틀만에 주가가 30% 넘게 폭락했다. 역대 대규모 리콜 사태에서 해당 자동차 업체의 주가 변동이 몇 %에 불과했다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다.
그 이유는 폭스바겐의 예상 벌금 180억 달러는 지난해 이 회사 순익의 6배에 달하며, 미국에서는 이미 집단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하반기에 8조 6000억 원의 리콜 비용으로 책정해 놓고 있다고 밝혔지만 리콜 비용도 수십조 원이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알고 있었던 속임수?
더욱 충격적인 것은 '클린디젤'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또 독일과 유럽연합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른 척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사실은 이미 '속임수 소프트웨어'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에 따르면, 독일 녹색당은 "독일 정부와 EU 집행위원회가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기술의 존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지난 7월28일 독일 교통부에 배출가스 차단장치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서 규제하지 않는 이유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교통부는 "EU 집행위원회의 견해는 이 차단장치를 금지할 방안이 아직은 실무적으로 폭넓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연방정부는 이러한 견해를 공유하며, EU 규정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 특히 자동차의 실제 배출가스량을 더욱 줄이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규정 개선작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디벨트>는 이 답변에 대해 "독일 교통부가 이미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사용하다 적발된 것과 같은 차단장치 기술의 존재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폭스바겐 클린디젤 차종은 4만 대가 넘게 팔렸다. 국내 환경부도 이미 클린디젤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의 엄명도 연구관은 지난 4월 자동차 전문지 <모토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클린디젤은 허구이며, 사실은 '더티디젤'"이라고 단언했다.
엄 연구관은 "'클린디젤’은 잘못 쓴 용어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하도 매연이 심할때 유로2 때 유로4쯤 되면 클린디젤이었다는 생각이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 그걸 붙이는데, 그건 일시적인 2002년도 유로2에 비해서 깨끗해졌다는 얘기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연히 클린디젤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잘못된 용어라고 기고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엄 연구관에 따르면, 디젤 배기가스 중 눈에 보이는 매연을 줄이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은 오히려 늘어나는 상쇄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엄 연구관은 매연을 줄인 디젤을 '클린디젤'이라고 선전하면서 '디젤 택시' 도입 운운하는 게 말이 안된다는 주장도 했었다.
정부는 폭스바겐 리콜 사태가 알려진 직후 "국내에서는 대기환경보전법 등에 장치 조작 사례에 대해서는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어 리콜 명령 등 직접 조치를 취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22일 "해당 차량의 처벌 수위는 EU의 동일 차량 제재 수위에 준해 이뤄질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문제는 리콜 자체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기가스를 저감해주는 선택적촉매장치(SCR)를 추가 설치하는 방법이 있지만, 차량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기술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SCR 자체도 '클린디젤' 수준에는 미달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주력시장인 프랑스가 관광도시인 파리에서 2020년까지 디젤차의 판매금지를 검토할 정도로 이제 '클린디젤'은 '역사적인 사기극'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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