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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4.3은 민중 위한 봉기, 강정은 평화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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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채현국 "4.3은 민중 위한 봉기, 강정은 평화의 상징"

[언론 네트워크] "강정영화제, 어떻게든 민중의 손으로 만들어 가야"

올해 처음 열리는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대표하는 인물로 채현국(80) 효암학원 이사장이 이름 올린 것은 다소 낯선 일이다. 그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작은 유명세를 탄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시민사회 인사들과 문화 예술인들은 그를 흔한 말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937년생인 그의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4년 1월 보도된 <한겨레>와의 인터뷰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그의 일갈은 노인이 돈 몇 푼과 밥 한 끼에 영혼 없이 구호를 외치는 슬픈 미라로 취급받는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또렷한 정신으로 권위를 벗어던진 채 부조리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은 손자, 아들뻘 되는 세대들이 전혀 만나보지 못한 '진짜 어른'이었다.

채현국은 1960년대 흥국탄광 등을 운영하던 사업가로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10위안에 들 만큼 거부였지만, 유신 군사정권·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해직기자, 예술인, 수배자들을 소리 없이 도운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조용히 살아온 그를 이 시대의 몇 없는 진정한 어른으로 꼽는다. 현재는 효암학원(효암고등학교, 개운중학교) 이사장과 강연 활동으로 청소년, 청년들과 만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조금이라도 더 사회 속에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는 마음에 강연은 꺼리지 않았지만, 언론 접촉과 대외 활동을 썩 반겨하지 않는 그가 제주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명예조직위원장이란 중책을 맡는다는 것은 분명 의외다.

채 이사장의 생일이 하루 지난 4월 23일 서귀포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제 관계자와 몇 차례 접촉한 끝에 어렵사리 성사된 자리였다. 채 이사장의 빠듯한 일정에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간 뿐이었고, "새벽 3시까지 지인들과 이야기 하느라 잠을 잘 못잤다"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 제주와 강정에 대한 애정은 80세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강고했다. 까마득히 오래된 제주와의 흥미로운 인연부터 시작해, 강정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그는 "4.3이란 아픈 역사와 자칫 섬 전역이 군사기지화 될 수 있었던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북한지지자'들의 소리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 천 만원을 들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교육도시에 대해서는 거친 말을 아끼지 않으며 '반교육적'임을 강조했다.

다음은 채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올해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명예조직위원장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맡았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제주를 찾아 영화제를 함께한 채 이사장은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민중의 손으로 계속 이어가야 한다"며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서귀포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채 이사장. ⓒ제주의소리

- 제주와 어떤 인연이 있으십니까?

남들이 크게 관심도 없던 시절에 '제주에 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보다는 일찍이 좀 자세히 알았지. 4.3이 벌어졌을 당시에는 몰랐고(채현국 이사장은 호적상 1937년생이지만, 실제 태어난 해는 1935년이다), 당시에는 '제주에 뭔가 일어났구나'라고 아는 정도였고,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4.3을) 알게 됐어. 그래도 '4.3'이라고는 말하지 못했지. 그걸 말하면 빨갱이었어. 4.3이라고 찍어서 말할 줄 알고, 제주도에 뭔가 일어났구나 알면 그것 자체가 빨갱이로 몰렸어. 아니 아는 것보다 몰랐지.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1948년 3~4월로 기억하는데 내가 다니던 반(당시 서울 무학국민학교)에 제주 아이가 전학 왔어. 아주 똑똑했지. 강 씨 성이었어. 1948년 4월 3일 그 사태가 나는 바람에 피난오지 않았나 싶은데,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어. 난리가 났으니까.

내가 지금도 궁금한 게 그 아이가 왜 다시 연락이 없을까 싶어. 이쯤 되면 그때 내가 그 아이인 것을 알 텐데 말이야. 그럭저럭 곧잘 친하게 지냈거든. 아이들 친한 것으로 보면 많이 친한 아이였어. 이야기도 많이 했고. 그 얘가 어떻게 서울로 왔는지는 몰라. 그 당시 제주는 4.3으로 다 피해를 당했으니까. 좀 잘 살아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니까. 대학교에서도 제주 출신과 알아서 그 놈과는 곧잘 이야기를 했지. 그 뒤로는 제주에 오성찬(故 오성찬 작가)이도 보러 오고, 그냥 제주도 올 목적으로도 계속 왔어. 오성찬이 신문사 다닐 때부터 제주에 왔으니 얼마나 일찍 온 거야?

- 제주와의 인연이 꽤 오래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주4.3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알고 계셨군요.

난 배워가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고 생각해. 배웠다는 사람이 자기를 포함해 모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범죄'야. 난 1980년 12월부터 신문을 보지 않고 있는데, 관심 없는 것이 아니야. 그렇지만 워낙 속이 상해서 신문에 나오는 대로 볼 마음은 국물도 없는 것이야. 관심이 없는 건 범죄라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범죄야. 나쁜 놈이야.

4.3이란 단어는 몰랐지만 학살 사건이 끔찍하게 일어난 건 알았어. 조병옥이 경무부장으로 있으면서 끔찍한 일을 했다는 것도, '5km 밖에 있으면 다 죽였다'는 것까지도 다 알아. 그걸 알면 빨갱이라고 하는 판이었으니... 4.3평화공원을 만든 것부터 4.3이 지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4.3이) 민중의 정의를 위한 봉기였지 반란이 아니었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야. 제주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그건 참 다행이야. 그런 일을 지금도 빨갱이니, 반란이니 하고 있으니 안타깝지.

- 강연에는 자주 나가시지만, 언론 인터뷰나 대외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서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러게. 참 나도 싫은 것을 맡았어. 당연히 명예로 보면 문정현 신부가 해야지. 신부는 평화의 상징이고 고생도 오래 했고. 문 신부가 '쪽 팔린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있었겠지.


누가 일꾼(명예조직위원장)이 되든 간에, 강정은 절망적으로 고발당할 만큼 고발당했고, 평화를 외치는데 시위대 쪽이 비판받는 분위기가 됐고, 이미 해군기지는 서 버렸지. 그래서 강정영화제를 처음 만들어 갈 때 끼어들어서 평화운동으로 영화제가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어. 나는 영화제를 적극적으로 하자는 편이었어.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시민 모임으로 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꿈같은 소리야. 누가 믿겠어? 영화제가 돈이 얼마나 드는 짓인데. 지금 부산영화제도 돈이 엄청 들어가고 있는데 그 핑계로 돈 쓰는 재미가 얽혀서 돌아가는 것이야.

근데 이건 불과 1000만원도 없는 사람들이 마련한 거니까. 100만원 댈 수 있는 사람도 한 두 명일까 싶어. 강정영화제를 한 번만 해서 끝내지 말고 계속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계속 함께할거야.

▲ 채현국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명예조직위원장. ⓒ제주의소리
- 호로는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하면서 해군기지가 들어섰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된다는 구상은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어려워. 6.25 때도 이북에서 여기까지 내려와서 목숨 건진 사람들이 많아. 서북청년단 말고.

강정은 제주도의 평화를 위해서 상징이 됐어. 강정은 우리나라의 국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야. 한국정부가 미국과 맺은 군사조약 때문에 자동적으로 우리 해군기지나 방어기지는 미국기지가 된다는 것을 누구든지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인데, 더구나 이북이 저렇게 고약한 짓을 자꾸 하는 것을 이용해서 그것을 빌미로 중국을 갈구고 있어. 그렇기에 이렇게 까지 (해군기지를) 강하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야. 부산, 광양, 해남, 완도에도 큰 항구가 있는데 꼭 제주에 와서 해야 하나.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야. 민중이 각성하기 위해서라도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둬야 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건설된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남경 폭격에 이용하기 위해 건설됐어. 정말 오싹하지 않아? 이 좁은 섬에서 수 많은 생명을 몰살시키려는 짓을 일본 놈들이 했고, 몇 만명이 와서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역사가 있는 섬이 바로 제주야. 제주에 대한 평화의 주장은 공연한 이북지지자 세력들의 개소리가 아니야. 무엇보다 미군과의 조약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는 우리만의 국방일 수가 없어. 이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해. 근데 어떻게 아나. 언론과 높은 사람들이 쉬쉬하고 있는데.

나는 국내용 방어기지로만 만들어진 것까지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그 조약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는 반드시 중국을 겨냥하는 기지라는 비난 앞에서 쉽게 변명이 안돼. 평화운동을 계속 하는 아이디어가 바로 영화제야. 우리가 반드시 이런 평화운동을 해야 그 짓(전쟁 및 군사행동)으로 쉽사리 확장을 못해. 지금 모습은 중국을 갈구는 19세기 말 일어났던 각축전의 상징의 재현으로 봐. 중국 역시 공산주의를 해본 적 없는 극도의 국수주의에 국가주의 국가지. 중국이 그런 국가주의 시각으로 제주와 강정을 우리만의 국방으로 보지 않고 미국을 위한 국방으로 보고 실수하기 딱 쉽다는 것이지.

-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위해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썩은 경쟁주의가 모든 놈들을 환장하게 만들었어. 어떻게든 제주 하나라도 영화제 같은 것이라도 해서 더 이상 망치면 안된다고 봐. 강정영화제는 어떻게든 민중의 손으로 만들어 가야해. 조직 이기주의로 하면 안 돼. 하다못해 십시일반으로 제주 관광에도 득이 되지 않겠어?

아, 그리고 제주에는 국제학교가 있지? 외국어 학교라는 발상으로 한 해 학비가 수 천 만원씩 드는 그딴 학교를 아이디어랍시고 만들다니…. 그 못된 놈들(국제학교)은 돈이 남으니 송금하려고 하는데, 민중들은 비판하지도 않고 언론도 비판을 안해. 내가 그래서 언론 인터뷰를 싫어해. 자기들이 할 일 안하고 나 같은 늙은이에게 주둥이질이나 하게 하고, 욕질이나 한다고.


현지 학교 못지 않게 비싼 학비에 학생들을 가르치다니 나빠. 교육을 빌미로 외국 장사꾼들이 다 여기 와서 학교 차릴 것이야. 큰일 날 거야. 나 같은 늙은이도 아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 (채현국 이사장은 1988년부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채현국 이사장의 옷깃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있다.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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