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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는 '살인 면허' 기업? 103명 죽이고도…

[기자의 눈] 가습기 살균제 참사, 세월호 참사는 반복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와 소비자의 희생이 생겨도 기업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을 회피하는 사회에서 비슷한 참사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146명 가운데 103명이 사용한 제품을 생산한 업체는 회사명과 회사의 형태를 바꾼 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이 제품에 의해 사망했다는 인과관계는 이미 5년 전 과학적 조사로 확인됐다. 그런데 지난 19일 처음으로 검찰이 이 업체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이 기업은 현재 가습기 살균제에 유해한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제조. 판매를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애초 독성 시험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 교수들을 매수해 이런 혐의를 피하고자 유해성 연구를 조작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의혹이 아니라 검찰이 대학 교수들을 피의자로 소환할 예정이다. 이런 혐의들을 받기 전부터 최소한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는 성립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5년 동안 세월만 보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시민 100여 명이 사망한 과실 치사 혐의가 성립된 사건을 놓고도 검찰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피해자들이 2012년 8월 제조업체 10곳을 고발했을 때, 검찰은 "보건 당국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2013년 3월 보건복지부가 인과관계를 공식 인정한 뒤에야 검찰은 사건을 경찰에 맡긴 뒤 지난해 8월 기소 의견으로 송치를 받은 뒤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기업은 '살인 면허' 받은 007인가?

이 사건을 둘러싼 기업의 죄질과 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어떤 면에서는 온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하다.

세월호 참사는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세월호 운영 책임자의 부실과 무능한 정부의 대응으로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채 죽어간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이렇게 TV로 생중계되면서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일까? 사망자 대부분인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와 임산부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다가 죽어간 사건인데도, 세월호 참사보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지난 18일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마트가 '살인 살균제'의 제조, 유통업체로는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까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한 채 고통을 받아왔다.

'살인 살균제' 제조사들이 그동안 받은 처벌이라고는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팔면서 제품 용기에 '인체에 안전하다'고 허위 표기했다"는 이유로 52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게 전부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면,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보다 더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두 정권 하에서 이 두 사건에 대해 검찰은 사실상 기업과 정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것처럼 무능 또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경우, 이제 와서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한다고 해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라는 기업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이 기업은 이미 '법적으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1월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유해한 성분이 있다는 경고를 발표한 바로 다음달 이 업체는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유한회사는 외부 회계 감사를 받을 의무가 없고, 경영 실적 공시 의무도 없는 회사 형태다. '살인 살균제'를 제조한 회사는 사라지고, 이제 법적으로 다른 회사가 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살인을 저지르고 완전히 신분 세탁을 해 형사적 책임을 물을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회사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개명까지 했다. 2014년 옥시레킷벤키저에서 옥시를 빼버리고 레킷벤키저의 이니셜 RB을 따서 RB코리아로 업체 이름마저 세탁한 것이다. 원래 옥시는 OCI(옛 동양화학공업)의 계열사였으나 외국 업체 레킷벤키저에 지난 2001년 매각됐고 현재 레킷벤키저는 영국 기업이다. 이 기업은 영국에서 팔 엄두도 내지 못할 제품을 한국에서 버젓이 팔아오고, 문제가 생기자 한국 법인 이름만 RB코리아라고 바꿨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부와 소비자들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영국에서는 이런 살인 살균제를 팔았다면 이미 망했을 것이다.

영국은 지난 2007년 기업 과실 치사법을 제정해 2008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기업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법리를 확립해서 중대한 업무상 과실 치사나 살인죄를 저지른 기업에게 사람으로 치면 '사형 선고'나 '무기 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업에게 '사형 선고'나 '무기 징역'을 선고한다는 것은 파산할 수밖에 없는 처벌을 한다는 것이다. 옥시레킷벤키저의 혐의면 적어도 연매출액의 10%의 벌금 등 엄중한 처벌이 내려진다. 또 어떠한 혐의로 이런 처벌을 받았는지 공표하는 명령까지 받는다.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까지 정부 차원에서 유발하는 것이다.

레킷벤키저가 영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일으켰다면, 파산으로 이끌 중형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이런 범죄를 저질렀으면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 배상'을 하게 되어 역시 파산을 피하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비웃듯 검찰이 업체 관계자 소환 하루 전에야 대국민 사과를 하는 업체가 나온 것을 보면, 롯데마트 같은 재벌 계열사라도 하루아침에 문닫게 할 정도의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이 없는 사회에서 기업을 믿는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없는 사회에서 경영진이 자신의 임기 동안 실적을 위해 무리수를 두어도 된다는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 대기업이라는 이름만 믿고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대기업의 온갖 갑질과 범죄가 드러나면 그때마다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적 처벌'이다. 언제까지 '사적 처벌'로 기업 범죄가 재발되지 않기를 기대할 것인가?

기업 범죄에 엄중한 대응을 하는 법 체계를 갖춘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만이 아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게 우리 정부는 어떤 책임을 물었을까? 법원은 청해진해운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1000만 원의 벌금은 기름 유출이라는 해양환경관리법상 과실에 대한 처벌이었다. 사망 사건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역시 마찬가지로 '사법 실패'는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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