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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독성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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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SK케미칼·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독성 알고 있었다"

[공청회] 기재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는 나쁜 선례"

여당도 없고 정부도 없었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관련법 공청회'에서 의원들의 자리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이른바 '귀태 발언' 파문으로 김상민 의원을 제외한 모든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청회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여전히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외려 "피해자와 사측이 재판 중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노형욱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는 발언까지 나오며 피해자들의 상처만 깊어졌다.

사회를 맡은 신계륜 위원장(민주당)이 나서서 부처 관계자들에게 "피해자들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하는 발언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킬 정도였다.

▲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관련법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공청회에는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귀태' 발언의 여파로 김상민 의원을 제외한 모든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했다. ⓒ뉴시스

SK케미칼·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 유독성 알고 있었다

지난달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제조물책임법의 면책 조항('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한 때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가 애초에 제품의 유독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PHMG)를 생산한 'SK케미칼'이 이미 2003년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유독성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SK글로벌'(오스트레일리아 법인)은 호주 정부 기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PHMG의 흡입 독성이 있고, 상온에서 분말 형태로 존재하는 PHMG가 비산되어 호흡기로 흡입될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심 의원이 언급한 보고서는 SK글로벌이 SK케미칼의 PHMG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법에 따라, PHMG에 대한 유독성 정보를 '오스트레일리아 국가 산업 화학 물질 신고·평가 기관'에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대한 실험은 SK케미칼 특수 화학물 지부에서 시행됐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의원은 "과학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사 측이) 제조물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 데 대해 해명이 있어야 한다"며 "환경부도 제조물책임법 때문에 사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계속 말해왔다"고 꼬집었다.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등을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가 사전에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알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례를 보면, "이 사건 제품의 원료 공급자인 (주)SK케미칼이 작성하여 피심인 회사(옥시레킷벤키저) 등에 제공된 물질 안전 보건 자료에 이 사건 제품의 주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SKYBIO 1125(PHMG)를 유해물질로 분류하여 이 제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흡연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가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허위·과장 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사측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피해자들 개별 소송 나섰지만…소송 기간 '4년'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이 밝혀진 지 햇수로 3년이 지났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지난해에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유독성을 공식 발표했다.

그간 유독 물질 규제에 책임이 있는 환경부, 질병 피해를 관리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 인증 마크를 내준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는 부처 간 떠넘기기로 일관하며 아무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공청회에서는 이러한 관련 부처들의 무능함뿐 아니라, 예산 문제를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예산'에 반기를 들고 나선 기획재정부의 냉랭한 태도까지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다 지친 피해자들은 현재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박종원 법제연구원 실장은 "소송이 장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여,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가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은기 서강대학교 교수 역시 "소송이 끝나기까지 통상적으로 4년 정도 걸린다"며 "이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수백만 원의 변호사 선임료와 1억에 50만 원 정도인 인지대(법원에 내는 일종의 수수료) 등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결국 민사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개개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국가가 지켜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환경부와 보건복지부의 지원책, 무용지물

보건복지부와 환경부가 제시한 구제안도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와 환경부 관계자는 '긴급 의료 지원'과 '장애인 등록'을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긴급 의료 지원비는 2회에 걸쳐 600만 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폐 이식 수술비로만 약 1억 원을 부담한 피해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게다가 차상위 계층이 아니면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

장애인 등록 역시 실효성이 없다. 피해자 중 장애인 등록으로 의료비를 지원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공청회에 참석한 임성준(11) 군은 호흡기 장애 1급이지만 부모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이런 것을 들고 와서 정부 지원책이라고 하다니 정말 유감"이라며 "오늘 자리만 봐도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제조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다"

한정애 의원이 기획재정부가 지난 5월 작성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화학 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 검토 의견'을 공개하자 피해자들의 탄식은 더욱 짙어졌다. 장하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환경부 소속 피해 대책 위원회 설치 △구제 급여 지급 △재원 확보를 위한 피해 구제 기금 설치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문서에는 "법률안 전체 수용 곤란. 폐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간의 인과 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라고 나와 있다.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공식 발표한 사실을 전면적으로 무시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노형욱 사회예산심의관은 "기획재정부에서는 소송 중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는 생뚱맞은 답변을 내놨다.

이에 한명숙 민주당 의원은 "대체 재판이 언제 끝날 줄 누가 아느냐"며 "계속 그따위 소리를 할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서에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제조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 국가의 과잉개입으로서 나쁜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다"는 표현도 있었다. 노형욱 사회예산심의관은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만 짧게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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