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 성폭행범 비유, 테러 용의자 물고문, 모든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 등 연이은 극단적 막말과 여성차별 및 인종차별적 발언에도 지지율이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며 당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 왔으나 '낙태여성 처벌' 발언을 계기로 트럼프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30일(현지시간) MSNBC 방송 주최로 위스콘신 주(州) 그린베이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불법으로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운홀미팅 진행자인 크리스 매튜스가 "여성에 대해?"라고 재차 질문한 데 대해서도 "그렇다. 어떤 형태로든 있어야 한다"고 확인했다.
이 발언 직후 당 안팎에서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트럼프는 3시간도 채 안 돼 여성은 피해자이며 낙태 시술을 한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을 바꾸며 사태 수습을 시도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발언을 곧바로 번복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경선 참여 이후 논란이 되는 각종 막말을 쏟아냈지만, 거의 사과나 번복을 한 적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본인 역시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캠프의 여성 대변인 카트리나 피어슨은 31일 CNN 방송에 출연해 "가상적 개념을 둘러싼 대화 과정에 나온 발언 실수다. 트럼프가 (발언의 취지에 대해) 명백하게 해명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CNN 방송 등 미 주요 언론은 트럼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트럼프의 낙태여성 처벌 발언이 공화당원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경선에서 중도에 하차한 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마저 이날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아주 잘못 대처했다. 끔찍한 대답이었고, 누구도 그의 발언을 변호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저지에 나선 당 주류 진영은 본선에서의 여성 표 이탈 우려로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낙태 찬성단체는 물론이고 반대 단체도 "여성은 처벌이 아니라 치유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며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난하게 나섰을 정도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CNN 방송 인터뷰에서 "공화당원들이 지금은 트럼프처럼 (낙태 반대에 대해) 대놓고 입장을 밝히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입장이다. 낙태를 범죄시하고 불법화하는 것은 결국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트럼프와 공화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번 논란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4월 1일 노스다코타, 5일 위스콘신 경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스콘신 주의 경우 대의원이 42명에 불과하지만, 한 표라도 더 이긴 승자가 이 지역 대의원을 독차지하는 만큼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경선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로서는 이곳에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에게 패할 경우 현실적으로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전체 2472명 중 1237명) 달성이 힘들어지면서 최종 승패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7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크루즈 의원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럼프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성명에서 "트럼프가 중요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는 관심을 끌 만한 것이면 뭐든지 말한다"고 꼬집으면서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성의 존엄과 그들이 가진 출산이라는 경이적인 선물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한·일 핵무장 용인' 발언도 적잖은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는 29일 CNN 주최로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진행된 타운홀 미팅에서 동맹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솔직히 이제는 정책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튿날인 30일 MSNBC 방송 주최로 열린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 타운홀미팅에서 관련 질문에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한 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방위비와 관련해) 공정한 몫을 내야 한다"고 답변해 한 발짝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백악관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만일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꾸고 핵무기 확산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을 강력히 성토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와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RNC) 위원장이 워싱턴D.C.의 RNC 본부 건물에서 긴급 비밀회동을 해 주목된다.
트럼프가 현재 당이 자신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고 있다며 연일 '경선 불복'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만큼 이날 회동에서는 공정 경선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트럼프의 각종 논란성 발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는 회동 직후 트위터에 "매우 좋은 만남이었다. 당의 화합을 기대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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