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르신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어떠한가? 49.6%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그간 우리 사회가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야박했는지를 보여준다. 어르신 2명 중 1명이 국민 전체 중위 소득의 절반 이하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으며, 132만 가구는 가처분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일구어진 사회로부터 고립을 느끼고 쓸쓸히 생의 마감을 선택한다.
젊었을 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이가 들어버리면 모른 척하는 사회, 이 냉혹한 사회를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책임 있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불어 연금'을 제안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연금
더불어 연금은 은퇴 후 어르신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공적 안전망이다. 어르신들이 그간 산업화의 일꾼으로서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빈곤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개인적 과오나 나태함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요인들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연금은 기존의 제도들을 뒷받침하는 '보충성의 원칙'에 의해 운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후 소득 보장 체제는 기초 생활 보장 제도, 기초 연금, 국민 연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공적 제도들이 보장하는 소득은 최저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에 더불어 연금이 필요하다.
기존 제도들을 보자. 먼저 까다로운 부양 의무 및 소득 기준으로 인해 기초 생활 보장 급여를 받는 노인들은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7%에 불과하다. 국민 연금을 받는 노인도 전체 노인의 32.3%에 불과하며, 그 중 30만 원 미만을 받는 비율이 61.2%나 된다. 수혜자의 규모가 67%로 가장 많은 노인을 포괄하는 기초 연금은 급여액이 최대 약 20만 원으로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인 64만2000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 기사 : 가난한 노인에게 소득 60만 원을 보장하자)
게다가 이 세 제도들을 중복해서 받을 수도 없다. 기초 생활 보장 급여는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을 받는 경우 소득으로 인정되어 그만큼의 수령액이 깎인다. 기초 연금은 국민 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금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 노인 가구 약 260만 중 절반에 이르는 132만 가구가 최저 생계비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2013년 기준).
더불어 연금은 기존 공적 제도들이 보장하는 소득 수준이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만큼을 공적 자금을 통해 보전한다. 따라서 1인 가구는 약 60만 원(2016년 기준 약 64만2000원이나 약 60만 원으로 책정)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제도, 국민 연금, 기초 연금 등 공적 제도들을 통해 보장되는 소득액을 파악한 뒤 차액을 국고에서 지원한다. 따라서 최대 지급 금액은 공적 제도의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로서, 60만 원이다. 최저 생계비가 매년 인상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한 더불어 연금액 역시 올라갈 것이다.
또 보충성의 원칙에 의거하기 때문에 더불어 연금은 일시성을 가진다. 즉, 공적 소득 보장 제도가 계속해서 발전하여 더 이상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대상이 넓어지거나, 국민 연금의 사각지대와 낮은 연금 수준 문제가 보완되고, 기초 연금액이 인상되어 모든 노인에게 최저 생계비가 보장된다면 더불어 연금액은 '0'에 접근한다. 이 경우, 더불어 연금 제도는 더 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다.
모든 노인에게 최저 생계비 60만 원을
더불어 연금의 가장 큰 효과는 절대적 액수의 측면에서 모든 노인에게 최소한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되었던 고물상 할머니처럼, 기초 연금 20만 원으로는 15만 원짜리 반지하 월세 방값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어르신들, 국민 연금을 받고 있지 못하는 3분의 2의 어르신들, 그리고 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좁은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어르신들에게도 60만 원의 최저 생계비를 보장한다.
더불어 연금은 '공적 제도들을 통해 보장되는 소득'을 기준으로 차액을 보전하는 형식을 띄기 때문에 소득 기준으로 하는 기존 제도들보다 더 많은 대상들을 포괄할 수 있다. 예컨대, 기초 생활 보장 제도는 소득 평가액을 산정할 때 문제되는 추정 소득(실제 소득이 없어도 근로 능력이 있으면 소득이 있다고 간주됨)의 문제, 재산의 소득 환산 과정의 문제(주택 보증금과 같이 당장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까지 포함시킴)로 많은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다. '공적 제도가 보장하는 소득'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들을 모두 제도 안에서 보호할 수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지금 당장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기초 생활 보장 제도, 국민 연금, 기초 연금 등 현행 공적 제도들은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데 있어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엄격한 수급자 선정 기준, 국민 연금의 사각 지대, 기초 연금의 적은 액수 등 내재적 문제들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혁하고 우리나라의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 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 연금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보충적 성격 때문에 기존 제도들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제도들이 제대로 자리 잡는 기간 동안에 시급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기업 법인세 공제액으로 재원 마련 가능
현대경제원의 <고령화에 따른 노년 부양 부담과 시사점>(2013년)에 따르면 현재 132만 노인 가구가 최저 생계비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최저 생계비 기준으로 산정된 이들의 생계비 부족분은 월평균 29.9만 원이다. 따라서 약 30만 원씩 매달 지급하는 경우, 총 약 4조 7500억 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지출은 2011년 기준 GDP 대비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5%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보건사회연구원 등 그간 연구들은 노인 복지 지출이 늘어날수록 노인 빈곤율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음을 증명한 바 있다. 따라서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해 노인 복지에 좀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
세수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에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더불어 연금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예산 약 4조7000억 원은 그다지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다. 지난 국정 감사 자료에 따르면 재벌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공제 감면액이 약 4조9000억 원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미 몸집을 키울 만큼 키운 재벌 기업보다는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조차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사용할 때가 아닐까.
다른 정당의 노후 보장 정책과의 비교
정당들의 이번 총선 공약을 보면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노인 빈곤의 주요 원인인 소득 보장에 대하여 집권당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이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기초 연금 30만 원 공약은 생계를 보장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기초 연금의 인상을 이슈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공적 연금 제도는 앞으로도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이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을 계기로 기초 연금 인상 논의는 물론 국민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꾸준히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지금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 상태에 있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구제해 줄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기초 연금은 인상해야 하지만, 한 명이 살아가기에는 30만 원도 여전히 부족한 액수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기초 연금의 인상 논의를 환영하면서도 지금 당면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더불어 연금'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연금은 기초 연금이 인상되고, 국민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가 해소되어 전 국민이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의 심각한 노인 빈곤에 대한 일시적 방패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때의 노인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이다. 지금의 세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적은 월급에 밤늦게까지 야근하면서 바쁘게 살다보면 2060년 즈음에 국가 전체적인 GDP는 훨씬 늘어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퇴직하고 나면 이방인인 것처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난방도 안 되는 골방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낼 것인지, 공적 연금의 안전망 속에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인지는 지금 현 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