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빈곤, 공적 이전 제도의 부실 때문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인 빈곤을 예방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공적인 제도들이 부실하다는 점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유럽의 선진국과 비슷하게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 연금, 국민 연금 등의 공적 제도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 하나 이상을 받는 노인의 비중이 90%가 넘는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런 제도가 보장해주는 바가 너무나 열악하다는 데 있다. 공적 제도들을 통해 보장하는 소득의 경우, OECD 평균이 노인 총소득의 58.6%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3.6배나 낮은 16.3%에 지나지 않는다. 즉, 대부분의 노인들이 공적 제도의 혜택을 받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서 보장해주는 정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리고 이 미약한 정도가 그대로 노인 빈곤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노인들은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7%에 지나지 않으며(4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 급여액도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친다. 국민 연금의 경우, 2013년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의 전체 노인 중 32.3%만이 국민 연금을 받고 있으며, 그 중에서 30만 원 미만인 수급자의 비율이 61.2%나 된다. 그나마 수혜자의 규모가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7%에 이르는 기초 연금은 급여액이 최대 20만 원으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문제는 위의 세 가지를 중복해서 받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국민 연금, 기초 연금과 중복해서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으로 받는 돈이 소득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기초 급여를 계산할 때 그만큼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은 노인들은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든지, 아니면 기초 연금이나 국민 연금을 받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 연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 시행된 기초 연금은 국민 연금의 가입 기간과 연계되어 국민 연금에 가입한 기간이 길수록 적게 받도록 되어 있다.
가족 연대에서 국가적 연대로
노인 빈곤은 현재의 노인이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거나, 개인적으로 무능하거나 나태해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는 현재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 현재의 노인 세대들은 산업화의 일꾼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노인 빈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요인들, 즉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나서서 노인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우리 모두의 아이이듯 우리 사회의 모든 노인은 우리 모두의 부모'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노인 빈곤의 해결을 위해 일정 정도의 공동 부담을 함께 진다. 모든 국민이 세금이나 국민 연금 보험료로 공동의 자금을 만들고, 이를 노인들에게 적절하게 배분함으로써 노인들의 소득을 기본적인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모에 대한 부양을 다른 국민들과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공적 방식이 각자 알아서 스스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사적 방식으로 노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열심히 저축하거나 민간 연금 보험에 가입하거나 재산을 늘려 놓아야 한다. 자기 부모의 부양을 책임지기 위해서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준비를 제대로 못했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빈곤한 상태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야 한다. 사적 방식 하에서는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개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인 빈곤 해소의 골격을 온 국민이 참여하는 연대적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유럽을 따라가자는 말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하는 것보다 '함께 공동으로 부담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비용을 처리하자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연대 방식을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방식이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즉, 연대 방식은 인간이 오랜 경험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혜의 소산이다.
지금의 제도로는 노인 빈곤 통제 못해
그렇다면, 기존의 공적 제도들을 어떻게 바꾸어야 지금의 49.6%라는 기록적인 노인 빈곤율을 줄일 수 있을까? 방향은 명확하다. 각 제도들의 급여액을 올려 소득을 기본적인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주면 된다. 어르신들의 주머니를 국민 모두가 함께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채우는 방법에 있어서는 몇 가지 고려할 문제가 있다.
우선,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제도의 특성상 소수의 취약 계층에만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는 65세 이상 노인들 중에서 6~7%만이 이를 받고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올린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는 대상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통해서는 전체 노인의 50%에 달하는 노인 빈곤을 해결할 수는 없다.
국민 연금의 경우, 연금액을 올리더라도 현재 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비중이 65세 이상 전체 노인 중에 32%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에 혜택을 보는 노인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특히, 국민 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인 빈곤의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별 효과가 없다.
결국, 현재의 공적 이전 제도들을 통해 노인 빈곤을 해소하려면 기초 연금을 올리는 방안밖에 없다. 최소 40만 원 최대 6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초 연금은 전체 노인의 70%에게 제공되므로 노인 빈곤에 처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급여가 주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기초 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빈곤선 이하에 놓인 하위 50%의 노인들을 위해서만 작동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기초 연금 원래의 목적이 상실된다.
당장의 노인 빈곤 문제를 '더불어 연금'으로 해결하자
따라서 기존 제도들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유지하면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를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하나의 가능한 대안으로 새로운 공공 부조를 만들어 노인 빈곤율이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이 제도가 바로 '더불어 연금'이다. '더불어 연금'은 소득 하위 50% 노인에게만 적용한다. '더불어 연금'의 급여액은 최대 60만 원으로 한정한다. 2015년 1인당 최저 생계비가 약 61만 원이므로 이 정도의 구매력을 모든 노인들에게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제도는 '보충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운영한다. 즉, 기존의 기초 연금, 국민 연금,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의 세 가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이 세 가지 급여의 총액이 60만 원 이하일 때에 한해서만, 그리고 그 차액만큼만 국민이 함께 마련한 '공동 자금'으로 메워주자는 것이다. 이런 보충성의 원칙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모든 노인들은 최소한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적지 않은 노인들이 빈곤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
특히, '더불어 연금'은 현행 제도들의 강화와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유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 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기초 연금을 인상하여 당장 노인의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연금'은 이런 제도 개혁이 이뤄지면 그 역할이 줄어들게 된다. 즉, 공적 연금 제도가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제대로 자리 잡는 기간 동안에 노인 빈곤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현 정부의 조치는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에 너무나 미흡하다. 현대판 고려장을 초래하는 노인 빈곤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지금 당장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존의 제도들을 없애고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기존의 제도들은 각각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들을 유지하면서 당장의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 제도들과의 마찰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더불어 연금'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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