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악수'를 뒀다. 특히 공천권 관련 전권을 거머쥔 김종인 대표가 스스로 비례 2번을 부여,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비례 1번은 여성 몫이므로, 비례 2번은 남성으로서는 최고 순번이다. 김 대표에게 공천권이 없던 시절 대표나 공관위로부터 비례 번호를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김 대표는 공천과 관련해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 '셀프 비례' 논란은 그래서 발생한다.
보통 정당의 거물급 정치인은 비례를 받더라도 순번을 당선 가능권 밖에 둔다. 이를테면 정당 지지율로 유추해 볼 경우 15번까지 당선 가능성으로 예상된다면 16번 비례 번호를 받고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다.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려 16번 이상까지 당선시키겠다"는 의지 표명이 된다. 그러나 김 대표는 그러한 결기를 보이지 않았다.
말 바꾸기 논란도 자초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8일 취임 1개월 기자회견 당시 "내가 비례대표에 큰 욕심이 있느냐. 난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 김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스스로 2번을 부여했다고 한다면 원래 의도야 어떻든 간에 유권자들에게 사적 욕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정치 신인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도 벗어났다. 김 대표가 당선 가능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다른 후보들의 기회가 박탈된 셈이다.
정청래 의원, 이해찬 의원 등의 공천 배제로 보수 언론의 '공격 포인트'를 제거해 왔던 김 대표의 그간 행보와도 맞지 않다. 김 대표의 비례 2번 배정은 총선이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보수 언론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비례 국회의원만 5번째'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 진 상태다.
심지어 20일 공개된 비례대표 명단을 보면 '참신성'과는 거리가 멀다. 소수자 배려 등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A그룹(1~10번) 후보자 면면을 보면, 대부분 교수나 전문직 출신이다. 김성수 대변인, 김종인 대표, 이용득 전 최고위원(노동계 몫) 등 정치인 3인을 제외하면, 의사(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1명, 관료 2명(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 양정숙 전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이고 교수가 무려 4명이다.(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문미옥 전 이화여대 연구교수, 조희금 대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소수자 배려 등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청년 몫도, 장애인 몫도 없다. '부정 경선' 논란이 일었던 청년비례 선출은 흐지부지 됐다. 청년 몫 비례대표는 정은혜 전 더민주 부대변인으로, B그룹(11~20번)에 겨우 이름을 걸쳤다.
특히 비례 1번을 받은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이 일었던 적이 있어 도덕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아들이 방산 관련 비리를 일으켰던 업체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준열 서강대 교수는 론스타 '먹튀 논란'에서 론스타를 옹호한 칼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천 잡음'으로 더민주의 공천이 그간 반사 이익을 봐 왔던 게 사실이다. 진영 의원 영입도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은 수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공천 명단 발표로 더민주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한 10석 정도 날린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도 김 대표의 말처럼 "정무적 판단"이라면 김 대표는 최악의 "정무적 판단"을 한 셈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