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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살림이야기] 경제구조와 정부의 역할

지난해 8월부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한 달에 한 번 '박현채 다시 읽기'라는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농촌경제학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한국경제의 구조를 분석하는 박현채의 폭넓고 날카로운 관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 분야에만 갇혀서 구조의 변화가 없다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대안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구조의 변화 없이 사회가 바뀔까?

박현채의 책들이 제법 많지만(2006년에 박현채 선생 10주기를 추모하는 총 7권의 전집(<박현채 전집>도서출판 해밀 펴냄)이 발간되었다), 그중 한 권을 꼽자면 <한국 경제구조론>(일월서각 펴냄, 1986년)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목처럼 한국경제의 구조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한 책이자 농민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공동체운동에 대한 박현채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 <한국경제구조론>(박현채 지음, 일월서각 펴냄). ⓒ일월서각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은 자립경제를 실현할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조선 말기 조금씩 등장한 상인이나 공장제 수공업은 식민지를 거치며 "자생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단순히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경제를 수탈했다는 점을 넘어서 한국경제는 "국내적 분업과 관련 없이 일본공업을 위한 소재공업의 파행적 발전이라는 식민지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경제의 종속성은 해방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고 미군정 "시기의 무역정책은 지난날의 대일의존을 대미의존으로 전환"시켰을 뿐이다. 특히 미국의 소비재와 잉여농산물이 대폭 도입된 원조경제는 부패한 정권을 유지시키고 자생적인 농업과 토착공업의 싹을 잘랐다. 여기에 한국전쟁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는 자립기반을 상실하고 "외국자본에 대한 의존을 자기 체질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종속경제에서는 외국에서 들여온 자원을 배분하는 관료들이 경제 외부의 권한으로 경제를 조정하고 한국의 대기업들은 "모두 정치권력과 연관을 갖고 고리대 상업자본으로서 축적을 이룩"했다는 점이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부패는 심각했고, 권력을 등에 업은 부실한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이른바 8·3조치('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15호')로 자신이 만든 부패를 정리해야 했다. 즉 모든 기업의 사채 지불을 동결하고 분할상환으로 전환하거나 기업에 대한 출자로 전환하도록 했다.

특히 사채를 제도금융으로 전환시키고 기업공개를 명목으로 주식 소유를 일반화시켜서 "중산층에게 기업이윤에의 참여라는 환상을 갖게 하면서 증권시장을 육성함으로써 기업이 직접금융방식에 의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제도적 기구, 즉 제2금융권을 조성"했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재벌들의 독점과 확장을 뒷받침했고,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했다. 박현채는 "1970년대의 고물가 하에서 기업의 사채에 대한 지불유예와 낮은 금리에로의 전환은 광범한 민중의 희생 위에서 기업을 이전소득에 의해 살아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대다수 시민을 희생시켜 재벌의 배를 불린 셈인데, 외려 시민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과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박현채는 한국경제의 특징으로 '관료자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외국의 원조나 차관을 통해 많은 자원을 독점하게 된 관료조직들, "경제외적이고 매판적인 것을 자기 속성으로 하는 관료자본의 생성은 한국자본주의의 종속성을" 특징짓는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이런 성격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들어온 투기자본이 8년 동안 챙긴 돈은 150조 원에 이른다. 그 이후의 세계화는 한국경제의 종속성을 더 심화시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난 정부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와 법인세 감소, 금산분리 완화정책 등을 폈고 자유무역협정(FTA)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시민과 중소기업을 희생시켜 재벌들의 배를 불려온 관료자본은 사라졌을까?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성격을 방치한 채 관계나 신뢰, 협동의 강화를 외친들 실제로 그런 사회가 세워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는 과정 없이 매출이 얼마이고 고용인원이 몇 명이고, 이런 수치에 매달리면 어느 순간 우리도 이런 구조를 강화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를 고민하고 있을까?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박현채는 공동체운동에 대해서도 이론이나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에게 "노동과정에 관한 문제의식"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공동소유, 공동노동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범주의 공동체 실존은 그간의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기껏해야 두레패나 군포계, 대동계, 그리고 향약 등"을 거론한다고 비판한다. 우리의 대안은 얼마나 구체적일까?

우리를 위해 당신의 가난을 증명하세요

▲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지음, 박소현 옮김, 한형식 해제,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지음, 박소현 옮김, 한형식 해제, 오월의봄 펴냄)는 '착한 자본주의'라는 가면 뒤에 가려진 실상을 드러낸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으로 각광을 받았고 설립자인 유누스 박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한때 한국에서도 마이크로크레딧 열풍을 불게 만들었고 미소금융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런데 카림은 외부로 알려진 결과와 달리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삶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카림은 미셸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을 활용해 "풍부한 자원을 가진 기관인 NGO와 가난한 수혜자들 사이의 권력기구로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규범화"를 분석한다. 즉, NGO들이 자신의 성과를 위해 "농촌의 명예와 수치 관례"를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를 분석한다. 방글라데시의 "농촌 생활은 여성의 '올바른' 행실로 유지되며 여성은 가족 명예의 수호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대출금이 연체되면 NGO는 같은 그룹에 속한 여성들에게 연체자와 가족이 빚을 갚을 때까지 독촉하고 망신을 주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량이 강화되기는커녕 여성은 시스템에 더 종속되고 더 많이 희생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NGO들이 앞장서면서 국가는 뒷짐을 지고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정부가 응당 감당해야 하는 공공영역에서 철수하고 "국가 기능의 사유화"가 이루어진다. 카림은 "NGO 대출이 어떻게 불화와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키며, 다국적기업과 NGO를 위한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 주체를 형성하는지"를 이 책에서 꼼꼼하게 따져본다. 소위 대안이라 불리는 것들도 쉽게 기성체제의 틀 속으로 포섭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외려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넓고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시야는 너무 좁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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