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만일 이것이 이런 조건으로는 원래부터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면 그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일 뿐이다. 또한 이런 사업은 일단 성립한 뒤에는 기형적인 반서민 정책으로 돌변할 위험성도 있다.
미소금융은 이명박 정부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아니다. 따라서 벤치마킹한 대상이 있다. 그것이 바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가 창립한 그라민 은행이 벌이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실체에 대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바로 출간되자마자 4대 인터넷 서점 동시 1위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신간을 통해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22일 강서구 화곡동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책에 따르면, 그라민 은행이 초기에 적정 수준의 이자율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무도 모르게 방글라데시 정부와 해외 원조 기관들에게서 보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보조금을 받지 않은 마이크로 파이낸스 회사들은 대개 40~50%에 달하는 대출이자를 부과해야 했으며,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심지어 80~100%까지도 부과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 기사: <뉴욕타임스> "소액대출, 민간자본 돈벌이터로 변질" 경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1990년대 말 보조금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자 그라민 은행도 2001년 회사를 재정비하고 40~50%의 이자율을 부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의 변질된 현실을 고발했다. 이자가 많게는 100%까지 붙는 상황에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이윤을 낼 사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중 대부분은(어떤 기관은 대출금의 90%가) 갑자기 궁해진 돈을 메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시말해 마이크로 크레디트 자금의 대부분은 원래 목표였던 가난한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소비에 사용된 셈이다.
"자활 자금, 빈곤 탈출 도움도 못돼"
장하준 교수의 충격적인 고발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실제로 자영업 지원에 사용되었던 아주 일부의 자금마저도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장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다. 만일 어떤 사업이 성공적이라고 알려지면 곧바로 이 시장은 포화상태가 된다. 포화상태가 되기 전에 신속하게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 교수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사례를 들려준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에서 소액 대출을 받아 소를 한 마리 더 산 크로아티아 목축업자는 똑같이 대출을 받아 역시 소를 한 마리씩 더 산 근처의 다른 목축업자 300명이 생산해 내는 우유 때문에 우유 값이 바닥을 치더라도 우유를 파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버터를 생산해서 독일에 수출하고, 치즈를 생산해서 영국으로 수출하려고 해도 그에 필요한 테크놀로지, 조직력,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인 성공 스토리에 찬사를 보내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게으르거나 기업가 정신이 모자라서가 가난을 벗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경제는 기업가 정신이 집단 차원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조직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지, 빈곤 해결을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미소 금융도 이런 포퓰리즘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서 재계와 금융기관들로부터 앞으로 10년 동안 2조원의 기금을 출연토록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만일 4.5%의 저금리로 대출 자격과 상환 능력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하지 않고 대출을 하기 시작한다면 이 자금은 곧바로 탕진될 것이 뻔하다고 처음부터 경고해 왔다.
물론 금융기관이 그렇게 대출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엄격하게 따져 대출해줬다. 그러다보니 1년이 다되도록 실제로 대출 받은 서민들은 정부의 홍보성 예측과는 동떨어질 정도로 거의 없다.
"연30%도 고금리"라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지난 7월말 이명박 대통령은 미소금융 대출 현장을 방문해 "캐피탈사(할부금융회사) 금리가 연 40~50%"라는 것은 사회 정의에 안 맞는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캐피탈사 금리는 연 30%대라는 해명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연 30%도 고금리"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라민 은행도 캐피탈사와 마찬가치로 고금리 대출 금융기관에 불과하다.
현재 그라민 은행은 여러 방면의 재원 조달로 되도록 금리를 낮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최소 2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4.5%의 금리로는 미소금융이 겉돌 뿐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여 20% 가까이 금리를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미소금융을 살릴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대의 고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려 자활에 성공할 정도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사실상 사채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멕시코의 소액 서민 금융회사 평균 금리는 연 70%로 조사된 바 있으며, 인도에서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업체들의 무리한 빚 독촉과 30%를 넘는 고금리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자살에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오고 있다.
지난달말 인도의 남동부 안드라 프라데시 주에서는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등쌀에 못이긴 채무자들이 최근 56명이나 자살한 사건에 대해 주 정부가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인도의 마이크로 파이낸스 업체들이 '30%대의 비교적 저렴한 사채이자'로 돈놀이를 한 것도 주 정부들의 자금 지원 덕분이었는데, 이런 자살 파문이 일자 안드라 프라데시를 비롯한 여러 주 정부가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때문에 인도의 마이크로 파이낸스 관계자들은 "시장 자체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위기감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사실상 복지 사업으로서의 자금 지원 없이 '지속가능한 저금리 자활 자금 지원'이라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정부가 주체가 되든 금융기관이 주체가 되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아예 마이크로 파이낸스에 대해 "위대한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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