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청년 배당을 말하다
② "청년들, 공돈 받는 재미로 더 일 안 하겠지"
③ "청년 배당으로 3년 만에 과일 사먹었어요"
홍은성(26, 가명) 씨의 하루는 길다. 24시간 중 길 위에 버리는 시간이 적게는 5시간, 많게는 6시간이다. 은성 씨는 매일 춘천 집에서 서울을 오간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서울에서 자취를 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방 빼"라는 통보가 떨어지기 전까진.
"백수니까 어쩔 수 없죠.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요."
"저는 금수저가 아니니까요"
은성 씨는 1년째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언론고시생'이다. 학부 생활은 이미 1년 반 전에 마쳤다. 그러나 졸업식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수료생' 신분이다. '졸업생' 신분으로는 언론사 인턴 전형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인턴 채용 공고 시 아예 '재학생 또는 수료생'이라고 자격 조건을 못 박은 곳도 많다.
인턴 생활을 하다가 정규직 전환이 되는 사례가 적잖은 터라, 은성 씨는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하며 계속 졸업을 미루고 있다. 학보사 출신이라 실무는 자신 있으니, 인턴으로 뽑히기만 하면 정규직 전환은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은성 씨 판단이다. 그러나 오는 6월이면 수료 가능 기간인 2년도 끝난다. 그 전에 인턴에 합격하지 않으면 꿈꾸던 '꽃길'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1년 새 여기저기 원서를 찔러봤지만 모두 보기 좋게 떨어졌다. 탈락 통보서를 받을 때마다, 은성 씨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소위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을 나왔지만 그렇다고 'SKY'는 아니다. 나이가 많지 않지만 이제는 적지도 않다. 토익 점수는 1년 전 만들어 놓은 890점에서 멈춰있다. 10점만 더 올리면 원서 쓸 때 '사실상의 하한선'이라 불리는 900점이 되는데, 그 10점을 못 올리고 있다.
화려한 '스펙'은 아닌 탓에, '오로지 노력'이라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신촌에 있는 모 대학에서 운영하는 저널리즘스쿨 예비학교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무료로 정식 코스까지 밟을 기회가 주어졌다. '합격률이 높으니 잘만 따라가면 희망이 있겠다'고 안심할 즈음, 부모님으로부터 자취방을 비우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을 빼는 대신, 아르바이트는 안 해도 되니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부모님 뜻과는 달리, 공부에만 전념하긴 힘든 상황이다. 신촌에서 진행되는 강의가 오후 3시에 시작해 10시에 끝난다. 부랴부랴 나와도 경춘선-ITX 막차를 놓칠 때가 많다. 결국 느린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1시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책도 읽고 신문도 보지만 피곤한 탓에 금세 곯아떨어진다. 전철에서 내내 졸아도 졸음기가 말끔하게 가시는 것도 아니다. 집에 오면 씻고 자기 바쁘다. 다음날 일어나면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기 일쑤다. 서울에서 살 때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강의 말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 것이다.
학원 대신 '인강', 카페에선 커피 대신 '물'
공부는 안 되고 피로만 누적되는 이 상황이 무척 답답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 다시 자취하겠다며 조를 수도 없는 일이다. 자취 생활에 드는 비용은 만만찮다.
"방값이 50만 원인데, 살다 보면 방값만 드는 게 아니잖아요. 공과금에 식비, 인터넷비 등등 다 합치면 70만 원이 훌쩍 넘어요. 여기에 휴대폰비, 개인적인 생활비도 들어가니 손 벌리기 죄송하죠. 언젠가 합격하리란 보장도 없으니까요. 제가 금수저도 아니고….
부모님은 하는 데까진 해보라고는 말씀하시긴 하지만, 올해는 넘어가면 안 된다고 은근히 압박하세요. 아마 계속 자취를 하면 그런 압박이 더 심해질 텐데, 그건 제가 싫어요. 차라리 대여섯 시간 걸려도 춘천에서 다니는 게 낫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9월 공동으로 낸 <대학생 삶의 비용에 관한 리포트 : 통계로 본 대학 교육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의 경우 월세로 66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연구소와 취업 포털 사이트 등에선 주거비 외에도 주식비, 부식비, 교통비, 통신비, 여가 활동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만 한 달 평균 4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토익 공부를 할 때, 학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은성 씨는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집중은 잘 안 되지만 비용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휴대폰은 3년째 쓰는 통에 버벅거림이 워낙 심해 부모님이 바꾸라고 하시지만, 오히려 은성 씨가 눈치가 보여 괜찮다며 버티는 중이다.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것도 아까워 친구들과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6000~7000원 하는 밥값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니, '식후 커피'는 꿈 같은 얘기다. 거의 매일 같이 신촌을 오가지만, 이 근처 카페에 가본 건 딱 한 번밖에 없다. '언시 스터디' 모임을 카페에서 할 때면, 은성 씨는 커피 대신 무료로 나오는 물을 마시곤 했다.
한참을 열거하던 그는 "말하다 보니, 궁상맞네요"라며 머쓱한 듯 웃었다.
"제가 금수저가 아니라고 해서 부모님이 원망스럽진 않아요. 하지만 집에 정말 돈이 많아서 집세나 용돈, 학원비 걱정 안 하고 원하는 공부만 했으면 벌써 합격하지 않았을까 해요. 적어도 우리 집이 춘천이 아니라 서울에만 있었어도 지금보단 조금은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하죠."
"비정규직만 만들어놓고 청년더러 눈 낮춰라?"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은성 씨는 괜찮다고 했다.
"요새 누가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요. 취업 준비로 다들 거의 1년 정도는 보내니까요. 다른 친구들 보면, 좋은 대학 나왔어도 원서 수십 군데 넣어도 서류 통과하는 게 한두 군데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저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도 확고한 꿈이 있잖아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2년 2월 대학 졸업자 426명을 조사해 미취업 지속 기간을 분석한 결과,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평균 8.3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그 '꿈'이 가끔은 발목을 잡기도 한다. 세상은 꿈이 있는 청년들에게 '열정 노동'을 요구하곤 한다.
은성 씨 역시 2년 전, 호되게 열정 노동을 '당했다'. 학부 생활을 마친 뒤, 한 매체의 자회사에 들어갔다. 정규직이라지만 근무 조건은 인턴이나 다름없었다. 연예부에 배속됐다. 하루종일 포털 '검색어' 기사만 썼다. 하루 동안 적게는 50개, 많게는 70개도 썼다. 일한 시간을 따져봤는데 최저 시급이 안 됐다. 주 6일에 밤낮없이 일했는데도, 초반 3개월 정도는 100만 원을 받았다. 연휴에도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쩔 땐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다음날인 일요일 새벽 1시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
"일한 만큼 돈을 주라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여기 업계가 다 그런 거 모르느냐'고 하더라고요."
노동 시간이 힘든 건 아니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의미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점이었다.
"허무했어요. 하루종일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는데, 그게 내가 취재를 한 걸 쓰느라 그런 게 아니라 남이 쓴 거 베껴다 쓰느라 바쁜 것일 뿐이었으니까요. '내가 이런 쓸모없는 짓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말로 멀쩡한 학교 나와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까웠어요. 그런데 저 아니라도 기자 하고 싶어 하고, 취직하고 싶어 하는 애들은 많으니까, 싼값에 데려다가 쓰는 거죠."
은성 씨는 "집이 잘 살았으면 그런 일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엔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좋은 회사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데 학교 마치고도 부모께 손 벌리는 게 부담스러워서, 일단은 작은 회사에서 돈을 벌다가 나중에 경력으로 좋은 데를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이런 판단은 불과 6개월 만에 깨졌다. 은성 씨는 노동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런 그에게 "청년들이 눈이 높아서 청년 실업률이 높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분노의 대상이다.
"비정규직이나 질 나쁜 일자리만 잔뜩 만들어놓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고, 그러면서 누가 좋은 데 들어가면 '우와' 하면서 떠벌리고. 세상이 모순 투성이에요."
2014년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능력과 무관한 청년 실업률은 2010년 8.4%에서 2014년 10.3%로 상승했다. 청년 또한 2015년 통계청 경제 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의 체감실업률은 21.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그런가 하면,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300인 이상 중견 사업체에서 종사하는 20대 청년층 비중은 2006년 23.6%에서 2013년 17.2%로 6.4%포인트 감소했다.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사회 밖 청년'은 어떻게 보호받나요?"
은성 씨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불행해질 것 같다"고 했다.
단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청년 활동 지원 사업, 이른바 '청년 수당'에 귀가 솔깃해졌다. 서울시에서 오는 5월부터 시행 예정인 청년 수당 제도는 만 19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 3000명 중 정기 소득 없는 미취업자를 우선으로 최대 6개월간 월 50만 원씩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은성 씨와 같은 취업 준비생, 이른바 '사회 밖 청년'에 주목한 정책이다.
'사회 밖 청년'이란, 교육 과정을 마치고 사회 진입까지의 이행 기간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말한다. 일할 의지가 없고, 교육이나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족'(NEET)을 비롯해 졸업유예자, 불안정노동자(아르바이트생)이 대표적인 '사회 밖 청년'이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만 19~29세) 인구의 34.9%인 50만2000명이 여기에 속한다. 청년유니온은 일자리 저하, 빈곤 세습 등으로 '사회 밖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들의 문제가 개인이나 가정의 책임을 넘어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춘천으로 다시 전입 신고를 해 대상자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혹시' 하는 생각에 다시 서울 자취 생활을 생각해봤지만, 선발 인원이 워낙 적어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50만 원이면 딱 자취방을 구할 수 있는 금액이라, 여전히 눈길이 간다.
은성 씨는 선발제로 운영되는 청년 수당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특정 연령 전원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성남시 '청년 배당'에 대해선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공돈'을 받아 쓰다가 나중에 끊기면 박탈감이 더 클 것"이란 판단이다.
그는 하지만 청년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상황이 다행스럽다고 했다.
"저 같은 취업 준비생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라 여러 혜택 대상에서 밀려나 있어요. 행복 주택 신청 대상도 학생 아니면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한테만 적용돼요. 그런데 취업 준비생이야말로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신분이니까, 관련 정책이 좀 더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며칠 뒤인 23일, 서울시는 '반값 월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노후 고시원과 여관·사무실 등을 리모델링한 후 청년(만 20~39세)을 위해 주변 시세의 반값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 막바지, 은성 씨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낯빛이 좋지 않았다. 허탈한 듯 웃었다.
"인턴 또 떨어졌나 봐요. 합격자들 이미 전화 돌았대요."
강의를 듣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7시간 연강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의 손엔 커피 한 잔 들려 있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죠."
이 시대, 청년에게 꿈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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