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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 돈 벌 궁리만 하는 건가?

[민교협의 정치시평] 성찰적 지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상적으로만 보면 어제나 오늘이 다를 리 없으며 시간은 그저 그렇게 변함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바라보면 시간에는 분명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결정적으로 세계를 바꿔놓은 대전환의 시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정적인 변화의 시간을 미리 알고 대처하면 그 다음 시대를 주도할 수 있지만 이를 놓치면 다른 문화권에 종속되거나 심하면 식민지로 전락하여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16세기 이래 세계에서 가장 강성하고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계의 중심에 있었던 중국은 19세기에 이르러 점차 쇠퇴하면서 부패와 무능이 깊어갔다. 그와 함께 유럽 세계는 신대륙의 자원과 산업혁명, 계몽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체제를 바꿔놓고 있었다. 이 변화와 세계사적 전환을 보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 빠져 있었던 중국이 이후 어떤 굴욕을 겪었는가. 중국이 모든 것일 줄 알던 조선은 그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던가. 역사 이래 그 어느 제국보다 더 악랄하고 반인륜적이었던 일본이 구한말 이래 우리에게 행한 수없는 야만적 행태를 생각해보라. 위안부 문제도 그런 반인륜적 만행 가운데 하나이다. 그 뿐 아니라 징병과 징용, 한반도 내에서의 착취와 탄압은 나치 독일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야만이었지 않은가.

이 모두는 전환의 시대를 읽지 못하고, 그 변화에 앞서 대처하지 못한 구한말 정치권과 지식인들의 무능과 맹목 때문이었다. 아니 당시 지배 권력은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한 줌 이익만 생각하고 민중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약탈하는 데 있어서는 참으로 교활하고 영리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황제처럼 미화하는 고종의 무능은 말할 것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탐욕과 부귀에만 영리했던 당시 지배권력층의 행태를 되돌아보라. 그 이후 한반도의 민초들이 겪었던 너무도 비참하고 처절했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 모두가 단지 당시 지배권력의 탐욕과 무능 때문이었을까. 전환과 변혁의 시간을 보지 못하고, 세계사에서 급격하게 부상하는 유럽 제국의 힘과 야욕을 읽지 못했던 지식 계층의 책임은 묻지 않아도 좋은가. 또는 그런 무능과 탐욕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민중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말해도 좋은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까닭은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금의 세계는 결정적인 전환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19세기 이래 전 세계를 장악하고 세계체제를 결정했던 유럽 근대 문명이 한계에 이르고, 그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바꿔야하는 변혁의 시대가 지금의 시간이다. 지성적인 측면에서도 지금은 이 한계를 넘어 시대를 해명할 시대정신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고, 나아가야할 길을 사유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지금의 시대상황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정신과 "아직 오지 않은" 시대정신 사이에 놓인 이중의 결여에 처한 시기이다. 19세기 이래 전 세계를 압도했던 산업화로서의 근대체제는 물론, 17세기 이래의 서구 자본주의 체제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 국민국가(nation)와 그에 따른 민주주의적 정치질서 역시 세계 곳곳에서 보듯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식측면에서도 과학기술주의로 대변되는 근대학문체계는 성찰적 지성과 철학적 학문을 진리의 영역에서 배제함으로써 더 큰 의미론적 위기를 초래했다.

한국은 이런 모든 모순과 갈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약탈적 자본 중심의 경제체제, 북핵 위기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이만큼 격렬하게 나타나는 곳은 아마 중동 지역 외에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 우리의 생활세계와 생활시간은 근대의 한계와 모순이 극명하게, 가장 처절하게 드러나는 생생한 현재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와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정원 대선 개입,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정치권의 부패와 불법, 사대강 사업과 각종 토목 사업에서 보이는 생활세계 파괴와 생태적 무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합의, 북핵 위기…. 도대체 얼마를 더 거론해야 우리 사회의 위기를 말할 수 있나. 그럼에도 이 사회는 오로지 자본, 경제, 돈만을 말한다. 사회를, 지성을, 문화와 자연을 오직 자본에 종속시키려고만 한다. 젊은이를, 사람을, 여성을, 성인 남성을, 노인을 오직 경제 성장과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 교육은 자본의 크기에 종사할 기능인만을 양성하려 한다. 생활 세계 전체를 자본에 복속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여 어떻게 더 많은 자본을 얻을 것인지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렵고, 그래서 혐오하고 불신하면서 "다른 그들을" 배제하려 한다. 그래서 자신의 한 줌 이익을 키워줄 것 같은 정치에 막무가내로 매달리고 있다. 지금의 곤궁함이 사실은 그들 때문인지도 모른 채.

미친 사회, 맹목의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왜 지금 우리 사회에 담론이 사라지고, 성찰적 지성이 매몰되었으며, 지성이 불신 받고 있는지 모르는가. 노동이 죽어가고 사회적 타살이 전 세계 최고에 이르렀지만 그 노동을 더 노예화하려는 노동법이 노동 개혁과 경제활성화법으로 미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불법과 부패를 저질러도, 학생들이 죽어가도, 언론이 쓰레기가 되어도 사회는 조용하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도 "대통령이 하시는 데 다 뜻이 있겠지, 우리는 하라는 데로 한다"는 맹목과 생각 없음이 판을 친다.

과연 희망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이 맹목을 성찰할 지성은 어디에 있나. 우리가 가야할 미래와 인간다운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 생각하고 공부하고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때 그들처럼 노예의 굴종을 겪게 될 것이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그 사회는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변혁을 이루지 못하면 구태에 빠져 서서히 부서져 갈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 우리 모두가 성찰적 지성을 회복해야 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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