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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때려 잡고, 조폭은 지켜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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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때려 잡고, 조폭은 지켜주는 나라

[민교협의 정치시평] 지배 권력과 조폭 집단의 침묵의 카르텔

지난 1차 민중총궐기와 관련하여 경찰은 민주노총 등 일부 참가단체 대표들에게 소요죄까지 적용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언론이 완벽하게 장악된 현재,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한 채, 그리고 살입적 진압작전으로 한 시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실도 축소된 채, 마치 이러한 일련의 상황의 본질에 대해 시위 자체의 폭력/비폭력의 문제인 양 사태를 왜곡시켜 오는 데 성공한 지배 권력은 경찰 등 공권력을 내세워 소위 '엄정한 법 집행'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와 같이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는 둘째치더라도 과연 경찰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엄정한 법 집행을 해 왔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 이후 도저히 한 두 페이지로는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철저하게 권력과 기득권 세력에 굴종했다. 그들의 지배를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해 왔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수호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극도로 편파적인 법 집행의 역사는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대한민국의 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재 다시 그 더러운 역사가 한창 재연 중이라는 점에 더 큰 비극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권력 남용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 동안 거의 주목을 하지 않아 왔던 우리 사회의 무법지대,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논의를 하고자 한다. 엄정한 법의 집행은커녕 공권력의 방조 혹은 공권력과의 공생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이러한 비공식적이고 범죄적인 영역에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와 서민을 착취함으로써 부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다양한 지배 집단들,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권력이 소위 '침묵의 카르텔'을 맺고 있어 좀처럼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현재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가 있다. <내부자들>이다. 물론 탄탄한 구성과 연기자들의 명연 탓에 인기가 높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웃음기 뺀 무거운 영화가 인기를 얻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즉 이 영화는 '권력' 주위에 서로 얽혀 있는 '공권력과 조직폭력집단과 언론'이라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과장은 분명 있지만, 결단코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많은 공감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집단들은 때로 서로 무섭게 싸우기도 한다. 그 어떤 법의 적용도 집행도 잘 되지 않는 이런 집단들은 종종 서로 싸우다가도 공통의 이익을 위해 서로 필요할 때에는 무섭게 침묵하며 단결한다.

지식인들이 보수와 진보, 자본과 노동,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과 민족,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등등 수많은 학술적 논의를 통해서 지배계급이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수많은 이론 논쟁과 실천을 해 오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지배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위로는 정당 정치에 가려진 혹은 정당 정치와는 별도로 구성되어 온 다양한 기득권 세력이 있다고 한다면, 아래로는 바로 이들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비공식 집단들, 범죄 집단들이 우리 사회를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자료 부족이나 단순한 범죄 영역이라고 치부하여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왔다.


사실 <내부자들> 이전에도 유사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러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왔고 그 때마다 상당한 사회적 반응들이 있었다. 이렇게 문제의식을 드러낸 영화 뿐 아니라 단순한 조폭 영화나 조폭을 소재로 한 코미디물에서조차 너무나 자주 곳곳에서 나올 만큼 이들의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비극을 우리는 겪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도 한 조직폭력단체의 중간 간부의 결혼식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조직원들이 세를 과시했지만, 경찰은 단지 반대파 등 폭력 사태가 날 경우를 대비해 경비를 서 준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 바 있었다. 물론 특정 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정한 법 집행'을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 대해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서 탄압할 때와는 너무 다른 이러한 광경은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보호해 주는 이들과 탄압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과거에는 야당이나 시위대를 공격하는 데에 종종 동원되던 이들은 80년대 이후 구사대라는 명칭으로 파업을 파괴하고자 동원되거나 철거민들을 협박하는 등 철거에 동원되어 왔다. 이들 소위 '용역'들은 최근까지도 곳곳에서 법 위에 군림하며 공공연하게 무법지대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우리네 경찰들은 전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지 않는다. 이들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경찰 앞에서도 웃통을 벗고 용 문신을 자랑하면서 해머를 휘둘러 가며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과 철거민과 같은 서민들을 겁박한다. 용산 참사 때나 쌍용자동차 사태 때에도 경찰의 묵인, 아니 경찰과의 협력 하에서 이들은 방패 등 사제 무기까지 공유하며 나란히 서서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때로는 알바 형식으로 일당 받는 청년들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핵심은 조직 범죄 집단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마약이나 총기 밀매 등이 어려운 한국에서 그 동안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장된 각종 성매매산업 주변에서 기생해 왔다. 일부는 사채업이나 소위 '못 받은 돈 받아 주는 심부름 센터' 등으로 다소 업종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점차로 합법적 근거지가 필요하게 된 이 집단들은 건설업이나 유통업 등으로도 진출하는 등 기업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는 소위 보도방 등을 포함한 각종 성매매산업을 중심으로 한 유흥업이다.

그런데 성매매든 어디든 이들의 근거지들은 심지어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절대로 축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았다. 언제나 초호황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지배 집단들 뿐 아니라, 계급을 막론하고 진보적이라는 남성들조차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여성들을 착취하는 구조에서 재미를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가 어렵다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복지를 축소하면서도 접대비 상한제를 철폐하거나 성매매특별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등 이러한 '카르텔'을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다양한 사실상의 성매매업소들은 많은 남성 노동자들의 비판정신을 사라지게 하는 한 근거지이기도 하다. OECD 국가들 중 최악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댓가는 휴가권이나 휴식권과 같은 정당한 복지 제공이 아닌, 이러한 곳에서의 성매매가 상정된 유흥이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은 스스로 힘겨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반범죄적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GDP 상으로 농림수산업을 합친 비중보다 더 높다는 개 성산업 비중이다. 여기에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사회적 서비스업 비중과 가장 높은 자영업 비중,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가장 낮은 복지 비용이라는 지표는 한국 사회의 남성은 물론 여성 노동 대중들이 결국 다양한 반범죄적 비공식적인 영역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보장을 포기하고 국민 다수를 무한 경쟁 구조 속으로 몰아넣어 서로 물어뜯고 속이고 억압하는 데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정직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것이야 말로 바보 같은 짓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극소수의 집단 외,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은 이러 저러한 비공식적 노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배 집단들의 쾌락과 이해관계가 얽힌 조금 더 범죄적인 영역으로의 진입은 필연적인 수순이 되고 만다. 유아기 때부터 승자만을 위하는 사회를 조장하는 국가의 위험한 정책 속에서 수십만에 달하는 학업 포기 학생들과 가출청소년들이 양산되는 상황은 이러한 범죄적 영역들의 확장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 그러는 사이에 이러한 영역에서 남성들은 착취자가 되는 반면 여성들은 철저한 피착취자로 강제된다.
현실이 이러한데 놀랍게도 범죄학이나 범죄사회학에서는 이러한 측면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일탈은 다소 낭만화되어 있는가 하면 범죄는 사회의 진보와는 큰 관련 없이 다루어진다. 물론 수많은 이론들이 권력이나 부의 불평등 등으로 인한 범죄 발생에 대해 논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국가권력이나 지배집단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배의 한 부분을 이루는 측면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초점은 예방이나 교화 등에 맞춰져 있다. 물론 범죄라는 카테고리 속에 너무나 다양한 범죄들이 있고, 따라서 예방이나 교화 등으로 맞추더라도 다뤄야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선천적이든 사회 환경에 의한 후천적 현상이든 한 사회 내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주변화된 집단들은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들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틀과 영역이 필요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근거 토대를 축소시키기 위한 지배 집단들의 의지에 따라 많은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 국가 사회주의 체제의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러한 집단들이 최소화되어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집단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이 대규모로 조직화되어 사실상 국가 지배 집단의 일원이 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조직 폭력 집단들이 지배 집단과 공공연하게 카르텔을 맺을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이러한 집단들이 공공연하게 기생하고 커 나갈 수 있는 자본주의 특유의 인간의 상품화, 그를 통한 이윤 극대화의 공간들, 그리고 그러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지배 동맹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 폭력 집단의 지배는 노골적이지 않았다.

또한 유럽 국가들, 특히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복지 국가에서 마피아가 활개를 친다는 말은 거의 들어 보지 못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사회라고 그런 집단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그러한 영역이 최소화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야기하려면, 그리고 양성 평등한 복지 국가를 지향하려면 조직 폭력 집단을 비롯한 각종 반범죄적 비공식 영역에 대한 논의는 절대로 필요하다. 이러한 영역은 특히 한국의 경우 철저하게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집단으로부터 비호를 받기 때문에 더욱 공개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시도 때도 없이 동원되는 '종북'과 '포퓰리즘', 그리고 '경제 위기' 등의 용어로 국민을 현혹시켜 복지 국가로 나가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끈질기게 방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쾌락과 탐욕을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소비하는 지배 집단들. 이들과 이해가 맞닿아 여성들과 서민들을 착취하면서 당당하게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조직 폭력 집단들. 특히 드러나 있는 집단들에 비해 그 동안 그 단순한 범죄 영역 중 하나 정도로만 인식되어 왔던 법의 집행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 집단에 대한 연구와 본격적인 축소를 위한 논의가 너무나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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