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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주면 감옥 간다'는 학생들, 문제는…

[민교협의 정치시평] '인성교육' 제대로 하려면?

며칠 전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작년 메르스 사태 때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었다. 명문 여고의 학부모였는데 전화를 해서 자기 딸이 전교 1등인데 메르스에 감염되면 안되니 학교에 가지 않겠지만 출석으로 인정해달라고 떼를 썼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보도를 들은 기억도 났다. 그러니까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당히 있을 법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어디 이런 예 뿐이랴. 언젠가는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는 일도 불사하겠다는 설문 내용에 80%의 학생들이 선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개인의 이기적 욕심에 관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학생들 간의 '왕따' 현상, 이로 인한 자살 사태 등 우리는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이러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극단적으로 발전해서 도로에서 일어나는 위협 운전, '묻지마 살인' 등으로도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이기심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성 교육이다. 정부는 작년에 인성관련 특별법도 만들고, 인성 교육을 강조하며 각종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인성을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이며 그 핵심가치는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교육계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인성 교육의 방법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없는 채로 이러한 핵심 가치를 가르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퍼져있는 것 같다.

인성의 의미와 형성에 관한 심리학적, 철학적 논의는 주지주의적 교육과 체험적 교육이라는 방법을 교육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주지주의적 교육을 단순한 주입식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예, 효 등의 덕목의 가치를 설명하고 이를 토론하는 인성 교육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금방 이러한 주제에 대해 식상해 하고 지루해 하여 결국 주입식 교육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체험 교육이 제시되고 있다. 이 역시 교육계의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하는 쟁점인 것은 틀림없고 나는 교육계의 일원으로서 주지주의적 접근, 특히 고전독서를 통한 인성 교육에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인성이 무엇이며, 인성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복잡한 쟁점을 검토할 여유는 없지만 이 문제를 생각할 때면 우리 사회가 인성 문제의 복잡한 사슬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로 대응 요법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답답한 마음이 항상 들어 왔다. 원인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 8일 있었던 교육계 신년교례회 모습. 교육계 인사들이 총출동한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청와대

나는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얽혀 있는 사슬들로부터 나온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성이 안 좋은 개인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고, 또 인성 교육에만 매달려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적으로 경쟁의 압력이 약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심성이 극대로 개인화되어 있지 않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사회는 자연히 타인에 대한 배려를 보여준다. 물론 현대사회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개인의 이기주의가 인정되고 또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그 정도가 더 매우 심하다. 과거에 비해 경쟁이 더 극도로 발달한 상태이기도 하다. 자기 외에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그래서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변해 있는 상황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배틀로열>이라는 일본 영화는 한 학급의 학생들을 섬에 보내서 한명만 살 때까지 서로 죽이게 만드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우리 사회를 우화적으로 극단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 같다. 요컨대 인성 문제는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교육만의 문제도 아니다. 즉 극도로 악화된 경쟁주의가 이 문제를 낳는 본질적 원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인성 교육에 매달려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뭔가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제 문제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인성 문제를 포함한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되는 구조적, 제도적 원인을 찾아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극도로 악화된 경쟁주의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자는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쟁은 나쁜 경쟁, 즉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전체가 도움이 되는 경쟁이 아니라, 일종의 제로섬 게임 같은 경쟁으로 변질되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현대 사회에서 경쟁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경쟁만으로 모든 것이 구성되지 않는다. 어떤 조직과 사회도 집단의 정체성, 이익이 있다. 따라서 협력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생산성도 오르지 않고 집단과 사회의 풍요로움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협력과 협동을 장려하는 제도와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인성 교육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학교 사회에서 경쟁 압력을 완화하고 협력적 교육을 활성화하려면 성적 평가 방식부터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주제가 이러한 제도적 문제로 초점이 맞춰진다면 우리는 금방 이 문제가 수많은 제도적 사슬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절대평가로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성적 인플레 때문이고, 성적 인플레가 문제되는 이유는 학교들이 입시 경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학교가 입시 경쟁에 빠져 있는 이유는 대학 서열화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심장부에는 죽음을 불사하는 경쟁이 있고 따라서 우리사회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이 죽음을 불사하는 경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분명히 죽음을 불사하는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묻지마 살인'을 비롯하여 '양극화의 심화', 몇 년간 정체된 '일인당 소득' 등 우리 사회의 성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쟁이 부족하지 않다. 협동이 부족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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