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를 소파 팔걸이의 뭉툭한 끝에 비비면서 기분 좋아하는 4살짜리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다. 자리에 있던 엄마들은 그에 대해 아무도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임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우선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의 좀 전 행동이 기분이 좋아지는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말해 주고 다만 공공연한 장소에서 행하기보다는 사적 공간이 보장되는 곳에서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 주었다.
얼마 전 아이들이 내 침실 서랍을 뒤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섹스 토이(자위 기구)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신기했는지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
"엄마 서랍 안에 재미난 물건들을 봤어요. 버튼을 누르니까 움직이던데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황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응, 엄마 장난감이야. 너희들도 장난감이 있듯이 엄마도 장난감이 있어. 근데 엄마가 혼자 놀 때 사용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는지, 더이상 질문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엄마는 너희 개인 서랍 뒤지지 않지? 그러니까 너희도 이제는 엄마한테 묻지 말고 뒤지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랍 안에는 콘돔 한 박스도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묻지 않았다. 성교육은 나에게도, 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았던 터라 긴 이야기를 이어서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딸들이,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즐거이 누리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는,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가까운 여자 친구들과 자위 행위 방법을 포함해서 성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어색하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을 접하게 된 것도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사랑을 통해서였다. 성적 존재로서의 내 몸에 대해서조차, 구체적 실마리는 남자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막상 섹스를 즐기고 욕망을 뚜렷이 자각하게 되면서도 이를 표출하는 일은 온갖 오해와 왜곡과 싸워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성을 둘러싼 외부의 비틀어진 시선뿐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죄의식과 감시의 시선 또한 극복해야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여자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의 최초 성적 경험은 많던 작던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나의 경우는 초등학교 2학년 여름, 시골집에서 당시 고등학생이던 친척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공포의 질감은 끔찍하리만큼 확연했다. 오랜 시간 그 여름에 벌어진 일은 내게 캄캄한 암흑의 틈으로 남았다. 절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할 낭떠러지였다. 자연스럽게 남녀의 성은 기피하고 싶은 무언가로 성장 과정을 따라다녔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딸들은 그나마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교육은 전문가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성에 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냈다. '섹시하다'는 단어가 여기저기 넘쳐나는 세상을 사는 그들에게, '섹스'만큼은 모른 척하도록 강요할 수 없었다. 선배 엄마들과 선생들의 추천으로 성교육 동화를 함께 읽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지난한 과정 등 성 행위에 따르는 책임을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감정과 상태에 관한 성숙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언급했다.
맨 처음 아이들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눈 것은 아이들이 만 7살, 9살 때였다. 차로 함께 이동 중에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 문제의 단어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섹스라는 단어를 두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첫째는 무안한 듯 섹스(sex)가 아니었고 식스(six)였다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둘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물었다.
"섹스가 뭔데?"
둘째가 대답했다.
"친구가 설명은 해 줬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는 않아. 키스하고 만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섹스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자신도 즐겁기 위해서 몸으로 함께하는 행동 중 하나야. 잘 성장한 성기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신체의 중요하고 은밀한 부분을 보이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를 잘 배려해서 해야 하는 행동이야.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해. 남자랑 여자랑 할 때도 있고 여자랑 여자가 할 때도 있고 남자랑 남자가 할 때도 있는데, 책임감이 많이 따르는 행동이라서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그 의미를 알고 배워야 하는 일이야. 즐거움에는 보통 책임이 따라. 그리고 상대방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면 그건 상대방에 대한 일정한 책임까지 떠안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섹스에는 감정과 몸이 개입되는 거고 그로 인해 나도 상대방도 감정과 몸의 변화를 겪게 되니까. 그 변화란 건, 우리가 죄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 조심스러운 거고. 엄마랑 아빠는 함께 소중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정성껏 섹스를 한 뒤 너희들을 얻었어. 섹스는 그만큼 대단한 일이기도 해. 하지만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 관한 책임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임까지 안을 수 있는 일이야."
이야기를 마친 뒤, 백미러를 통해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절대 섹스를 하지 않을 거야."
아직은 주제가 어색한 듯 첫째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글쎄, 그걸 미리 결정할 필요는 없어. 단지, 그에 대한 질문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봤으면 좋겠어. 섹스는 세상의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때가 되면 알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거고."
머지않아 나의 첫째는 첫 생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가 품게 될 대단한 능력이 그 아이의 선택 아래 삶과 조화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 더불어 몸과 마음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조촐하지만 멋진 축하 방식을 궁리 중이다. 여자의 성장은 세상이 함께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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