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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끄고 이리 와, 놀아 본 언니가 ...응응응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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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끄고 이리 와, 놀아 본 언니가 ...응응응ㅋㅋㅋ"

[프레시안 books] 윤이희나의 <아슬아슬한 연애 인문학>

"엄마 아빠가 발가벗고, 엄마 엉덩이에 아빠 거기를 갖다 대면…. 아기가 잘 나온대!"

내 인생 최초의 섹스 이야기는 이 따위였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말인데, 애가 나오면 나오는 거지 '잘' 나오는 건 뭐며, 전자 기기 매뉴얼 같은 어정쩡한 표현은 뭐란 말인가. '로댕'을 '오뎅'으로 '오뎅'을 '어묵'으로 받아 적는 커닝처럼, 탄생과 성애의 담화가 비밀스럽고 음습하게 구전되는 탓이리라.

비디오 가게 정보지에서 '오르가슴'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이건 또 뭔 '가슴'인가 싶어 사전을 뒤져봤던 기억도 생생하건만, 이제는 단어가 아니라 그 자체를 찾는 나이다.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다"고 속삭이는 남자친구에게 "난 안 그럴 건데? 혼자 있는 거 좋아하는데?"라고 무안 주던 소녀였지만, 이제는 '밀당(밀고 당기기)'도 제법 할 줄 아는 능구렁이다.

얼굴이 다 화끈거리지만 한편으론 신통하다. 이 모든 앎은 스승의 지도편달 없이 오로지 홀로 일궈 낸 결실 아니던가! 이게 다 중학생이었던 내게 '19금' 만화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이요 더 과격한 책을 추천하기도 했던 OO아파트 만화책 대여점 사장님 덕분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잠든 시간에 화끈한 영화를 틀어주던 모 케이블 채널에 감사해야할 일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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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한 연애 인문학>(윤이희나 지음, 이진아 그림, 한겨레에듀 펴냄) ⓒ프레시안
물론 농담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나도 그랬어"라고 공감하는 사람이나, 자기 아이들이 성애와 관련된 지식을 어떻게 터득할지 불안한 사람이라면 <아슬아슬한 연애 인문학>(윤이희나 지음, 이진아 그림, 한겨레에듀 펴냄)을 당장 펴드는 게 좋겠다. 물론 섹스에 대한 호기심에 몸이 달기 시작한 10대들이라면 더욱 '강추'다.

연애 경험이 많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나름 제 아들딸에게 자유를 허용한다는 '쿨'한 부모도, 그리고 몇 번의 이성 접촉에 이제 벌써 어른인 척하는 10대도 결국 그늘진 경로를 통해서만 성을 배웠기는 마찬가지. 어디 연애며 섹스가 야동이나 만화책에 나오는 그것대로 이뤄지던가. 그러나 누구도 드러내 놓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에 오늘도 소녀들은 팬픽에 밑줄을 긋고 소년들은 파일을 공유한다.

해서 '먼저 놀아 본 언니'라는 윤이희나가 나선 것이다. 저자는 '민들레'라는 대안 교육 공간에서 10대 소년소녀들과 같이 지내며 일하는 동안 그들의 오색찬란한 연애 행각을 목격하면서 연애 인문학 수업을 기획한다. 책 창고에 숨어 키스하는 녀석들, 몰래 한 단체 외박의 경험을 떠벌이는 녀석들 속에서 저자는 "내가 헤매고 있을 때 주변의 어른이 판타지가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팔을 걷어 부친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저자가 다다른 결론은 10대들의 현장에 "연애는 넘쳐나되, 제대로 된 정보나 지식은 희박했다"는 판단이다. 일단 첫 단계,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판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서울의 소년소녀 400여 명에게 이상형에 관한 설문을 돌린 결과 소년들은 "S라인에 청순가련하면서도 관능미를 보이는 여자"라든가 "키는 160~167㎝ 정도고, 귀여운데 4차원인 예쁜 여자"라든가 하는 답변을 줬다.

소녀들은 "순수하고 나만 바라봐 주고 다른 여자한테는 무뚝뚝하고, 속이 깊고 지적이고 개념이 잘 박인 남자", "지하철에서 문에 기대고 있을 때 "너 그러다 넘어진다"면서 안으로 끌어 주는 남자"라고 대답한다. 귀엽다며 웃고만 넘길 게 아니다. 소년소녀들의 답변을 분석한 저자의 통찰이 눈부시다. 소년들의 이상형은 단순히 외모와 성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만, 소녀들의 이상형은 나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는 것.

이 차이는 소년들이 야동을 통해, 소녀들이 하이틴 로맨스나 팬픽을 통해 연애를 학습하고 욕망을 대리 추구하는 것과 흡사하다. "전자는 관계가 생략된 미디어이고, 후자는 관계가 핵심인 미디어다"라는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옳소. 이토록 감수성이 다른 텍스트로 몰래몰래 학습하다 보니 소년은 소녀의, 소녀는 소년의 욕망을 읽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다음 단계, 연애의 기술이라든가 '진도'의 문제다. "제가 좀 쉬워요"라며 좀 더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일곱 살 소녀에게 '전화는 절대 먼저 하지 않기, 문자는 세 번에 한 번 꼴로만 답하기, 무심한 척 굴다 은근 슬쩍 스킨십하기'와 같은 연애의 잔기술을 찔러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저자는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으라고 조언한다. '나'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해,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기 기준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스킨십 진도의 문제로 들어가면 좀 더 현실적인 고민들이 날아온다. '이놈에게 입술을 허락해 줘야 하나', '섹스는 언제부터 해야 하나'…. 10대가 아니더라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거의 '미치고 팔짝 뛰는'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일단 독자들을 진정시킨다.

대신 질문의 방향을 달리 해 보자고 조언한다. "'진도의 고민'이라는 이름을 '내가 실현하고픈 소망들'로 바꾸어 보자"는 거다. "주체적이었는가?", "만족스러웠는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전제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부모들도 자녀들의 연애나 성애 경험에 겁을 먹거나 아예 안 된다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그들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중심에 두고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한편, 책 제목은 연애 '인문학'이지만, 콘돔 사용법과 다양한 피임법 등을 소개한 3장은 실용서에 버금간다. 나 역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음을 고백한다. 여기 나온 정보들만 잘 인지하고 있어도 어린 커플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고는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오이에 콘돔 끼워보고, 점액 검사를 위해 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이 '언니'가 온몸으로 가르쳐 주는 덕이다.

또 의외의 복병은 '사랑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을 단 마지막 4장이다. '이 정도면 괜찮을 법한데 난 왜 애인이 없을까', '좋은 사람이 나타나질 않아서 연애를 못 하겠다'고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관계의 냉엄함을 다룬 이 부분부터 후딱 먼저 읽어도 좋겠다.

저자는 "우정이든 사랑이든 현재 자기 존재의 수준만큼, 딱 그만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서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먼저 자기 존재를 성찰해 보라고 권유한다. 이별 대처법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코끝이 살짝 시큰해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그리 애지중지 논했던 모든 '관계'를 다시 '0'으로 돌려놓는 작업이기에. 저자는 이별도 사랑의 한 과정이며, 언젠가 이별과도 이별해야 한다며 진심어린 충고를 해 준다.

연애의 본질을 어떻게 글로 파악할 수 있느냐며, 혹은 누가 남의 시시콜콜한 사랑 얘기 궁금해 하느냐며 '연애 지침서' 따위의 책은 일절 보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피임 실용 정보를 동시에 담은 이 깜찍한 책은 예외로 해야겠다. 걸쭉하고 쫄깃쫄깃한 문체와 저자가 만난 10대들의 '빵 터지는' 질문들, 일러스트레이터 이진아의 귀여운 그림이 읽는 맛을 더한다.

이 책엔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법이나 상대를 유혹하는 법 따위의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연애란 자신의 조건에 바코드를 붙여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이 아니라, 나와 너를 포함한 관계를 창조해나가는 일이라는 간단한 명제로부터 시작하는 연애 '인문학'이다. 케이블 TV 채널을 오가다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신의 '스펙'을 프레젠테이션 하거나 재력을 자랑하는 남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연애 계(係)에서도 인문학이 위기긴 위긴 것 같단 생각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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