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 신년사에서 다음 몇 가지를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올해 북한이 실행하려는 정책의 총체적인 초점과 맥락은 무엇인가? 김정은은 올해 '정치·외교'와 '군사·무력 시위'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핵실험과 인공위성(로켓) 발사를 할 것인가? 경제 분야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인 남북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고 또 대미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올해 북한이 해 나가려는 정책의 총체적인 초점과 맥락은 무엇인가? 이번 신년사의 모든 초점과 맥락은 올 5월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그것을 통해 본격적으로 '김정은 시대'를 개막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4년간 나름대로 여러 난관을 극복해 낸 후 지난해 10월 당 창건 7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고, 35년여 만에 당대회를 개최하여 명실상부한 자신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는 당 제7차 대회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빛내야 한다면서, 당대회에서 "우리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올해에 "강성 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올 제7차 당대회는 1961년 9월 제4차 당대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이 연안파와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궁정 쿠데타를 당해 실각할뻔 하는 등('8월 종파 사건') 혼란한 상황이었다. 김일성은 이후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한 후('반종파 투쟁')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단일 지도 체제를 확립했다.
제4차 당대회가 김일성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를 개막하는 대회였다면, 제7차 당대회는 김정은이 그렇게 하는 대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4차 당대회가 김일성에게 "승리자의 대회, 단결의 대회"였다면, 제7차 당 대회는 김정은에게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가 되는 것이다.
둘째, 김정은은 올해 대내외 정치를 해 나가는 데서 '정치·외교'와 '군사·국방력 시위'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핵실험과 인공위성(로켓) 발사를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올해 정치·외교가 군사·무력 시위보다 더욱 중요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도 자제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10월의 경축광장에 펼쳐진 격동적인 화폭들은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 올린 것보다 더 큰 위력으로 누리를 진감(震撼, 울리어 흔듦)"했다고 말했다. 이는 핵실험이나 인공위성 로켓 발사보다 당 창건 70주년 행사에서 얻은 "격동적인 화폭"들이 더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군사력, 핵무기가 아닌 정치, 외교, 당의 위상 강화 등으로 자신의 승리를 담보하겠다는 의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선군'이라는 표현은 단 2회만 사용했고(지난해에는 4회 사용), 지난해 신년사와 달리 올해에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함께 하겠다는 '병진 노선'에 대한 언급 자체가 빠져있다.
주목할 것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당의 영도와 지도를 아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신년사에서는 "인민군대에서는 전군에 당의 유일적 영군 체계를 확고히 세"운다는 표현을 한 차례 하고 있으나, 올 신년사에서는 "전군을 당의 유일적 영군 체계가 확고히 선 혁명적 당군, 죽어도 혁명 신념 버리지 않는 견결한 당의 군대로 더욱 강화 발전시"킨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사망 이후 지난 4년간 당의 권위의 전면적인 회복과 당으로써 군을 영도하고 통제하는 메커니즘이 자리 잡으면서, 군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는 '선군 정치'를 벗어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올 신년사는 군보다는 "영웅적인 김일성-김정일 노동 계급은 주체 혁명의 핵심 부대, 나라의 맏아들답게 당의 사상과 위업을 맨 앞장에서 받"드는 세력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러한 표현은 없었다.
경제 강성 국가를 만드는 데서, 또 제7차 당대회에서 강성 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내어놓고 또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노동 계급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이름을 붙여 "김일성-김정일 노동 계급"이라고까지 표현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셋째, 그렇다면, 경제 분야는 어떠할 것인가? 우선 지난해 신년사는 부문별 설명에서 '국방 공업'이 맨 먼저 나와 있었지만, 올 신년사에는 '경제'가 맨 앞에 나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는 해로서, 김정은으로서는 "강성 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하는 것이다.
특히 "인민 생활 문제를 천만 가지 국사 가운데서 제일 국사로 내세우"면서 "농업 근로자들은 사회주의 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 참호에 서 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분발하여 농업 생산에서 전변을 일으켜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먹는 문제가 그동안 농업 분야에 도입된 개혁 조치 덕분에 나아졌지만,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는 올해에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신년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 중의 하나는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그 우월성과 생활력이 높이 발휘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부분이다. 지난해 신년사까지만 해도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의 '적극적 확립' 노력을 이야기 했는데, 올해는 그것의 '전면적 확립'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당대회에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사상과 이론도 구체화되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넷째, 김정은은 올해 남북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려고 하는가? 올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에 대한 초점은 김정은이 '남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은 지난해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의 합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거나 대화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면서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국 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 선언, 10.4 정상 선언의 이행을 토대로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 문제, 통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남한에 대한 통일 전선을 말한다기보다는 남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 대화에 나서도록 요구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압력을 가하는 행위로 이해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김정은은 또한 "조선 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내성있게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일관한 입장"이지만 "침략자, 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한 정의의 성전, 조국 통일 대전으로 단호히 대답해 나설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즉, 자신들은 대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남한과 미국 등이 대결적으로 나오면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남한과 미국이 대결적인 행위를 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김정은은 대미(對美)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북-미 관계가 직결되어 있는 북한의 핵실험과 인공위성 로케 발사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필자의 해석을 내어 놓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외의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김정은은 한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내성 있게 노력"하는 것은 북한의 "일관한 입장"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과 평화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전쟁 위협 해소와 긴장 완화를 원하며 또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김정은은 외부 침략자, 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고, 그는 미국의 아시아 지배 전략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 증가("조선 반도는 세계 최대의 열점 지역, 핵전쟁 발원지"),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철폐("침략 전쟁 연습"), 군사적 도발 중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올 신년사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남조선에서 해마다 그칠 사이 없이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 연습들")에 대한 언급도, 작년 신년사와 달리, 그 강도가 매우 약하다. 작년에는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 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북남 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는 강한 표현을 한 데 비해, 올해는 "위험 천만한 침략 전쟁 연습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표현만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하게 되면 남북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연계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올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미국에 대한 태도가 크게 대결적이지 않은 기본적인 이유는 당대회 개최 때문이다. 가능하면 대외 환경을 긴장시키지 않으면서 당대회를 '김정은 시대'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선포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이 올해는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대해 특별히 대결적인 정책이나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올 김정은 신년사는 '남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남한 정부가 8.25 합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김정은 자신도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대회를 통해 본격적인 자신의 시대를 열면서 남한과 관계를 개선하여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싶어 하는 북한의 김정은 제1위원장과, 올 4월 총선 이후 불가피하게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이 각각 상대방에 대해 취하는 정책들이 상호 작용하여 그 결과로서 올해의 남북 관계가 결정될 것이다.
김정은은 상대방인 남한과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응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본격적인 대선 과정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는 구실을 제공하지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정책 제안을 하지도 않으면서 남은 임기 1년을 보낼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올해의 남북 관계는 우리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마침 박근혜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남북 관계와 관련해 북한도(신년사에서) 8·25 합의를 비롯한 남북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 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밝혔다"면서,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평화 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평화 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직시하고, 남북 간 신뢰를 통해 한반도 평화 통일 시대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올해 박근혜 정부가 8.25 합의의 충실한 이행은 물론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해제,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등 주요 현안에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남북 정상 회담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하기를 희망한다. 정상 회담은 개최하지 않는 것보다는 개최하는 것이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 진전에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은 자명하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를 생각할 때, 만일 박근혜 정부가 남북 정상 회담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내년은 너무 늦기 때문에 올 새해 초부터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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