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타이완 정체성, 팝아트로 묻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타이완 정체성, 팝아트로 묻다

[김영미의 중국 미술 깊게 읽기] 타이완의 팝아티스트 메이딘이(梅丁衍)

타이완 팝아티스트 메이딘이(梅丁衍, Dean-E Mei)는 '외성인'이다. 타이완의 역사 연구자 정홍성(鄭鴻生)은 청조 시기에 푸젠 성(福建省)을 떠나 타이난(臺南)에 정착하여 민남어를 쓰던 사람들을 본성인(本省人)의 기원이라 보았고, 1945년 광복 이후 국민 정부와 함께 대륙의 기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 정의했다.

메이딘이는 상하이에서 온 부모 아래서 태어났고, 그의 이름 '메이딘이'는 바로 가족끼리의 호칭인 상하이어 발음에 기인한다. 그는 자신이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중국 사람인지 아니면 타이완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그가 자신의 이름을 'Mei Dean-E'라고 선택한 것에는 자신을 타이완 사람이기 보다는 '중화민국' 사람이라는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중화민국은 이렇게 표시된다. 그것은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섬 사이 대륙에서 빠져나온 부분이다. 1988년 리덩후이(李登輝) 체제가 출범한 이후 타이완은 '탈중국화(去中國化)'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중화민국은 장제스(蔣介石)가 언제나 주장해왔던 '본국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하고 '타이완'이고자 했다. 중화민국과 타이완은 그 개념이 합쳐지지 않는 그 무엇이 되었다.

▲ [Complete map of the Republic of China](1998년). ⓒdean-e-mei.com
물론 최근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중국 대륙의 국가주석 시진핑과 대만 총통 마잉주의 정상 회담에서 드러난 것은 타이완에 있는 중화민국이고, 하나의 중국으로서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결국 이것은 2000년 정권 교체를 이룬 민진당의 천수이벤(陳水扁) 총통이 내건 타이완의 독립과 같은 위기에서는 한발 물러선 상태임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메이딘이가 자신의 국가 정체성 문제가 작품화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 타이완이 타이완으로 존재하고 싶은 시기에 대부분 이뤄졌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이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팝아트의 형식을 통해 이 심각한 문제를 즐겁게 풀어낸다.

메이딘이가 주로 사용한 오브제들은 지도, 국기 혹은 지도자의 얼굴 등 일반 팝아트와 크게 다름이 없다. 다만 그의 작품은 조금 더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다가가 있다. 또 그의 작품은 1990년대에 막 중국 대륙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정치적 팝(political pop)'과 연대성을 보이고 있다. 가령 [Three Principles Reunite China](1990년)와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퍼즐 조각들은 쑨원(孙文)의 얼굴 위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얼굴이 꿰맞춰져 있다.

▲ [三民主義統一中國(Three Principles Reunite China)]( 1990년). ⓒdean-e-mei.com

마오의 얼굴이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서 사용된 이후 중국 대륙과 중화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오브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심각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타이완에서는 '삼민주의'의 정통 계승자가 장제스(蔣介石)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팝아트의 성격상 그 해석은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두 가지 정도 장제스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을 거 같다.

첫 번째는 바로 이 작품의 제목 '삼민주의가 중국을 다시 모으다'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삼민주의를 처음 제창한 쑨원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사람이 장제스라는 사실을 밖에서 지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쑨원 안에 대륙의 마오쩌둥을 품은 이가 바로 장제스가 된다.

즉, 장제스는 여기 보이지 않지만 그 주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서 중국이 합쳐지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은 작품에서 바로 보이듯이 장제스라는 인물 없이 중국의 통일은 가눙하기도 한 것이다. 즉 장제스가 삭제되면서 타이완은 이로부터 독립될 수 있다.

메이딘이가 생각하는 '완벽한 중국(complete China)'은 그래서 국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국족의 문제이거나 혹은 중국이라고 상상되어지는 정신적인 것의 연결, 그리고 '차이나'라고 하는 이름의 서로의 유용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차피 타이완은 1972년에 이미 공식적으로 'China'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지 않았는가.

공자는 그래서 또 다른 중국의 지도자가 된다. 쑨원, 마오쩌둥, 장제스, 그리고 기타 다른 지도자들은 공자 아래서 모두 유명무실해질 뿐이다. 또 국제 무대에서의 인정과 양안 관계에서의 힘의 관계에서 볼 때 타이완이라는 이름은 공자 아래서 오히려 안전하게 보호되는 것 같다. 이로서 길게 수염을 드리운 공자는 여전히 중국에 살아있는 진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 [Confucius’s Confusion](2003년). ⓒdean-e-mei.com

하지만 타이완의 존재성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작은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이 결국 타이완의 삶을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이완 정체성은 타이완의 일반 대중들의 문제인 셈이다.

사실 타이완 섬의 본성인, 외성인, 그리고 원주민까지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기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식민지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이라는 내셔널러티(Nationality)나 중화라는 에스닉(Ethnic)과 상관없이 그저 제국주의 아래 겪었던 식민지 경험일 뿐이다. 그래서 타이완의 보통 사람들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고 삶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들은, 일본이든 미국이든,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것은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며 생활 습관들 속에 녹아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메이딘이는 이러한 타이완 내부 역사 기억을 [Taiwan Cider](2008년), [Taiwan Cola](2009년)라는 작업을 통해 끄집어냈다. 이 두 가지 전시회 작품들은 모두 스스로 명칭 하듯이 'Hand-Drawn Neo-Classical Digital Virtual Realism'이다. 여기에 두 가지 작업이 있다. 하나는 미국 군정 시기를 기억해 낼 수 있는 물건들을 나열해 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또한 일제 시기에 찍힌 사진에 새로운 필름 감광 작업을 해서 전혀 새로운 사진 구성을 했다.

▲ [Soybean Milk Shop](2011년, 왼쪽), [Adoration](2008년). ⓒdean-e-mei.com
두 가지는 모두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작업을 거치지만 겉으로는 '사진'이라는 표면을 구성한다. 동시에 이 사진 작업들은 물건을 가장 구상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를 취하지만 '가상 (Virtual)'을 지적한다. 따라서 극사실주의적인 사진의 표면들이 사진의 저 너머 기억과 추상적인 것들과 맞닿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진 작업이 사실주의 선상에 놓여있지는 않다. 그 표면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지점을 읽어내야만 한다.

무엇이 타이완 사람들의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 롤랑 바르트의 개념으로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요소)을 건드리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타이완 대중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음료로 다가왔던 사이다나 혹은 콜라와 같은 단어로 지적된다. 그리고 그의 사진 작업 속에서 그 단어가 지시하는 내용들의 푼크툼들을 나열한다. 물론 이것들은 개인적 기억들의 저 너머이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삶이기도 하다.

이로서 메이딘이가 보여주는 최근 사진 작업들은 앞서 보여준 모든 팝아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눈에 직접성을 가지고 보이는 오브제들을 통해 추상적인 정체성이나 그들의 경험과 역사를 묻는 작업들을 감행하는 것이다. 특별히 즐겁고 유희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타이완 그리고 정체성. 그것은 메이딘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이완의 중국 국족인들의 고민이다. 개별적이면서도 개별적이지 않은 그 지점에서 바로 정체성은 미세하게 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묻는 타이완 정체성들은 각 작품에 여러 가지 해석을 내뿜으며 존재하게 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영미

매체에 중국 현대 미술과 현대 미술 작가들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초기 경극 형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희곡예술연구원에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한국 전통극 배비장전을 경극으로 기획하고 연출했다. 2003년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 프로그램 방문 연구를 계기로 중국 영화 비평을 시작하여, 전주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패널로 활동했다. 저서로 <현대 중국의 새로운 이미지 언어 : 미술과 영화> 등이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