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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괴한의 총격…필리핀 군부, '정치 살인'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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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괴한의 총격…필리핀 군부, '정치 살인' 중단하라!

[아시아 생각]4년간 169건, 올해만 11번째

3월 15일 저녁 8시 반, 토요일 밤의 여유를 즐기며 뒹굴 거리던 그 때 도착한 페이스북 메시지… "Sad news. Romeo was killed just this evening in Oton market by two unidentified gunmen riding in motorcycle. I will email you tomorrow the full details.(슬픈 소식을 전한다. 로메오가 오늘 저녁 오톤 시장에서 오토바이를 탄 2명의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어. 내일 이메일로 자세한 소식을 전할게)"
iCOOP생협과 7년 간 공정무역 사업을 함께 해 온 필리핀 PFTC(Panay Fair Trade Center) 앙헬 매니저와 공정무역 활동이나 사업 또는 일상적인 안부들을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고받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소식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하고 반갑게 열어본 메시지 창에서 'killed'라는 단어가 눈에 콱 박혀왔다.
이를 계기로 처음 알게 된 '정치적 살인(extra-Judicial killing)'이라는 단어…. 필리핀 군부에서 시민사회단체 또는 정치적 반대 진영의 인사를 오토바이 탄 괴한의 총격으로 제거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격을 가함으로써 공포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정부와 군부에 의해 비호되는 '정치적 살인'은 지금껏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된 적도 범인이 잡힌 적도 없다. 특히 2010년 취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반란 진압 활동을 재개하면서 4년 동안 총 169건의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3월 15일 저녁 6시 시장에서 한가로이 장모와 장을 보던 로메오 카팔라 의장은 올해 11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그리고 카팔라 의장이 암살당한 2시간 후 저녁 8시 PFTC 농민 조직이 소유, 운영하던 마스코바도 공장은 방화로 공장 일부와 트럭이 전소되었다.

▲로메오 카팔라 의장이 생전에 아이쿱생협 방문단이 전달한 선물을 보고 웃고 있다. ⓒ아이쿱생협

iCOOP생협은 특히 필리핀 PFTC와 가장 강한 연대를 쌓아왔다. 거리 상 다른 공정무역 생산지보다 가까운 점도 이런저런 잦은 교류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도시빈민, 소농, 여성 세 주체의 자립과 발전'이라는 PFTC 설립 목표를 매 순간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추구하는 그들을 깊이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PFTC의 공정무역 사업과 운동의 중심에 로메오 카팔라 의장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존경과 사랑을 받던 사람이 믿기지 않는 이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필리핀의 경제상황은 정체와 후퇴를 거듭해 인구의 25%가 하루 2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버텨야하고 몇 개의 가문이 국가의 70% 이상의 부와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었다. 스페인 식민 시대 풍부한 설탕 생산량 때문에 수도로 지정되어 한 때나마 필리핀의 중심지였던 파나이 섬은 설탕 산업의 몰락과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들의 횡포로 필리핀에서도 가장 빈곤 문제로 고통 받는 지역이 되었다. 수입의 40%를 차지하는 소작료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 영양실조 상태의 아이들이 학교보다는 부모를 도와 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은 곳, 빈곤이 아이들에게 대물림 되는 현실을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슬픔이 두텁게 쌓여 있는 곳이 된 것이다.
로메오 카팔라 의장과 PFTC는 공정무역을 통해 파나이섬의 부조리를 끊어내고 싶다는 꿈을 실현시켜 왔다. 1991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가공된 바나나칩에서 시작된 이들의 공정무역 사업은 마스코바도(비정제 설탕), 생강젤리 등으로 확대되며 점점 더 많은 농민들과 공장 노동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작점으로 자리 잡았다. 현실을 바꿔내고 싶다는 이들의 정직하고 순수한 열망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설득해냈고 결국 PFTC를 파나이 섬 제1의 수출업체로 성장시켜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농민 공동 소유의 토지와 공장을 늘려가던 PFTC는 필리핀 정부를 비롯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필리핀 파나이 공정무역센터 로고
주저 없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공동 소유의 자산을 늘려가고 그 자산을 중심으로 점점 더 많은 농민과 노동자가 조직되는 상황이 못마땅했을까? 두려웠을까? 2005년 로메오 카팔라 의장은 군부에 의해 광산 설비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한 달 넘게 구속되었다. 이후 이 혐의는 많은 공정무역 단체들의 항의에 힘입어 법원에서 증거 없는 무죄로 판명되고 석방되었지만 심각한 인권 침해와 인명 피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필리핀 교도소에서 카팔라 의장은 매일매일 삶과 죽음을 오가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PFTC는 2008년 두 명의 농민 대표의 실종, 2013년 루스 살디토 PFTC 이사에 대한 내란죄 기소 등 지속적인 정치적 탄압과 위협을 겪어왔다. 카팔라 의장도 석방 이후 반군 지도자 명단에 올라 군부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살해되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고 현재도 필리핀 올롱가포 시에서 아동 성매매와 싸우며 인권재단과 공정무역 조직을 이끌고 있는 쉐이 컬린(Fr. Shay Cullen) 신부는 로메오 카팔라 의장을 위한 추도문에서 군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필리핀 경찰 및 군대 정예부대인 이들은 공산반군의 활동이 시작된 1972년 이래 한 번도 인민군을 패배시키거나 전멸시키지 못하였으며, 자신들의 기금과 무기 그리고 탄약의 지속적인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항상 성공 사례, 즉 승리를 갈구해왔다. 몇몇 간부는 증거도 없이 반군 지도자와 용의자라는 죄목으로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여 '승리'를 얻어 승진하기도 한다. 로메오 카팔라는 그들에게 손쉬운 목표물이었다. 군대는 2005년 카팔라를 체포하여 반군 지도자 및 광산장비 방화의 죄목을 적용하였으나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승리'를 얻을 수 없게 되자 이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PFTC와 iCOOP생협 그리고 많은 공정무역 단체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함께 꿈꾸던 동지를 잃었다. 암살되기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평온한 얼굴과 음성으로 파나이 섬 최대 현안인 대형 댐 건설 중단을 위해 정부와 투쟁하고 있다고 전하던 그의 강직함을 잃었다. 방문자들이 궁금해 하는 PFTC의 공정무역 활동을 사려 깊게 설명해주던 그의 지혜와 경험을 잃었다. 삶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해 보이던 그의 삶이 사실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단 걸 그를 잃고 나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애쓰는 것에 삶을 걸어야하는 세상은 이젠 과거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공정무역이 가진 세상을 바꾸는 힘을 즐거이 꿈꾸던 활동가의 머리에 총알로 날아와 박혔다.
로메오 카팔라 의장을 앗아간 이들이 원하는 것은 PFTC가 공포에 떨며 자신들의 활동을 접는 것일지 모른다. 적어도 자신들에게 맞설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을 거라 자신만만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팔라 의장의 빈 자리로 그 누구보다 상심하고 불안해할 PFTC의 친구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로 힘을 보태려한다. Justice for Romeo!
- 필리핀 정부에 항의서한 전달한 국내 단체(총 13개) : iCOOP생협,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KFTO),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참여연대, 기아대책행복한나눔, 아름다운커피, 페어트레이드코리아그루, 어스맨, 두레APNet, 한국YMCA-카페티모르,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트래블러스맵, 공감만세
- 조속한 진상규명과 범인 검거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4월 12일까지) :http://goo.gl/5VSN5E
- 3월 26일 필리핀 대사관 항의 방문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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