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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석상을 빼닮은 한반도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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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석상을 빼닮은 한반도 대운하

[밥&돈] <문명의 붕괴>가 예고한 운하의 운명

지난 해 연말 이후 한동안 중단됐던 <프레시안>경제 칼럼 [밥&돈]이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대운하 관련 글로 재개된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경제적 현상을 분석하고 그 이면을 보여준 이종태, 홍기빈, 박종현, 김태억, 오건호 등의 기존 필자에 양준호 인천대 교수가 합류해 오늘부터 매주 한 차례 독자들을 찾게 된다. <편집자 >

작년부터 수 차례 대운하와 관련된 책을 집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거절했다. 우선은 대운하와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인 얘기들은 이미 <한겨레>나 <경인일보> 같은 매체의 고정 칼럼란을 통해 거의 다 한 셈이라서, 나라고 추가적으로 더 할 얘기가 엄청나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굳이 생태적인 효과나 보건적인 효과, 예를 들면 안개일수의 증가에 따른 보건적 효과와 같은 것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런 것들은 개별적인 연구자가 시간강사 급료를 쪼개어 해볼 수 있는 연구의 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것이라서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들다.

간단한 '코홀트' 조사 한 번 한다고 하더라도, 수 십억 원은 간단히 넘어서는 큰 조사들을 해봐야 하고, 생태조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수 십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연구들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꼭 운하에 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없고, 또 대운하를 찬성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 역시 책 한 권 읽는다고 자신의 이권을 내려놓거나 생각을 고쳐먹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대운하로 나라 망할 수 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같이 환경운동 하던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결국 책을 한 권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책의 사회적 효과나 판매와 같은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작게는 내 양심에 관한 일이기도 하고, 크게는 정말로 이 일로 우리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대운하 하나 가지고 한국이 망할 것인가?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이, 연초에 CBS 라디오에서 같이 대담을 했던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답이었다. 그 시절에는, 나도 한국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고작 대운하 하나 가지고 경제가 망할리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규모의 문제만으로 보면, 수 십조원 잘못 지출했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전투기 구매와 잠수함 구매에 고작 몇 조원의 리베이트 때문에 잘못한 구매가 우리나라가 한 두개가 아니지 않은가? 정치실험으로 잘못된 민영화 몇 개로 이미 겪은 손실 그리고 겪게 될 손실도 간단히 수 십조원 규모는 넘어선다. 매년 대운하 규모의 잘못된 경제행위를 몇 개씩 하는 한국에서 비록 생태적 재앙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설마 나라가 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겠는가? 이 정도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운하에 관한 이해였다.

그러나 꼼꼼히 생각해본 결과, 대운하로 한국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게 최근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대운하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운하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망한다. 고생태학에서는 이걸 '붕괴(Collapse)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가장 최근에 정교하게 제시한 사람은 <총균쇠>의 저자로 너무도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저자는 <네이처>지의 고정 칼럼니스트이기도 한데 우리 말로 <문명의 붕괴>라는 용어로 번역된 책 <Collapse>는 생태학 특히 고생태학에서 사용하던 '붕괴 모델'을 사회경제적 맥락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은 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참고문헌들 중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문헌은 바로 이 <문명의 붕괴>이고, 이 '붕괴 모델'은 현재의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안을 가장 그럴 듯하게 설명해주는 모델이다.

고생태학자들이 찾아낸 최초의 붕괴 모델은 작은 섬 '이스터'에서 벌어진 모델이다. 한 때는 인구 3만명, 연 경제성장률 7%를 기록하던 이 작은 섬은 원래는 나무로 뒤덮였었다. 아주 성공한 경제모델이었던 이스터 섬은 결국 '더 큰 성공'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석상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석상을 이동하기 위해서 나무를 베기 시작했고, 결국 생태계의 변환이 오는데, 이 변환이 더욱 더 이스터섬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태가 악화될수록, 종교의 힘을 뒤에 업은 정치지도자들이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석상을 만들었다. 종국엔 마지막에 만들어진 석상들은 나무가 모자라 미처 해변가까지 이동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렸고 이스터섬의 작은 사회는 붕괴하게 됐다. 이것이 대략적인 '이스터섬 붕괴 모델'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모델로 마야 문명, 앙코르와트 등 완전히 사라져버린, 즉 '몰락'해서 멸종된 문명들이 붕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프레시안>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대운하가 가지게 되는 사회경제적 충격에 대해서 내가 권유할 수 있는 독서는, 좀 두껍기는 하지만 바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다. 그리고 이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다면, 바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14장의 첫 번째 절 '성공을 위한 로드맵'이라도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이 절의 내용은, 한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 더 큰 성공을 위한 '로드 맵'이 제시되기 시작하는데 이 순간이 바로 '붕괴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하는 첫 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프레시안> 정도의 정론지를 일부러 찾아와서 읽어주는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 수준이라면, 이 한 절에서의 '숨은 그림 찾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와 이미 익숙해진 일부 선동가들의 표현을 그대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좋은 프로젝트를 왜 안 하나?"

▲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로 열렸다 ⓒ연합뉴스

그렇다. 한반도 대운하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고, '붕괴 절차'에 의해서 '붕괴 모델'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든 몰락한 국가와 사회에서는 다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미 '이스터섬의 비극'에서 앙코르와트와 마야문명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이 반복됐는데,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가장 큰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던 한국경제에서 '성공을 위한 로드맵'이 작동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구조적으로 그런 일들은 시작되도록 되어있는데, 그 사회구성원들이 이 '로드맵'주의자들의 힘과 권위에 일방적으로 밀려 실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도록 방기한다면, 그 다음 절차는 바로 붕괴 프로세스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제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아주 재밌는 글을 쓰는 한 저명한 과학자의 충고이다.

종교적 권위를 등에 업은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사회의 번영을 약속하며, 그 생태계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 프로젝트를 '로드맵'으로 제시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은 성공의 욕망에 발버둥칠 때,붕괴는 시작된다. 이게 이스터섬의 비극과 마야문명과 앙코르와트의 붕괴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상황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다. 어째 이리 같은가?

이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래서 고생태학 모델이 사회과학에 적용하여 한반도 대운하로 인한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연장이고 경제학의 연장인데, 막상 대운하 건설 자체에서는 어떠한 과학의 흔적도 발견하기 어렵다.

땅값이 올라가면 잘 산다는 미신과, 산으로 배가 가면 볼 만한 거리가 되어서 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라는 관광 신화, 오직 이 두 가지가 '과학의 흔적 없는 대운하'를 형성의 논리적 두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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