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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경영 실패 책임은 직원이 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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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경영 실패 책임은 직원이 지는 건가?

[기자의 눈] 박용만 회장, 장남이 면세점 사업 실패하면?

IMF 사태 이전에는 기업 경영진들이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하라"든가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로 '열정 노동 강요'를 합리화했다. 당시에는 웬만한 기업에 시간외 수당은 없거나 시간당이 아니라 몇 시간을 야근하던 자장면 한 그릇 값 정도로 쳐주었다. '주인 의식을 가진 가족'이니까 이런 대우가 당연한 것이었다.

IMF때 '가족'처럼 일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너는 가족이 아니었다"며 사실상 무더기 해고 통보를 받고서야 "회사는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곳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경영진 중에는 "나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한다"거나 인간중심의 경영이 자신의 경영철학임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위선을 떨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그룹 회장이 등장했다. 바로 "사람이 미래"라는 기업 이미지 광고로 유명한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다. 현재 이 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에서는 입사한 지 3년차 이상은 물론, 1, 2년 차까지 사실상 '희망퇴직'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계열사의 인력 구조조정이지만, 박용만 회장이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갓 입사한 직원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쇄도하자 뒤늦게 박 회장은 "신입사원은 보호하라"라고 마치 자신은 몰랐던 일처럼 인자한 모습을 과시했다.


세간에서는 이미 박 회장이 가혹한 구조조정을 승인하고 여론에 못이겨 말을 뒤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문에 박 회장은 순식간에 "경영 무능력자"로 몰리고 있다. 두산그룹 정도의 대기업에서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조정은 IMF때조차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는 점에서,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자행된 인력 구조조정 방식이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면 박 회장이 경영자로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느냐 의심이 된다는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박 회장이 말 뒤집기를 하면서 박 회장의 경영 능력은 물론, 두산그룹의 기업 이미지도 덩달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이 자초한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경영 실패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리는 무지막지한 '신공'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미래"라는 두산의 캐치프레이즈는 "사람이 머래?"라는 패러디로 전락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연합뉴스

막대한 빚을 지고 인수한 '밥캣'의 저주

두산인프라코어가 인력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경영위기다. 그런데 이 경영위기가 어떻게 초래됐느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위기는 '승자의 저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재계의 중평이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중장비 업체 '밥캣'을 5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한 바로 다음해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리한 인수였다는 것은 그저 결과론적인 비난에 불과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잘못됐다고 해도, 그 경영 실패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당시 밥캣 인수는 기업이 보유한 돈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막대한 빚을 떠안고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인수 이후 매출은 예상대로 나오지 않는데, 이자 비용만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3분기 말 순차입금은 5조2888억 원, 부채비율은 227%에 달하며 누적 이자비용은 2217억 원에 이른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시가총액은 1조2000억 원 밑으로 떨어졌다. 순자산 2조4000억 원인 기업의 시가총액이 순자산의 절반이라는 것은 순자산이라는 것조차 부실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시장의 평가를 반영한다.

시장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존속 가능성에 의심을 품고 있다. 신입사원들까지 사실상 해고하면서 직원들의 40%까지 잘라낸다고 해서 해결될 경영위기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력 구조조정 방식 자체로 이미 기업에 대한 사회적 평판도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인력 구조조정이 경영위기를 오히려 증폭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인력 구조조정이 얼마나 선무당식으로 이뤄지는지는, 회사를 떠난 희망퇴직자들을 현장 일손이 부족해서 다시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여준다.

두산인프라코어 노조에 따르면, 인천공장에서는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정규직 노동자 173명과 12월 한 달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노조 측은 "인력이 부족해 회사를 떠났던 희망퇴직자와 한 달짜리 기간제 계약을 맺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협의하자는 사측의 제안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광주공장에서는 희망퇴직한 정규직 노동자 자리에 용역업체직원들을 투입했다가 파견법 위반으로 문제가 되자 용역업체 직원들과 기간제 계약을 맺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3분기까지 영업손실 2465억 원을 냈다. 작년 2분기부터 영업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80.1% 줄어든 200억 원에 그쳤다. 굴삭기 등 건설기계사업은 두산인프라 매출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영업이익률이 1.3%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부채의 이자를 갚기에도 허덕이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대 신입사원까지 잘라야 하는 위기를 자초한 박용만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오너 일가에는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요직 기용이라는 파격적인 대우가 따르고 있다.

지난 12월 1일 박용만 회장은 장남 박서원(36) 씨를 두산 면세점 최고전략책임자(CSO·전무)로 임명했다. 면세점은 그동안 박 회장이 맥주 등 소비재 산업을 팔아치우고 중공업 중심의 그룹 경영이 차질을 빚자 다시 그룹의 캐시 카우로 키우기 위해 사활을 건 사업이다. 박 회장의 장남이 아니라면 30대 중반에 면세점 최고전략책임자로 기용될 수 있을까? 경영에 실패하면 또 면세점 직원들을 대거 자르는 식으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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