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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옥토버페스트 넘어설 나만의 맥주 축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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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옥토버페스트 넘어설 나만의 맥주 축제를!

[삶과 문화가 있는 유럽 맥주 이야기 ⑩·끝]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

괴테의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불후의 명작을 쓴 대문호도 독서보다 맥주 마시기를 즐겼습니다. 16세기 벨기에의 풍속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의 그림 속 농민들의 결혼식과 축제 장면에는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와인이 귀족과 부자들의 술이었다면, 맥주는 왕부터 농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평등의 술'이었습니다.

맥주의 역사를 더듬으면 유럽 근·현대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사회 경제사적인 의미가 보입니다. 나치 독일을 이끈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우수성은 건강한 아이에 달려있다'며 갓난아기를 둔 엄마에게 맥주 마실 것을 권했습니다. 혁명과 독재뿐 아니라 사랑과 예술의 뒤편에는 어김없이 맥주가 있습니다. 맥주를 이해하는 것은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맥주를 사랑했던 역사적인 인물들과 유럽 역사에 녹아있는 서민들의 맥주 이야기를 찾아가다 보면 여러분도 '악마보다 검고 사랑보다 쓴' 맥주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 수제 맥주의 참맛을 소개한 하우스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의 대표를 지낸 백경학 푸르메재단 이사가 유럽 역사 속 서민과 함께한 맥주의 재미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왜 중세 수도원을 통해 맥주의 전통이 유지되었는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와 종교 개혁을 이끈 독일 성직자 마르틴 루터가 왜 그토록 맥주를 사랑했는지를 밝혀주는 실마리를 드리고자 합니다. 연재 '삶과 문화가 있는 유럽 맥주 이야기'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10회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건배!

"맛있는 맥주의 부탁이라면 나는 바지를 팔아 들고 신발도 전당포로 갖고 간다. 우리들의 책은 쓰레기더미. 위대하게 하는 건 맥주 뿐.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괴테)

▲한 사람이 보통 6~8개의 마스 잔을 나른다고 합니다. ⓒoktoberfest.de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독일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에서 열린 작은 결혼축제에서 유래합니다. 1810년 10월 바이에른 왕국 초대왕 막시밀리안(Maximilian) 1세의 왕태자 루트비히(Ludwig) 왕자와 북쪽에 인접한 작센의 테레지엔(Theresien) 공주가 뮌헨 도심의 남서쪽 양 떼를 키우던 초원(Wiese)에서 결혼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은 음악회와 마상경기를 곁들여 닷새간 진행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결혼을 기념한 경마대회에 뢰벤브로이(Loewenbraeu)와 호프브로이(Hofbraeu), 슈파텐(Spaten) 등 뮌헨을 대표하는 6개 큰 맥주 회사가 축제를 후원하면서 1833년부터 독일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맥주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올해로 182번째를 맞은 옥토버페스트는 안타까운 역사도 갖고 있습니다. 1980년 신나치주의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13명이 숨지고 200명이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1870년 보불전쟁(독일·프랑스전쟁)과 1873년 혹심했던 콜레라 사태 등 두 번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31.2리터(ℓ)입니다. 전 독일국민이 330밀리리터(㎖) 작은 병맥주를 하루 한 병 이상 마시는 셈입니다. 맥주 소비가 주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9월과 10월에 집중되다 보니 축제 열기도 대단합니다. 축제 기간 16일 동안 뮌헨 인구 130만 명의 5배가 넘는 700만 명의 맥주 애호가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 맥주 700만 리터, 소시지 110만 톤, 닭 63만 마리, 소 79마리를 먹어치웁니다.

옥토버페스트 축제에 힘입어 독일에서는 1283개의 맥주 회사가 132억 리터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전체 맥주 생산량의 15%가 넘는 23억 리터를 외국에 수출해 약 8조8500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세계에 수출되는 맥주 중 20%가 독일 맥주입니다.

옥토버페스트의 꽃은 단연 각기 다른 맛의 맥주입니다. 독일 전국에 있는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4000종의 맥주 중 가장 맛있는 맥주의 경연장이지요. 각기 7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14개의 대형천막에서 10만 명이 한꺼번에 맥주를 즐길 수 있습니다.

독일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4.5도입니다. 하지만 맥주 축제를 위해 특별히 제조된 6도짜리 맥주도 출시됩니다. 축제를 위해 독일 여성들은 우리의 설빔 같은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된 바이에른 전통 옷을 입고 입장합니다. 남성들도 촌티가 줄줄 흐르는 털을 꽂은 모자에 가죽 반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전통 복장을 한 독일 할아버지. ⓒtheatlantic.com

맥주 맛은 각 회사를 대표하는 대형천막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몇 잔의 맥주잔을 배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보통 무게가 2킬로그램(㎏) 되는 마스(Mass)잔에 1리터(1킬로그램)의 맥주를 가득 채우니, 맥주 한잔의 무게는 3킬로그램이 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은 많게는 한 손에 8잔씩, 보통 16잔을 배달합니다. 두 손으로 48킬로그램을 드는 셈입니다. 독일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 맥주 축제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 여성은 아기를 낳은 직후 찬물로 샤워합니다. 이튿날 한 손에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병원을 퇴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산부인과 병원과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대형천막에서 독일 여성이 얼마나 강하고 힘이 센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디 맥주가 가장 맛있을까요. 가장 많은 잔을 배달하는 천막의 맥주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냉면의 맛은 종업원이 한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쟁반 위에 냉면 몇 그릇을 얹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눈 덮인 골목을 달려 냉면을 가장 많이 배달했다면 그 집 냉면이 가장 맛있다고 소문났습니다.

최근 들어 맥주 축제의 천막들이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캐퍼(Kaefer, 딱정벌레) 천막,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히포드롬(hippodrom, 경기장) 천막,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찾는 호프브로이, 뢰벤브로이 천막 등으로 분화되고 있습니다. 각 천막마다 맥주 맛과 분위기도 차이 나는 거지요.

여기저기서 건배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신나는 바이에른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보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독일 맥주 축제의 묘미입니다. 옥토버페스트와 때를 같이해 독일 전역의 맥줏집과 야외주점인 비어가르텐(Biergarten)에서도 맥주축제가 벌어집니다.

▲스페인 식당 제로제. ⓒ백경학

뮌헨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이자르(Isar) 강과 영국 공원(Englische Garten) 근처에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서출판사 펴냄)의 저자 전혜린 씨가 즐겨 찾았던 스페인식당 제로제(Seerose)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호수 위에 핀 장미라는 뜻이지요. 전혜린 씨가 단골손님이었던 이 집 2층에는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1899년부터 3년간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중국탑(Chinesischer turm)이 있고, 탑 아래에는 큰 비어가르텐이 있습니다. 해 질 녘 하늘이 붉게 물들면 브라스 밴드의 연주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곤 합니다. 이곳이 뮌헨 사람들이 사랑하는 맥줏집입니다.
뮌헨 도심의 북쪽에 있는 뮌헨대학을 중심으로 맥줏집들이 발달했는데,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슈바빙(Schwabing) 지역입니다. 1872년 문을 연 쉘링살롱(Schellingsalon)과 쭈어브레쯘(Zur Brez’n) 같은 오래된 카페와 맥줏집 벽면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20세기 초 뮌헨에서 활동했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소설가 토마스 만과 하인리히 뵐, 시인 마리아 라이너 릴케와 그의 연인 루 살로메,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가브리엘 뮌터 같은 예술가와 문인들은 슈바빙에서 흑맥주를 마시며, 밤새워 전쟁으로 황폐해진 독일 정신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토론했다고 합니다.
빈틈없기로 유명하고 질서를 생명같이 여기는 독일 사람들도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에는 맥주를 아무리 마셔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옥토버페스트 때는 취한 채 축제현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습니다. 빈틈없는 독일 사람들도 맥주 축제기간에는 일탈을 허용합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독일 사람들은 국경을 넘자마자 제일 먼저 외진 곳을 찾아 한 줄로 서서 노상 방뇨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로마 시내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독일 사람입니다. 강박관념처럼 질서를 잘 지키는 독일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처럼 일탈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 열망을 맥주를 통해 표출하는 거지요.

▲옥토버페스트 대형 천막 안에서 건배를 외치는 사람들. ⓒtheatlantic.com

저는 독일에 사는 동안 세 차례 옥토버페스트 축제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번은 독일 사람들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1리터 큰 잔을 비우고 화장실에 가려는 순간 한 사람이 "독일에서는 1리터 마스를 3잔을 비우기 전에 화장실에 가는 것은 실례"라고 말하더군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소변을 죽기 살기로 참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농담이라는 말을 듣고 바지춤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뛰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화장실까지 거리가 300미터(m)쯤 됐는데, 제가 갑자기 순례자가 되어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것처럼 정말 멀게 느껴졌습니다.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매일 축제현장에 출퇴근하는 독일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옥토버페스트는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독일인들에게 맥주 축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나이와 성별, 국경을 넘어 모두가 세상근심을 잊고 하나 되는 곳입니다. 그들은 맥주 한 잔으로 영웅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왕이 되곤 합니다. 고대부터 독일인들에게 세상 근심을 잊게 하는 맥주가 바로 묘약이 되는 순간입니다.

지금도 9월이 되면 옥토버페스트 축제가 열리고 하늘 높이 "프로스트(Prost, 건배)"와 "춤 볼(zum wohl, 위하여)"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 곧 연말입니다.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화려한 불빛이 거리를 수놓을 것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축제를 즐길 것입니다. 반짝이는 화려함도 좋지만, 이번에는 올 한 해 동안 고생한 서로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나만의 맥주 축제를 즐기시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를 잔에 가득 채운 뒤, 상박 15도의 높이로 팔을 죽 뻗어 잔을 높이 들고 한 해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축배를 드는 거지요. 물론 맥주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눈에 가득 담아야 합니다.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의 육체와 영혼을 감동하게 할 영약이니까요.

그동안 '삶과 문화가 있는 유럽 맥주 이야기' 시리즈를 사랑해 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맛있는 맥주와 함께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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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학

CBS, <한겨레>,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습니다. 평소 맥주를 사랑하다, 독일 통일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 맥주의 본고장 독일 뮌헨에서 슈바빙(Schwabing) 거리의 흑맥주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중세 문화의 요람이었던 독일 안덱스(Andechs)와 스위스 장크트 갈렌(Sankt Gallen) 등 오래된 수도원을 방문해 마시는 연금술인 맥주 양조술과 맥주의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귀국을 앞두고 영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갔다, 부인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재활 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해 국내 최초의 하우스 맥주 회사인 옥토버훼스트(oktoberfest.co.kr)를 창업했습니다. 현재는 푸르메재단에서 시민의 기금을 모아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 병원을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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