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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종탑에서 44일…"맥주 한 캔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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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당 종탑에서 44일…"맥주 한 캔이 너무나 그립다"

[혜화동 종탑 편지 ③] "우리 종탑에서 이렇게 살아요"

2007년 재능교육(주)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선생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은 불법이므로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하고 단체 협약을 해지, 노조원들을 집단 계약 만료했다. 이에 반발한 해고자들은 햇수로 7년 동안 '단협 회복·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학습지 교사들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또 법원은 재능교육의 2007년 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이므로 '무효'라고 판정해, 원직 복직 가능성을 열어줬다. 하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급기야 지난달 6일 해고자 여민희(41)·오수영(40) 씨가 서울 종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시작 1895일째였던 지난달 25일에는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이 세웠던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 일수가 이들로 인해 깨지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이 흔한 풍경이 돼 버린 시대. 낯익은 풍경은 무감각을 낳는다. "혹한의 추위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라고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은 말한 바 있다. <프레시안>은 오수영·여민희 씨가 작성한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이들이 겪었던 일들,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농성을 접을 수 없었던 이유들을 오수영·여민희 씨가 종탑 위에서 글로 옮겼다. <편집자>

혜화동 종탑 편지
① '분신' 막고자 오른 종탑, "내려갈 수 있을까"
② "엄마, 재능 OUT 되면 집에 올 수 있어?"

1. 종탑에 올라간 지 40일이 넘었는데(21일 현재 44일째) 건강은 어떠신지요?

(오수영) 처음 종탑에 올라온 날 새벽 기온이 영하 17도로 떨어졌어요. 바람도 엄청나게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했죠. 설 명절 전후로 좀처럼 기온이 올라가지 않았어요. 그때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온몸이 부어서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엄청나게 심했다는 거였어요. 설 연휴가 끝나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오신 선생님이 혈압을 쟀는데 90/140이라는 거예요. 그 소릴 듣고 놀라서 한 번 더 재보자고 했어요. 마찬가지더라고요. 민희도 마찬가지였고요. 선생님 말씀이 기온이 너무 낮아 온몸에 혈액 순환이 안 되니까 심장이 엄청나게 펌프질을 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대요. 가만히 있으면 어깨에서 혈관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닌 곳에 사니 몸이 맞춰서 적응을 하고 있다는 게 기특하기도 했어요.

(여민희) 처음에 올라와서 바로 2도 동상에 걸렸었는데, 약도 먹고 연고도 발랐더니 지금은 거의 나았어요. 땅 위에 발 딛고 살 때는 겨우내 한두 번은 감기로 고생했었는데 외려 여기 올라와서는 감기 한 번 안 걸렸어요. 몸과 마음이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투쟁을 마무리하고 내려가겠다고 올라왔으니 최대한 건강을 챙겨야 하거든요.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는 매일 하고 있어요.

2. 공간이 협소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텐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오수영)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10평 남짓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시간 보내는 게 힘들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엄청 바빠서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려요.

기본으로 아침·점심·저녁 본사 앞에서 동료들이 하는 선전전 시간에 같이 나와 있고, 저녁 7시엔 촛불문화제가 매일 있어요. 중간 중간에 연대 오신 분들하고 무전으로 얘기도 하고 손인사도 하구요. 또 인터뷰도 하고 글도 쓰고 투쟁 소식도 알려야 하니 계속 뭔가를 하고 있죠.

그리고 여기 올라온 뒤 조합원들도 다 종탑 농성에 묶여 있어서 다른 투쟁 사업장에 연대를 못 가요. 그래서 대신 민희가 SNS에 다른 곳 투쟁 소식을 열심히 퍼 나르고 있어요. 그냥 '리트윗'하거나 '좋아요' 누른다고 공유가 많이 되는 게 아니라서, 사람들에게 '꼭 가야겠다,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생기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를 종일 고민하는 날도 있어요.

3.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여민희) 처음에 고공 농성을 결의했을 때 다른 조합원들이 쌍용차 철탑처럼 집 밥은 못 해주고 분식점에서 사다가 음식을 올려주겠다고 했어요. 조합원이 많지 않고 챙겨 줄 사람이 없으니 '컵누룽지'만 사다 줘도 괜찮다고 했지요. 다행히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에서 식사와 물품을 전담해주셨어요. 센터 회원들과 연대하시는 분들이 음식을 사오기도 하고 집에서 만들어서 가져오시기도 해요. 다른 고공 농성장에서 하는 것처럼 줄에 매달아서 음식을 올려주고 있어요.

보통 하루에 두 끼만 먹어요. 공간이 비좁아서 운동하기 어렵고 신경 쓰는 일들이 많다 보니 소화를 잘 못 시키거든요. 1인분을 시켜서 둘이 나눠 먹기도 하고, 소화가 잘되는 죽이나 컵누룽지를 즐겨 먹어요. 가끔 식사 준비하는 분들이 저희가 입맛이 까다롭다는 말씀을 아래에서 하시나 봐요. (웃음) 재능 본사가 있는 혜화동에서 오랫동안 농성을 하며 알게 된 주위 맛집들을 알려주고, 거기서 음식을 사서 올려달라고 얘기하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 여민희(왼쪽 )씨와 오수영 씨. 뒤로 재능교육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4. 다른 고공 농성장을 보면, 씻는 일이 농성자들에겐 제일 기분 좋은 일이라던데요

(오수영) 처음 올라올 때 한 3일 정도는 꼼짝없이 고립될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씻는 건 상상도 못하고 이도 닦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구강청결제를 준비해왔지요. 다행히 성당 측과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경찰을 성당 밖으로 철수시키고 1리터 정도의 따뜻한 물을 하루 두 번 정도 올릴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기온이 너무 낮아 손발이 저리고 머리는 가렵고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씻어요. 아래에 있는 분들이 고생이죠.

(여민희) 사실 여기 올라오기 전에 씻는 문제가 많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철탑에 계신 분들도 씻을 수 있다는데 설마 우리가 씻지도 못하겠어?'라는 생각도 했어요. 올라와서 며칠 동안 물티슈를 사용해서 세수는 했는데, 머리는 어떻게 감아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물티슈로 머리를 닦고 있는 저를 보고 수영이가 페이스북에 머리를 감지 못해 힘들다고 올렸더니, 00마트 비정규직 해고자 한 분이 물 없이 사용하는 환자용 샴푸를 직접 사서 가지고 오셨어요. 사용설명서를 휙 읽고 두 차례 사용했는데, 두피가 벗겨지고 부스럼이 생겨서 더 고통스러웠죠. (웃음) 저희가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서 생긴 일이었어요. 원래는 젖은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데 종이 수건으로만 닦아냈더니 머릿속에 잔여물이 남아서 그랬던 거죠.

그때부터 조합원들에게 아우성을 쳤어요. "철탑도 열흘 만에 물을 올려서 머리를 감게 해주었다던데 우리는 이게 뭐야? 신경 좀 써줘요! 우리도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라고요. 그렇게 아우성을 치고도 이틀이 지난 농성 12일 만에 따뜻한 물을 공수받아서 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을 수 있었어요.

머리를 감은 첫날, 너무나 행복해하는 우리를 보면서 조합원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진작 신경 좀 쓸 걸 그랬네. 미안하다"고 했다는 후문이 들리더라고요.

5. 종탑에 올라와 있으면 이런저런 고민이 많을 텐데 혹 술은 드시는지?

(오수영) 이곳에 유일한 반입 금지 품목이 술이에요. 물품 지원팀장님께서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이유로 첫째, '안전'. 둘째, '한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고 싶다.' 셋째, '화장실 문제'를 드셨어요. 그래서 술은 반입 금지! 종탑 난간이 20센티미터도 채 안 되기 때문에 정말 위험하거든요.

그래도 가끔 맥주 한 캔 정도는 생각이 나요. 한 번은 주말 종탑지기(종탑 올라오는 계단 입구 지키기)를 자원한 한 지인이 금요일 밤에 맥주를 마시다가 우리들 생각이 났는지 문자를 보내왔어요. 몰래 맥주 두 캔을 올려주겠다고. 사실 꼭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올려준다고 하니 점점 먹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올랐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맥주가 올라오지 않아 그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물품 지원팀장님이 모든 사람에게 술 반입 금지 문자를 보냈다는 거예요. 그 문자를 받고 순간 얼어버린 지인은 종탑에서 내려오면 맛난 맥주를 사주겠다는 말로 1박 2일의 간절한 기다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고 며칠 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저희를 보고 한 조합원이 맥주 두 캔을 올려주었는데 물품 지원팀장님은 어떻게 된 건지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맥주를 달라고 며칠을 아우성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기에, 분명 맥주가 반입된 거라고 생각했대요. (웃음) 그러고는 조합원들을 다그쳤다고 합니다.

(여민희) 주류가 반입 금지 품목이 된 덕택에 우리들은 한 달이 넘게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주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어느 날이었어요.

바람이 약간 잦아들고 햇볕이 따스한 오후였죠. 약간 나른해진 기운 탓에 뭘 좀 먹어볼까 하던 수영이가 작은 생수통에 들어 있던 홍초를 집어들었어요.

그 홍초는 00호텔 노조 조합원이 약 한 달 전에 종탑으로 보내줬던 보급품이었죠. 맛을 보겠다며 컵에 홍초를 따라 한 모금 맛을 보던 수영이가 소리쳤어요. "야아!! 이거…. 이거!!" 제가 "왜 변질됐니? 못 먹겠어?"라고 하니 수영이가 다시 "아니, 아니, 이거 와인이야!!"라더라고요. 네, 그랬습니다. 센스 있는 00호텔 조합원이 우리에게 말없이 보내주신 홍초는 바로 '신의 물방울'이었던 거죠. 그날 우리는 종탑에 올라온 이후 가장 행복하고 기분 좋은 오후를 보냈답니다.

6.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분이 좁은 공간에 24시간 붙어 있으면 힘든 부분도 있고 좋은 부분도 있을 텐데…. 어떤가요?

(여민희) 저는 눈물이 많고 상처를 받으면 혼자 삭이는 편이에요. 그런데 수영이가 옆에 있으니 그런 모습 보이는 게 부끄럽고 싫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수영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사실 특별히 위로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냥 묵묵히 챙겨주거든요. 우울해지면 좀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죠. 조금 싫은 거는 수영이는 물건을 사용한 후에 원래 자리로 다시 놓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찾고 또 뒤집고, 이런 일이 종종 반복되는 거죠….

(오수영) 사실 종탑 농성을 제안했을 때, 혼자 올라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어요. 민희가 며칠 고민하고 나서 자기가 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한시름 놨죠. 첫날 종탑 계단을 올라올 때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을 비 오듯 쏟았는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이 철사로 잠겨 있는 걸 보고 못 가겠다 생각했거든요. 이때 차분한 민희가 하나씩 철사를 풀더라고요. 정말 든든했어요. 사실 아래에서 투쟁할 땐 자주 싸웠는데, 올라오고 나서는 될 수 있으면 서로 조심해요.

싫은 건, 물건 제자리에 놓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자주 해서 좀 싫어요. 그래도 물건 찾을 때는 편하죠. 한번은 반도 피우지 않은 담뱃갑을 놓을 곳이 없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잤는데 다음날 아침 담배가 없는 거예요. 민희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쓰레기통을 뒤지니 이미 물에 젖어 피울 수 없게 돼 있었어요. 그땐 민희가 정말 미웠어요.

ⓒ프레시안(최형락)

7. 농성장을 방문했던 분들의 이런저런 선물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선물은?

(여민희) 네 아이의 아버지가 생각나요. 이분은 성당 앞을 지나다가 우리가 종탑 위에 있는 걸 발견하고, 그 추웠던 지난 설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으로 오셨었어요. 꼭 와서 힘을 주고 싶었다고 하시면서요. 종탑 바로 아래까지 오셔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시고, 잘 버티라며 '평화와 안녕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는 편지를 성금과 함께 전해주셨어요. 이후에도 이 앞을 지나가면서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몇 번 보내주셨고요.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겠다는 말씀이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었어요.

(오수영) 맛있는 거, 좋은 물건, 정성을 담은 편지, 투쟁 기금도 좋지만 '사람'이 가장 큰 선물 같아요. 종탑 농성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이 많이 왔잖아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도 일상이 너무 바쁘고 투쟁 사업장이 한둘이 아니니 조금씩 오시는 분들이 줄었어요. 꾸준히 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저희도 잘 알아요.

지난 2년 동안 한 달에 꼭 한 번씩은 '연대하기 좋은 날'이라는 제목의 행사를 저희와 열었던 서부비정규노동센터 회원들이 요즘도 꾸준히 함께하고 있어요. 종탑 식사와 물품을 주로 전담하지요. 센터 회원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해주고 주말이면 함께 본사 앞에 설치한 텐트에서 잠을 자고, 종탑지기도 해주세요.

아. 그리고 혜화동 인근에 사시는 전교조 조합원이자 해직 교사이신 윤희찬 선생님도 저희에겐 하늘이 보내준 선물 같은 분이세요. 설 연휴 때부터 매일 아침 들려서 밥도 챙겨주시고 투쟁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어요. 또 최근에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재능 공동대책위원회에 들어와서 함께 투쟁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서부비정규센터나 윤희찬 선생님 말고도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는데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서 일일이 소개 못 하는 거니까 섭섭하게들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시는 분들과 트위터에서 저희의 트윗을 '리트윗' 해주시는 분들께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8.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여민희) 우리가 여기 올라온 건 특별한 영웅심 때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억지로 떠밀려서 올라오게 된 것도 아니에요. 고공 농성을 결심하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조합원들은 서로 하겠다고 아우성이었어요. 조합원들은 1900일 가까이 거리에서 농성을 했고, 그동안 구사대, 용역 깡패 등을 앞세운 재능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험한 일들을 수없이 당했어요. 하지만 다시 힘을 모아 재능 자본을 강하게 압박하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싸움을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 해고 조합원들 모두 노동조합을 되찾아 재능 학습지 선생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었지요. 종탑 위를 바라보면 오수영·여민희가 보이지만, 사실 이곳 종탑 위에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 12명 전원이 올라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우리 재능지부 조합원들은 학습지 노동자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었요. 다시 재능교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행복한 재능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오수영) 저희가 올라온 첫날, 세상이 온통 하얀 눈밭이었어요. 멀리 보이는 인왕산도 북한산도 남산도…. 춥긴 무진장 추웠지만 정말 예뻤어요. 이젠 눈은 찾아볼 수 없고 잔뜩 물이 오른 나무들과 따뜻한 기운을 담은 바람이 불어와요. 1900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긴 겨울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또다시 봄이 오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에요. 투쟁하는 노동자들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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