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탈당 선언 이후 최대 관심사는 '누구'입니다. 정치권과 언론 모두 누구누구가 탈당 대열에 합류할 것인지를 재고 있습니다. 동조 탈당 의원 숫자를 세기도 하고, 손학규·김한길·박지원 등의 합류 여부를 점치기도 하는데요. 이 관심사에 반영된 안철수의 현실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동조 탈당의 규모와 질을 셈하는 이유는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을 가늠하기 위해서입니다. 몇 명이나 합류하는지에 따라, 또 '보스급'이 합류하는지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진다는 전제가 깔린 건데요. 이런 전제 자체가 역설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안철수 개인의 파괴력 갖고는 야권, 또는 정치권 전체의 지각변동을 재고 논하는 게 힘들다는 메시지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더 이상 '원톱(one-top)'이 아니라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역설은 제2차 역설을 파생시킵니다. 두 개의 2차 역설인데요. 하나하나 살펴보죠.
첫째, '원 오브 뎀'이 된 안철수의 처지가 거꾸로 향후 동조 탈당의 규모와 질을 규정할 것이라는 역설인데요. 물론 그 규모와 질은 별로 크지도, 별로 높지도 않을 것입니다. '원톱'의 수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철새'의 리스크를 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탈당한 안철수와 손을 잡을 사람들은 '동조(同調)' 차원이 아니라, '자구(自救)' 차원일 겁니다. 어차피 새정치민주연합에 남아도 살 길이 보이지 않을 사람들이 '동조'의 모양새를 연출해 자기 구제를 모색하는 수준일 겁니다.
둘째, '원 오브 뎀'이 된 안철수라면 신당을 꾸려도 동거와 연합은 불가피하다는 역설인데요. 동거와 연합이 신당의 불안정성을 키울 것입니다. 여러 명이 여러 달에 걸쳐 머리 맞대어 만든 혁신안보다 자기 혼자 만든 혁신안이 더 본질적이고 더 근본적이라고 단정하는 사고, 그리고 당내 다수가 혁신전대는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보는데도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행태는 전형적인 '원톱'의 모습입니다. 그것도 '민주적 원톱'이 아니라, '제왕적 원톱'의 모습입니다. 이런 '원톱'의 면모가 '원 오브 뎀'의 환경을 부정하고, '원 오브 뎀'의 환경이 '원톱'의 면모를 옥죄면 파열음이 발생합니다. 안철수 의원 스스로 불안정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보고 또 봐도 전망이 서지 않습니다. 탈당 이후 안철수 의원은 정말로 '허허벌판에 혈혈단신'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본인 입으로 말한 그 상황이 '엄살'이 아니라, '현실'이 될지 모릅니다.
안철수 의원이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다시 '원톱'이 돼야 합니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 안철수의 유니크한 정치적 가치를 드높여야 합니다. 헌데 이 지점에서 오히려 또 하나의 역설적 상황이 확인됩니다. 본인이 뽑은 비장의 카드가 기존의 킬러 컨텐츠마저 완전방전시키는 마지막 수순이었다는 역설적 상황입니다.
누가 뭐래도 안철수 의원의 킬러 콘텐츠는 '새정치'였습니다. 하지만 탈당에 이르기까지 안철수 의원은 독선적 사고와 분열적 행태를 보였습니다. '새정치'의 극복대상이 되는 면모를 자기 스스로 내보임으로써 '새정치'의 진정성을 방전시켜버렸습니다. 오히려 합당-탈당으로 이어지는, 구태정치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반복함으로써 '공학적 정치인'의 면모만 부각시켰습니다. 그 인위적 정계개편을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자기 본위의 선택'으로 격하시켜버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문에서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할 것'을 다짐했지만 지금까지의 족적은 정반대입니다. 전혀 새롭지 않은 정치로 국민들에게는 실망만 안겼고 자신의 정치적 확장성은 갉아먹어버렸습니다. 탈당 선언은 그 '자폐정치'의 끝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