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3일 오후 "파도에 흔들릴지라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프랑스 파리의 문장(紋章)을 인용해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한 것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문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정말 정치가 싫어지는 날"이라면서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칩니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라고 우선 썼다.
그는 이어 "주저 앉을까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라고 한 후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표는 또 "파도에 흔들릴지라도 가라앉지 않습니다(Fluctuat nec mergitur)"라면서 "아무리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총선 승리에 이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이 같은 파리 문장과 함께 도종환 시인이 쓴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산문집 중 파도와 관련된 한 대목을 인용하기도 했다.
고흥산 노인이 풍속 58.3미터의 태풍 프라피룬을 피하지 않고 외려 정면으로 배를 몰고 들어간 이야기다.
이 글에서 고 노인의 배는 방파제에 묶여있던 배들처럼 망가지지 않고 10시간의 사투 끝에 항구로 돌아오게 된다.
문재인 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도종환 시인의 산문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의 한 대목"파도 한 가운데로 배를 몰고 들어가라"어느 해 여름 가거도 앞바다에 태풍 프라피룬이 몰아칠 때였다. 태풍이 비켜갈 것이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순간 최대 풍속이 58.3m나 되는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고흥산 노인은 강풍과 파도를 바라보다가 해두호를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15m가 넘는 파도 속으로 3톤짜리 작은 목선을 끌고 나가다니, 그건 죽음의 늪 한가운데로 눈을 감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한가지였다.그러나 고 노인은 이런 파도는 배를 방파제 옆에 끌어다 놓아도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건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고 노인은 파도가 몰려오면 정면으로 배를 몰고 들어갔다.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한순간에 배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파도가 몰아치면 배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수직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10시간 가까이를 파도와 싸웠다. 그러는 사이 파도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육지로 피신시킨 30척의 배들이 부수어 버렸다. 40톤급 배 두 척도 들어 내동댕이친 엄청난 파도였다.저녁 무렵 태풍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거도 앞바다를 빠져 나갔고, 고 노인은 배를 항구 쪽으로 몰고 왔다.-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서
野 최고위 "탈당 막지 못해 송구…조속히 수습"
문 대표는 이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기에 앞서 이날 오후 3시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새정치연합 최고위원들은 "안 전 대표의 탈당을 막지 못해 국민과 당원들께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김성수 당 대변인은 전했다.
또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가 탈당을 강행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아울러 이들은 당의 어려움을 조속히 수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당 혁신 또한 흔들림 없이 단호히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도 김 대변인은 전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제외한 모든 최고위원과 최재성 총무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표 측은 이 원내대표에게 계속해서 참석 요청을 위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文, '어떤 전대건 논의하자' 제안…安 '혁신 전대 못 박아라'"
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들에게 안 의원과 전화로 나눈 마지막 대화와 이날 새벽 안 의원 자택 방문 때의 상황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 대변인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 대표는 애초 안 의원의 사전 허락을 구하지 않은 자택 방문에 부정적이었으나 당시 안 대표를 만나고 있던 박병석 의원이 '방문 허락을 받아놓을 테니 직접 설득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에 안 대표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 의원이 끝내 문 대표를 만나겠다고 하질 않아, 40분가량 서울 노원구 자택 문 앞에서 원혜영·노웅래 의원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문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들에게 한 설명이다.
앞서 안 의원은 이날 탈당 선언 후 기자들을 만나 "어젯밤에 (문 대표가) 집까지 찾아오셨으나 어떤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오지 않아 이야기가 짧게밖에 진행되지 못했다"고 새벽 상황을 설명했다.
이렇게 막판 회동 시도가 불발된 후 문 대표는 박병석 의원을 통해서, 또 이날 오전 안 의원과 한 13분 동안의 전화통화에서 '혁신 전당대회를 포함해 어떤 종류의 전당대회든 열어놓고 논의를 하자'면서 거듭 탈당을 만류했다고도 김 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나 '논의를 해보자'는 문 대표의 설득에, 안 의원이 '혁신 전당대회 추진은 내가 국민에게 한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서 '혁신 전당대회 수용 사전 천명'을 계속 요구했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설명이다.
김 대변인은 "문 대표가 선거구 협상과 같은 중요한 여야 협상을 제외하고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당무를 쉬며 앞으로의 당과 정국운영 방안에 대해 구상할 계획"이라고도 전했다.
이에 따라 14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던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는 열리지 않으며, 당헌 개정 작업을 위해 소집돼 있는 중앙위원회가 이를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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