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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문재인 vs. 한상균, 세상은 누가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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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문재인 vs. 한상균, 세상은 누가 구할까?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실크로드 역사 단상 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와 구속 수감되는 모습이 온 국민의 이목을 끌기 무섭게 보수 야당의 '당파 싸움'이 도하 언론의 지면을 뒤덮고 있다. 다들 나름대로 절실한 사정이 있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노동자와 권력의 대결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수 야당의 설레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처럼 그 분란의 추이를 기웃거리다 그만 원고 넘기는 것마저 늦어졌다.

실크로드 여행을 되짚어 보던 중 오래 전 <세계사신문>을 만들 때 번역본으로 접한 <역사서설>이 생각났다. 이 책은 이슬람의 역사학자 이븐 할둔이 중세 아랍의 역사를 고찰한 대작 <이바르의 서>에 붙인 서문이다. 말이 서문이지 그것만 해도 웬만한 단행본 몇 권은 될 분량이다. 다음은 <세계사신문>에 축약 소개한 이 책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인간 사회는 도시의 정착민과 산야의 유목민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집단은 유목민이다. 이 집단에 내재된 아사비야(연대 의식)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엄혹한 생활 환경을 강요받는 초원의 연대 집단은 왕권(물크)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움직이며, 마침내 도시에 근거를 둔 문명 국가를 정복,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국가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점차 '아사비야'를 상실하고, "그 통치자들과 피지배인들은 쇠약하여 한결같이 한 번 더 신선하고 '정화'시켜주는 사막 유목민이 침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열게 된다."

만리장성의 잔해 위에서 유목민이 밀려오던 바깥 사막을 바라보노라면, 이븐 할둔의 통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이슬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유목민과 정착민의 교류와 충돌은 실크로드의 동과 서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은 고대부터 유목민과 반농반목의 종족들이 살아가던 터전이었다. 그들은 신석기 혁명 이후에도 환경 등의 요인으로 정착 생활에 들어가지 않은 부류로, 기원전 2000년경부터 주기적으로 남하해 유라시아 각지의 정착 문명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서지중해로부터 황하에 이르는 수많은 고대 문명 지대는 이러한 유목민의 이동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곤 했다.

▲ 둔황 양관에서 바라본 사막. ⓒ강응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유목 집단은 기원전 8세기 무렵 흑해를 중심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란계 스키타이였다. '초원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스키타이는 승마용 바지와 장화, 말에 발을 고정시키는 등자, 순장 풍습 등 훗날 유목민들에게 이어지는 생활 문화를 확립한 뒤 사방으로 흩어져 소멸했다.

그 뒤를 이어 기원전 3세기경 몽골 초원을 무대로 등장한 최초의 유목 제국이 바로 흉노였다. 그 무렵 타림 분지 주변에는 '서역 36국'이라 불리는 작은 오아시스 국가들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흉노는 이 나라들을 자신의 세력권 안에 넣으면서 서서히 남쪽으로 팔을 뻗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의 한나라와 충돌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흉노가 스키타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공동체에 머물렀던 스키타이와 달리 유목민 최초로 국가를 건설하고 제국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국가를 이룬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흉노나 돌궐 같은 투르크계, 둘째는 유연이나 거란 같은 몽골계, 셋째는 여진 같은 퉁구스(만주)계이다. 청장고원에서 일어나 실크로드로 진출했던 토번, 서하 등은 중앙아시아 유목 제국의 큰 흐름에서 일단 열외로 두겠다.

흉노 세력이 쇠퇴한 뒤 실크로드의 주인공이 된 것은 유연이었고, 그 다음에는 돌궐이 부상했다.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고 동로마에서 고구려까지 유라시아 각국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던 돌궐이 스러지자 그 자리를 또 다른 투르크계 위구르 왕국이 차지했다.

위구르를 잇는 유목 제국은 요하에서 발원한 거란이었다. 거란은 남쪽으로 진출해 송과 맹약을 맺고 북중국을 지배하면서 요(遙)라는 중국식 왕조를 세웠다. 이전의 흉노, 돌궐 등은 문명국가를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기는 해도 문명 국가를 정복해서 스스로 문명화되는 길을 가지 않았다. 유목 국가의 전통과 생활 방식을 고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란은 일부이긴 하지만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화의 길을 갔다.

거란은 유목 세계뿐 아니라 중국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거란인은 스스로를 '키탄'이라고 불렀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여기서 유래한 '키타이'를 중국이라는 뜻으로 쓴다. 거란이 중국의 정복 왕조로서 주변 세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홍콩의 항공사 이름인 '캐세이 퍼시픽'의 '캐세이' 역시 '키탄'의 다른 발음이다.

요 이후 잇달아 정복 왕조가 등장했다. 요를 멸망시킨 여진족은 금을 세우고 송을 남쪽으로 밀어내 북중국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오래 안 가 몽골족이 칭기즈칸의 영도 아래 정복 활동을 펼치면서 금과 송을 모두 지도에서 지워 버렸다. 그들이 지워 버린 것은 중국만이 아니라 유라시아 거의 전부였다.

몽골 제국의 중심 국가인 원은 사상 최초로 중국을 완전히 지배한 정복 국가였고, 제국을 구성한 4대 칸국 중 일 칸국은 이슬람 문명 세계를 지배한 정복 국가였다. 이 같은 몽골 제국의 치세 아래에서 육상과 해상의 모든 실크로드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었다.

몽골 제국 이후에 나타난 괄목할 유목민의 정복 국가는 투르크족의 셀주크·오스만 제국과 여진족의 청이다.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를 제압해 지중해 일대를 지배했고, 청은 명을 제압해 중국 전역을 지배했다. 이렇게 보면 유목민과 정착민의 투쟁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아사비야'로 무장한 유목민처럼 보인다. 동쪽에서는 여진족, 서쪽에서는 투르크족이 타락한 문명 세계에 침략해 이를 '정화'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문명 국가로 전환했다가 타락해 갈 무렵, 지구상에는 더 이상 그들을 '정화'할 유목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서구에서 흥기한 자본주의 세력이 이들 구 유목 제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들은 20세기 초까지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거의 다 마치고 오스만 제국과 청의 분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대재앙이 바로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 오스만제국이 보스포루스 해협에 쌓은 성채. ⓒ강응천

그 이후의 세계사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 열강이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재창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자본주의는 경제 메커니즘으로서뿐 아니라 생활양식으로서 지구촌 곳곳을 잠식해 들어갔다. 미증유의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자본주의는 우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지구적 규모로 생명력을 잃고 타락해 가고 있다.

이 타락한 자본주의 문명을 '정화'할 세력은 누구일까? 오늘날 이븐 할둔이 말한 유목민처럼 문명의 밖에서 문명을 타격할 외부 세력은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내부의 비판 세력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터. 누굴까? 누구라도 우러를 수밖에 없는 막강 스펙으로 무장한 야당 의원님들일까, 아니면 누구에게도 만만해 봬는 한상균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노동자 대중일까?

이븐 할둔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제시한 '아사비야'는 한 마디로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그나마 '연대 의식'이라고 하면 본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보수 야당이 보이는 행태는 이미 민중과의 연대는커녕 자신들끼리의 연대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기득권을 누리며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강한 연대 의식으로 뭉치지 않으면 때로는 생존권도 보장받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정화하고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리라 단정 짓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연대 말고 타락해 가는 현대 사회를 구원할 요소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똑똑하기 짝이 없는 야당 의원님들이 노동자들과 연대는 못할망정 그 앞길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말아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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