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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꿈은 '대당제국'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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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꿈은 '대당제국'의 부활"

[유라시아 견문] 前世今生(전세금생) : 장안과 시안

관중(關中)

중국에 처음 간 것이 2004년이다. 나름 20대 중반의 결단이었다. 뜻을 두었던 西學(서학)에서 답을 구하지 못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불어와 독어를 연마했지만, 이 땅의 현실과 겉돌고 있다는 회의가 짙었다. 내 말과 글이 갈수록 공허했다. 그렇다고 한국학 또한 마땅치 않았다. 서학이 뜬구름이었다면, 國學(국학)은 외통수였다. 답답하고, 갑갑했다. 한쪽은 남 것만 추키고, 다른 쪽은 제 것만 아꼈다. 돌파구는 동아시아였다. 중국을 左(좌)로, 일본을 右(우)로 삼아 공부를 재개했다. 東學(동학)의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렸다. 2004년이면 개혁 개방 하고도 25년, 한중 수교 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하건만 사회주의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자금성에서도 만리장성에서도 혁명을 회감했다. 제 눈의 안경이었고, 아는 만큼만 보였다. 어지간히도 '좌편향'이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국을 오고 갔다. 자료를 찾느라 도서관에서 죽치기도 하고, 학술회의에 참여하거나, 답사를 겸한 여행도 있었다. 자연스레 초기의 '좌편향'은 수정되었다. 도무지 좌/우로는 가늠되지 않는 나라였다. 그런데 부지불식 또 다른 편향이 있었다. 처음 간 곳은 베이징이었고, 오래 머물었던 곳은 상하이였다.

칭다오와 광저우, 난징과 항저우, 톈진과 선전도 살펴봤다. 대륙 밖으로는 대만(타이완)과 홍콩도 들락거렸다. 하나같이 바다를 근처한 동남부의 연안 도시들이다. 즉 '좌편향'을 교정하는 와중에서도 '동남부 편향'이 역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을 어디까지나 '동아시아'로만 접근했다. 한자 중심, 유교 중심, 농경 중심, 강남 중심, 한족 중심, 운하 중심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통으로 '근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은연중 근대의 해양 중심 사관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겉만 핥았던 것이다.

따라서 2015년 서역 행은 2003년에 못지않은 획기였다. 동남부에 치우친 편향을 거두고 마침내 서북부 내륙 깊숙이 진입한다. 교두보는 시안(西安)이다. 옛날 옛적 서역(西域)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시안으로 가는 비행기, 지도를 펼치니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복판이다. 중원과 서역, 북방과 남방, 동남부와 서북부를 가름하는 한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과연 이곳은 왕년에 '關中(관중)'이라 불리던 곳이다. 최초의 중화 제국 진나라가 일어났고, 최대의 중화 제국 당나라가 번성했던 곳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고대사의 주요 무대로서, 시안을 수도로 삼았던 왕조만 열을 헤아린다. 그 중 셋이 (전)한과 수, 당이었으니, 명실상부 천년사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병마총부터 두보와 이백의 시를 비롯하여 양귀비의 전설까지, 가히 중국 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

만시지탄의 한편으로 이제야 이곳을 찾는 것 또한 나름의 필연이라고 여긴다. 天時(천시)가 운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옛 길을 되살리겠다는 回心(회심)의 프로젝트, '一帶一路(일대일로)'와 직결된다. 중원의 대운하와 서역의 비단길이 합류하던 곳이 바로 시안이었다. 그 첫 안내자로 장홍(张鸿)을 만났다. 시안 우전(邮电) 대학교 경영학 원장인 그는 일대일로 중에서도 一帶, 즉 내륙부를 담당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발전연구원의 학술위원이기도 하다.

시안의 봄

▲장홍 시안 우전(邮电) 대학교 경영학 원장. ⓒ이병한
이병한 : 시안은 지방 도시입니다. 그런데 인구가 천만이 훨씬 넘더군요. 이미 서울보다 큰 도시이고, 머지않아 경제적으로도 도쿄를 추월하겠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영향이 클 텐데요. 공항부터 시내까지 선전 구호가 요란하더군요.

장홍 : 시안은 지난해 9.9%의 성장을 기록했어요. 충칭에 이에 두 번째입니다. 중국의 발전 전략이 전환하면서 내륙 도시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미래는 단연 서부에 있습니다. 일대일로는 시안의 전략적 위치와 그 중요성을 반영합니다. 시안의 활력과 실력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건국 이래 가장 좋은 발전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황금 기회를 잘 포착하여 국제 교통, 국제 무역, 국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중대한 성취를 일구어야 합니다. 서북 5성의 중심 도시일 뿐 아니라 유라시아 합작을 선도하는 내륙의 거점 도시로 부상할 것입니다.

이병한 : 동남부 연안부의 대도시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장홍 : 시안은 지리적으로 중국 강역(疆域) 지리의 중심입니다. 역사 문화적으로 실크로드의 기점이자, 가장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시안을 중심으로 고대 상업 활동이 천 년간 지속되었지요. 이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유산이 시안의 영광이자 미래 동력입니다. 시안이 내륙형 개혁개방의 근거지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고 있습니다.

이병한 : '내륙형 개혁 개방'이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기존의 개혁 개방과는 어떤 점이 다를지요? 일각에서는 동남부의 과잉 생산 거품을 서북부와 중앙아시아로 이전시키는 임기 응변책에 불과하다며 폄하하기도 합니다.

장홍 : 그동안 시안에는 항구가 없어서 발전이 더뎠습니다. 해안과 1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대일로를 통하여 시안을 '국제 육항(陸港)'으로 육성하기로 했어요. 철도와 도로, 항공을 종횡으로 엮어서 '내륙 항구'로 만든다는 것이죠. 지난 2년간 성내에만 5000킬로미터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향후 5년 동안 1500킬로미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입니다.

철도는 3500킬로미터가 더 증설되지요. 시안 역은 명실상부 신 실크로드의 허브 역이 될 것입니다. '장안(長安)호'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안에서 출발하는 이 열차는 우루무치를 지나 카자흐스탄을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로테르담에 닿습니다. 11일 여정으로 동부 항만에 비해 열흘을 단축합니다. 현재 1주일에 3차례 운행 중이며 산시 성의 화물들을 중앙유라시아로 운송하고 있어요.

이병한 : 열차의 이름이 상징적이네요. 대당제국의 수도, 장안에서 따왔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중원과 서역을 잇는 거점이겠지만, 저로서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작업 같기도 하네요. '시안의 미래가 장안'이라니, 고대-중세-근대라는 진보사관을 허무는 '타임머신'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변화는 있습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하늘길도 분주하던데요. 신공항 건설이 한참이지요?

장홍 : 시안공항은 이미 국제공항으로 위상을 다졌습니다. 24개 해외 항공사가 시안으로 직통하고 있어요. 인천-시안 간 직항로도 이미 운행 중이죠? 올해는 몰디브와 도쿄도 직항이 생겼습니다. 곧 알마티와 로마도 직항로가 생기고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셈입니다.

이병한 : 시안의 직항로를 살피니 역시나 중앙유라시아 국가의 수도들이 많더군요.

장홍 : 산시 성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들과 자매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나라들의 대사관은 베이징에 있지만, 별도로 영사관을 시안에 두고 있어요.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의 영사관도 생겼습니다.

이병한 : 삼성전자도 시안에 큰 공장을 두고 있는데요. 조만간 한국 영사관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인들도 중국의 풍향에 따라 '서진'하고 있는 셈이죠. 왕년의 신라방을 떠올리게 됩니다.

장홍 :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2008년 이후 중국 동부에서 내륙으로 산업 단지가 대거 이전하면서 시안이 최대 물류 센터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연동해서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시안을 비롯한 서부 진출이 활발합니다. 뤼띠(綠地)에 이미 한인촌이 형성되었어요.

▲ 실크로드의 기점, 화하 문명의 기원. ⓒ이병한

▲ 실크로드 건설 신기점, 문명 도시 창건. ⓒ이병한

이병한 : 지난 9월에는 '유라시아 경제 포럼'이라는 행사도 열렸습니다.

장홍 : 올해는 40여 개 국에서 장관급 인사가 참여했습니다. 기간 산업, 농업, 에너지 산업 등에서 지난 2년간 체결한 프로젝트만 100개가 넘어요. 러시아와 합작하여 하이테크 산업 단지를 조성하고 있고, 중앙유라시아 국가들과는 에너지 산업, 생명과학, 정보 산업에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유일의 신기술 농업 단지도 있지요. 건조 지대에서의 농업을 연구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유라시아와 남아시아의 학생들이 시안의 주요대학으로 유학 오는 숫자도 점점 늘고 있고요.

이병한 : 저도 캠퍼스의 학생들을 보고 다소 놀랐습니다. 동부의 명문 대학들보다도 인종적 구성이 더 다양해 보이더군요. 연안의 개혁 개방이 '중국이 세계로'였다면, 내륙의 개혁 개방은 '세계가 중국으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더 정확하게는 '중국이 현대 세계로'에서, '미래 세계가 고대 중국으로'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올해가 '실크로드의 해'라고 들었습니다. 실크로드 박람회, 실크로드 예술제, 실크로드 영화제 등 관련 행사가 다양하더군요.

장홍 : 산시 성과 시안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실크로드 도시 간의 교류를 증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대일로 여행지 연맹'도 시안에서 창립 대회를 가졌어요. 여행사, 항공사, 요식업, 숙박업계는 물론 IT 업체와 광고 회사까지 광범위한 연합체를 꾸린 것입니다.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수많은 국가와 도시들의 독특하고 풍부한 관광 자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협력하는 초국적 민간조직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병한 : 21세기의 물류에서 디지털과 온라인을 빠뜨릴 수 없을 텐데요. 알리바바도 시안에 진출했다지요?

장홍 : 지난 8월에 알리바바의 투자를 이끌어 냈습니다. 4G 보급과 온라인 상업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어요. 이미 시골 농부들이 온라인으로 작물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를 통한 직거래이죠. 기존의 슈퍼보다 절반이나 저렴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실습 과제로 농민들을 지원했어요. 학생들은 스타트업을 체험하고, 농부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시민들은 더 싸고 신선한 농작물을 구입하는 윈-윈(win-win)이지요. 그 덕에 알리바바의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곳도 시안과 산시 성입니다.

이병한 : 도농 간 온라인 연결망이네요. 더불어 저는 알리바바가 아랍어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점을 눈 여겨 봤습니다. 중국 시장을 석권한 알리바바가 이슬람 세계로까지 진출하는 형세인데요. 아무래도 무슬림들에게는 '아마존'보다야 '알리바바'가 더 친근하지 않겠어요? 시안, 아니 장안과 딱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장안이야말로 서역풍이 농후했으니까요.

장홍 : 저는 일대일로를 일컬어 종종 前世今生(전세금생)이라고 표현합니다.

▲ 중국 시안. ⓒ이병한

장안의 봄


시안의 前世(전세), 장안은 화려했다. 7~10세기, 세계의 수도였다. 모든 길이 장안으로 통했다. 학문의 메카였다.

동아시아에서 학생들과 승려들이 몰려왔다. 예술의 맨해튼이었다. 오아시스 왕국들에서 화가와 음악가들이 몰려들었다. 경제의 중심이었다. 사마르칸트, 인도, 페르시아 그리고 아랍에서 상인들이 밀려왔다. 종교의 천국이었다. 불교와 이슬람교, 동방기독교까지 번성했다. 기회의 땅이었다. 정치적으로 실패한 망명객부터 어려운 경제 형편에서 벗어나려는 이민자들까지 죄다 빨아들였다. '대당몽(大唐夢)'으로 합류한 인구는 무려 100만을 넘어섰다.

덩치만 컸던 것이 아니다. 속도 꽉 찼다. 장안은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쿨하며 힙한 곳이었다. '장안의 화제'가 곧 글로벌 트렌드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류(胡流)'가 열풍이었다. '이란 스타일'이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댄스는 호선무(胡旋舞)가 으뜸이었고, 미인은 호희(胡姬)를 제일로 쳤다. 먹고 마시는 호식(胡食)도 유행했다.

페르시아 출신 셰프가 와인에 올리브를 곁들인 만찬을 제공했다. 당대의 스타 가객 이백은 푸른 눈에 곱슬머리, 하얀 피부를 가진 호희들과 포도주를 마시는 기분을 즐겨 노래했다. 패션 역시 호풍(胡風)이 대세였다. 의상과 모자, 신발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또 다른 풍류가 백낙천은 '최신 메이크업(時世妝)'라는 유행시를 지어 호류에 동참했다. 고로 장안은 '漢人(한인)'들이 주도하는 '중화 도시'가 아니었다. 이국적이고, 혼종적이며, 잡종적인 세계 도시였다. 장안에 모여 사는 '唐人(당인)'들은 세계 시민의 원조였고, 유라시아의 사방으로 열린 대당제국은 세계제국의 원형이었다.

그 성세 앞에 난세가 자리했다. 5호16국 시대가 있었다. 135년간 이어진 분열과 분단의 시대이다. 암흑기만은 아니었다. 성세를 예비하는 준비기였다. 오랑캐가 중원으로 대거 남하했다. 華(화)와 夷(이), 漢(한)과 胡(호)가 뒤섞였다. 양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다. 창발적 변화는 역시 주변에서 비롯되었다. 선비 탁발 씨가 창업한 북위가 화이공존, 호한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다. 오랑캐의 두목이 자세를 고쳐 잡고 '중화 군주'를 자임했다. 대동의 이상이 담긴 균전제도 앞서 실시했다. 그래서 북방의 한족들을 감화시켰다. '호한융합체제'로 중국 재통일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장차 수당으로 이어지는 치세의 토대였다. 실제로 수와 당은 북위를 계승한 호족과 한족의 혼혈 왕조, 잡종 왕조였다. 굳이 경중을 따지면 호족의 피가 더 진했다. 그래서 유연하고 개방적이었다. 북방 유목민의 후예들이었다.

진한과 수당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춘추전국을 평정한 진한은 중원의 대일통을 완수했다. 5호16국의 난세를 극복한 수당은 중원과 서역을 통일시키는 대업을 이루었다. 인류사 최초로 농경 문명과 유목 문명을 융합하고 통합한 것이다. 그래서 진한이 다민족 제국이었다면, 수당제국은 다문명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화 제국과 유목 제국을 결합시킨 복합 제국, 유라시아제국의 탄생이었다. 그래서 당태종은 한인들의 천자이자 호인들의 '가한(칸)'이라는 의미에서 '천가한'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간 시진핑 시대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델을 두고 설이 분분했다. 집권 3년차, 이제는 판별이 났다. 대당제국임에 틀림없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명명백백 '盛唐(성당)'을 참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편 전쟁 이래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 또한 5호16국 시대의 '북방의 충격(Northern Impact)'에 견줄 수 있을까. 유럽 열강과 러시아/소련, 일본이 대륙에 진출하여 중국을 瓜分(과분)했다. 자유주의부터 사회주의까지 각종 외래 사상이 전파되었다. 아편 전쟁부터 개혁 개방까지 얼추 140년을 헤아린다. 중국공산당도 대장정의 천신만고 끝에 서북의 오지, 연안에서 토지 개혁(균전제)을 시작했다. 과연 대당제국이 이루었던 호/한 문명 융합에 견줄만한 동/서 문명 융합을 중화인민공화국이 제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중화'와 '인민공화국'의 결합, '중국(古)'과 '공산당(今)'을 결합시킨 현 지배 집단을 현대판 '천가한'이라 빗대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인가.

▲ 대당제국 재연 행사. ⓒ이병한

시안 관광의 축은 크게 셋이다. 城(성)과 市(시), 그리고 塔(탑)이다. 중국은 여전히 도시를 '城市'라고 부른다. 성벽과 시장이 옛 도시의 핵이었다. 성벽부터 오르기로 했다. 자전거를 빌려 달릴 수 있을 만큼 폭도 굉장한데 길이 또한 대단하다. 페달을 굴리고 또 굴려도 반나절이 지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성장 역시 원본이 아니라고 한다. 명나라 때 재건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당제국 시절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안성의 실제 규모가 현재의 시안성보다 10배는 더 컸다는 말이다. 천 년 후 대청제국의 북경성보다 1.5배가 컸으며, 동시대의 비잔틴보다는 7배, 바그다드보다는 6배가 더 컸다. 대당제국의 압도적 스케일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녁에는 서쪽 시장, 서시(西市)에 들렸다. 야시장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실은 장안 시절부터 유명했다. 서역의 이방인들이 머물고 장사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회족(回族)들이 터줏대감이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한족들이 그들의 먼 조상이 '호식'으로 소개했을 양꼬치를 팔고 있다. 고기점이 유독 크고 두툼하며 향신료도 듬뿍 친다. 서역이 전수해준 양꼬치에 서구가 전해준 칭타오 맥주를 곁들였다. 동서고금이 어울려진 일품 야식에 시안의 떠들썩한 밤이 깊어간다.

저 멀리로 그믐달이 투명하게 빛났다. 두보가 유독 사랑했던 바로 그 달빛이다. 그는 매일같이 달의 변화를 기록하고 찬미하는 시를 짓고 읊었다. 그 달 아래로 대안(大安)탑이 눈에 든다. 21세기 시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안의 유일한 유적이 대안탑이다. 자은사(慈恩寺)탑이라고도 한다. 당 고종이 모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불탑이었다. 그러나 고종의 효심보다 더 유명한 것은 승려의 불심이다. 이 사찰의 주지가 바로 현장 법사였던 것이다. 천축(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했던 사찰이 바로 자은사였다. 그 현장이 서역으로 가기 전에 들렸던 곳도 서시였다. 서쪽 장판에 살고 있는 서역인들에게 지도를 구하고 여행 정보를 얻었다.

2015년 가을밤, 시안성도 서시도 대안탑도 중국 도처와 세계 각지에서 방문한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흡사 '당인들의 저잣거리(唐人街)'가 재림한 듯 보였다. 그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노라니, '시안의 미래는 장안이다'라는 말이 갈수록 실감을 더한다. 中國人(중국인)과 外國人(외국인)이 반반이고, 중국인은 한족과 호족(소수민족)이 반반이다. 옛마을, 구도시, 올드타운이 점차 기운을 되찾아 가고 있다. 새마을, 신도시, 뉴타운이 독주하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신세계는 기울어지고, 구세계는 다시 차오른다. '장안의 봄'이 '시안의 봄'으로 還生(환생)한다. 關中(관중)이 부활한다.

현장은 불멸의 고전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현장을 삼장법사로 탈바꿈시킨 기막힌 SF소설이 <서유기>이다. 기차간에서 <서역기>와 <서유기>를 번갈아 읽으며 향한 곳은 투루판이다. 천축으로 가는 관문이자, 손오공의 화염산(火焰山)이 이글거리는 황막한 벌판이다. 중국의 속 더 깊숙이, 더 오래된 古城(고성)으로 들어간다.

▲ 대안탑과 현장법사.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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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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