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의 일상은 단순하다. 보고 듣고, 읽고 쓴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다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응당 읽고 쓰는 것이 보고 듣는 것과 무관할 수가 없다. 독서의 궤적이 견문의 경로와 오롯이 포개지는 것이다.
한참 西域(서역)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중국 서남단, 운남성의 성도 쿤밍에 머물며 중국의 지리-문명-역사 감각을 새로이 익혀갔다. 올해 하반기에는 중국의 서편, 내 나름의 <西遊記(서유기)>에 주력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동아시아 국가'보다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접근하게 된다.
와중에 한국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강양구 기자가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서평을 권한다. 처음에는 주저했다. 집중력을 흐리고 싶지 않았다. 국내에서 나온 신간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고 여겼다. 요즘에는 새 책보다는 옛 책이 더 흥미롭기도 하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만큼 첨단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래학 서적을 접하지 못했다. 나날이 新書(신서)보다는 古文(고문)을 애호하게 된다.
그럼에도 제목이 솔깃했다. <갈색의 세계사>(비자이 프리샤드 지음, 박소현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갈색의 세계사>는 바로 그 '20세기사의 재인식'에 해당하는 책이다. 경로 이탈만은 아닌 셈이다. 영판 딴 길이 아니라면 잠시 샛길에 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향후 견문의 여정을 더 탄탄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명분도 생긴다. 원저를 검색하니 [Darker Nation]이다.
이번에는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낯이 익은 책이다. 내 킨들에도 저장되어 있다. 아마존에서 확인하니 올해 3월에 다운로드한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인도네시아 견문을 준비하며 구입했을 것이다. 자카르타의 매연과 소음, 반둥의 쪽빛 하늘과 하얀 모스크가 떠오른다.
실제로 저가 항공사만큼이나 전자책의 혜택을 톡톡하게 누리고 있다. 영어, 중어, 일어판 킨들이 아니었다면 <유라시아 견문>도 원활하게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킨들 버전이 없는 책들은 곳곳의 후배들에게 부탁하여 PDF로 구해서 읽는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이 없었더라면, 그 많은 책들을 짊어 싸고 다녔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책에 대한 탐심을 줄이고, 읽고 버리는 습관을 익히고 있다고는 해도, 여정이 녹록치는 않았을 것이다. <갈색의 세계사> 또한 출판사가 제공하는 PDF 버전으로 검토했다. 冊(책)의 바인더를 풀어버림으로써, 지식과 정보 또한 모바일-데이터로 변해감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다루는 내용이 원체 광범위하다. 배경 지식이 충분치 않다면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간단치 않아 보였다. 응당 번역자가 궁금해졌다. 이력을 살피니 역시 특이하다. 영상원에서 이론 공부를 하고, 싱가포르 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단다.
당장 연락처를 구해 이메일로 인사를 텄다. 답장에는 반둥 회의 관련 연재 글에서 현지 음 표기를 수정해주는 내용이 달렸다. 싱가포르에서 공부했지만 인도네시아도 자주 드나든다며. 과연, 책과 어울리는 역자이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동남아 견문에 여러 자문을 구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마저 인다. 서평에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혁명 : <갈색의 세계사>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탐색', 2부는 '함정', 3부는 '암살'이다. 나로서는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다. 백미는 단연 1부이다. 제3세계 운동의 통사로 손색이 없다. 그 내용의 풍부함과 소상함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두고두고 요긴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2, 3부는 갈수록 갸웃했다. 저자 비자이 프리샤드의 관점이 뚜렷한 만큼이나 내게는 편향적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좌편향'이다. 갈색보다는 '적갈색'에 가깝다. 다분히 제2세계에 기울어진 제3세계를 편애한다. 반둥 회의로 석사 논문을 썼던 20대 시절이라면 일정 공감했을 것이다. 나 자신 빨간 물이 덜 빠져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회의 등을 소재로 박사 논문을 썼던 30대에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 반둥 회의조차 미소 냉전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통상적인 해석에 족하지 못한다. 유럽의 도래 이전에 작동했던 아프로-아시아 연결망을 복구하고 재생시키는 사업이었다고 여기는 쪽이다.
실제로 '재건'과 '복원'은 내가 살핀 1차 사료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래서 반둥 회의 또한 이슬람-인도양-중화 세계의 문명 간 연대의 복원 시도였다고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좌/우보다는 고/금, 이데올로기적 접근보다는 문명사적 접근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반면 프리샤드가 꼽는 제3세계 프로젝트의 요체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이다. 양대 반체제 운동 및 사상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제3세계사를 반추하고 회고하고 있다. 그 결과 제3세계 운동 또한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혁명'에 대한 애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문화적 민족주의와 각종 복고적 사상이 그 빈자리를 대체했음을 애감해한다. 즉, 좌파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구체제의 구세력들이 복권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시각을 빌자면 새 천년 제3세계의 동향은 '전통'을 피난처로 삼아 '근대성'을 거부하는 '반동의 시대'로 접수하게 된다. '반전 시대'를 설파하는 나로서는 마냥 수긍하기 힘들다.
일단 언어의 사용부터 눈에 밟힌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후의 제3세계를 일컬어 '원초적 문화주의', '원시 상태로의 복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또 '종교'는 늘 '근본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문화' 또한 '보수주의'와 결부된다. 종교와 진보, 문화와 개혁은 물과 기름이다. 세속적 혁명만을 드높이고, 제3세계의 전통 문명에는 야박한 것이다.
그래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메카조차도 매우 자의적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미국의 독실한 동맹국이었다. 그래서 사회주의도 민족주의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곳이다. 그 탓에 이슬람의 전통 또한 매우 왜곡된 형태로 잔존했다고 보아야 한다. 덜 단련되고 세련이 덜 되어, 문자 그대로 '적폐'만 쌓인 것이다.
책의 마무리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혹은 터키와 이란의 이슬람이 아니라 사우디의 메카인 것도 편향적이지만, 책의 출발이 프랑스 파리인 것은 더욱 문제적이다. 파리에서 시작하여 메카로 끝을 맺는 <갈색의 세계사>의 서사 구도 자체가 복병인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 작업을 하면서 매일같이 세계 지도를 살피고, 지구본을 돌려보는 습관이 생겼다. 다니면 다닐수록 地理(지리)가 곧 역사의 주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天地人(천지인)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을 유독 역사의 주체로 내세웠던 근대 역사학의 전제 자체를 회의하고 있다. 天時(천시)와 지리를 누락하고 말았기에 인류의 '보편적 진보'라는 허황한 망상도 가능했던 것이다. 유물사관조차도 뜬구름이었다.
<갈색의 세계사>에서 거명되고 있는 수많은 도시들을 세계 지도에 찍어 보았다. 카라카스와 아루샤 등 낯선 지명도 적지 않은 고로, 전체 구도를 조망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의미심장한 그림이 떠올랐다. 제3세계의 인민사를 표방하고 있는 <갈색의 세계사>조차도 유럽발 지리 구획의 유산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제3세계는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라는 근사한 언명에서 시작하고 있음에도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지정학적 구도가 짙게 투영되어 있었다. 과연 프리샤드는 인도, 대영 제국의 식민지 출신이다. 탓인지 그가 파악하는 제3세계의 판도 또한 대영 제국만큼 드넓은 만큼이나 치명적인 부재가 도드라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갈색 나라, 중국이 희미한 것이다.
중국의 부재는 취사선택일 수 있다. 혹은 언어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동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치중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소략이 결정적인 것은 비단 그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제3세계론 자체의 사상적 갱신에 중국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전히 미국을 제1세계, 소련을 제2세계, 나머지를 제3세계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법 자체를 타파하며 제출된 중국발 제3세계론이 바로 '삼개세계론'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공히 제1세계임을 적확하게 지목했던 것이다.
양국의 적대적 공존으로 동맹국과 위성국인 제2세계를 통제하고, 그 외부의 제3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빛나는 인식론의 개진이었다. 삼개세계론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냉전기의 세계를 둘 혹은 셋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위계적 질서로써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간적 범위에서 유럽 식민주의의 그림자가 물씬하다면, 시간적 단위 또한 1910년대에서 1990년대로 한정되어 있음이 적잖이 아쉽다. '단기 20세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 21세기'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을 1979년의 의미가 간과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이,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던 해이다. 중화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서 공히 20세기형 좌/우와 일선을 긋는 개혁과 혁명의 흐름이 본격화되었던 시점이다.
하지만 프리샤드가 보기에는 전자는 자본주의로의 투항에, 후자는 근본주의로의 후퇴로 접수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정작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재차 영미권의 변화, 즉 신자유주의의 약진이다. 라틴아메리카부터 동아시아까지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 프로젝트를 좌초시켰음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물론 조금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무엇이 더 중요한 조류였던가를 판별하고 경중을 따지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그래서 2010년대보다는 1990년대에 더 어울리는 독법에 그치고 만 것이다.
이처럼 꼼꼼하고 폭넓게 쓰여진 제3세계의 통사가 어쩐지 작금의 동서 반전과 남북 역전의 실감과 어긋나고 있는 것은 제3세계의 '전사'가 결여되어 있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前史(전사)가 부재함으로써 後事(후사) 또한 부실하고 흐릿한 것이다. 넓은 반면으로 깊지는 못하다.
그래서 <갈색의 세계사>만으로는 제3세계의 장래를 헤아리는데 충분치 않다는 판단이다. 또 다른 인도 출신의 지식인, 판카지 미슈라가 쓴 <제국의 폐허에서>(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펴냄)를 함께 읽기를 권하는 까닭이다. 그래야 지난 200여년을 通觀(통관)하는 깊이까지 아울러 확보할 수 있다.
중흥 : <제국의 폐허에서>
<제국의 폐허에서>가 방점을 찍은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무굴제국, 대청제국, 오스만제국이 차례로 스러져갔다. 동시에 문명을 재건하려는 움직임 또한 비롯하였다. 즉 <갈색의 세계사>가 1914년 1차 세계 대전(민족주의)과 1917년 러시아 혁명(사회주의) 등 동/서구의 동향으로부터 제3세계를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제국의 폐허에서>는 동서고금이 착종하던 세기의 전환기를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공간을 '다른 백년'과 '새 천년'의 사상적 요람이자 정치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별성을 갖는다.
미슈라가 호명하는 인물은 크게 셋이다. 량치차오와 타고르가 비교적 익숙하다면, 가장 낯선 이로는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가 있다. 이슬람 혁명의 지적 대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일생을 이슬람의 갱신과 경장을 위해 헌신하며 이집트부터 인도까지 방랑하고 주유했던 풍운아였다.
그러면서 알아프가니는 <코란>을 명확하고 적확하게 그리고 근대적으로 읽는 학습 운동을 전개했다. '이슬람 세계의 루터'가 되어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그의 포부였던 것이다. 하여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에 투신한 '혁명파'도 아니었고, 근본주의를 고수한 '수구파'도 아니었다. 이슬람의 근대화, 즉 '이슬람의 改新(개신)교'를 도모한 이슬람 판 '고금합작'의 원조라고 하겠다.
타고르와 량치차오도 엇비슷하다. 힌두교와 유교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하여 주체적인 개화, 독자적인 근대화를 모색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생과 세상의 때가 맞지 않았음이다. 천시가 어긋났던 것이다. 당대의 신청년들은 타고르를, 량치차오를, 알아프가니를 경멸적으로 무시했다. 고리타분한 구세대로 타박하며, '보수파'의 낙인을 남발했다.
량치차오가 눈을 감은 것은 1929년이다. 타고르는 1941년 세상을 떴다. 그리고 타고르가 '동양의 남학생들'이라고 꼬집었던 좌/우파 신청년들이 인도와 중국, 터키의 독립 이후를 이끌었다. 진보를 향한 동/서구의 열의를 고스란히 복제한 아류들이 새 국가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제3세계 프로젝트가 좌초하고만 근본적 까닭 또한 여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들도 진보를 섬기는 근대의 발정난 수컷이었다는 점에서 오십 보 백 보였다. 결국 따라 하기, 흉내 내기에 그쳤던 것이다. 고쳐나기, 거듭나기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서구의 민주란 부자가 빈자에게 강제로 먹이는 아편"이라는 타고르의 번뜩이는 통찰을 곱씹어 볼만한 여유와 여력이 없었다. 허겁지겁, 허둥지둥, '시간과의 경쟁'에 급급했다. 그들 또한 그들이 살아야 했던 역사의 구속, 천시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천시 또한 역사의 주체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한 책은 '진보파'의 '혁명'을 추억하고, 다른 한 책은 '보수파'의 '중흥'을 복권시키려 한다. 두 권을 겹쳐 읽노라니 양자가 분열하여 신/구를 다투었던 20세기가 야속하고 비통하다. 천만다행인 것은 나에게 주어진 천시만은 선조와 선생과 선배들이 통과했던 저 지난한 20세기와는 판이할 듯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적 저항(혁명)과 인문학적 경장(중흥)이 합류할 수 있는 새 판이 열리고 있다. 그 딴 판을 직접 목도하고자 견문에 나섰던 것이기도 하다.
기왕지사 서평으로 우회한 김에, 책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간다. <제국의 폐허에서>는 량치차오에 견주어 그의 스승 캉유웨이가 상대적으로 가려졌다. 그런데 나는 갈수록 캉유웨이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동서>에 남다른 애착이 간다. 變法自强(변법자강) 운동이 좌절하고 망명지를 전전하며 집필했던 동방형 유토피아 서적이다.
大亂(대란)에 직면하여 大同(대동)을 염원했던 동방지사의 집념이 집약되어 있는 각별한 서물인 것이다. 후학이자 후세로써 기리고 추모하고 싶은 마음이 애틋하다. 부국강병의 논리가 판을 쳤던 난세에도 면면했던 '대동 세계'의 여망부터 추수한다. 그 연후에 두 달여간 진행된 서역 견문과 소회를 본격적으로 풀어내기로 한다. 다른 세상, 별 세계, 신천지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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