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폭스바겐, 윤리적으로 파산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폭스바겐, 윤리적으로 파산했다

[함께 사는 길] 클린디젤은 없다!

매연배출저감장치를 주행 중 의도적으로 꺼지도록 세팅된 경유차를 클린디젤 차량으로 전 세계에 팔아온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아우디의 사기극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 희대의 '배출가스 사기 사건'의 이면을 보면, 제조사가 윤리적 파산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사기극이 밝혀져 명백한 범법자와 피해자가 확인됐지만 이들뿐만이 아니라 자사 경유차를 엄격한 배출가스 인증시험을 통과한 클린디젤 차량이라며 선전하고 판매해온 모든 자동차 제작사들도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검증 전후로 각국의 클린디젤로 추정되던 차량에 대한 검증시험에서 '클린(clean) 가면을 쓴 더티(dirty)'였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발암물질을 내뿜는 살인자들이 '클린디젤'의 이름으로 질주하는 세계는, 이익이 생명에 우선하는 윤리적으로 파산한 세계다. 파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서울환경운동연합

무너진 신화

유럽연합(EU)은 1992년부터 배출가스 기준을 정해 규제를 시작했다. 1992년 유로1을 시작으로 1992년 유로2, 2001년 유로3, 2005년 유로4, 2008년 유로5, 그리고 2014년부터는 유로6이 적용되고 있다. 유로 규제는 휘발유보다 경유에 더 느슨한 규제치를 둬왔고, 미국은 휘발유나 경유 등 유종과 관계없이 동일하고 더 엄격한 기준을 2009년부터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유럽과의 FTA로 유로 규제와 같은 경유 기준이 휘발유 기준보다 느슨한 이원 규제기준을 가지고 있다. 유로 규제는 버전이 높아질수록 강화돼왔다. 유로5부터는 배출가스량이 획기적으로 줄고 이에 따라 이 인증을 딴 유럽 경유차들은 클린디젤이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일으킨 이번 클린디젤 사기 사건의 핵심은 이들 회사가 유로5 경유차 인증 때부터 인증시험에서는 EGR(질소산화물 저감장치), DPF(미세먼지 저감장치), LNT(질소산화물 저감장치) 등의 장치제어프로그램(ECU)을 작동시켜 인증을 받고, 실제로 차량이 팔려 도로주행을 하면 ECU가 꺼지도록 미리 조작(임의설정)한 차량을 팔아왔다는 것이다.

유로보다 엄격한 배출기준을 가진 미국에서 실제 도로 주행 시의 배출가스 측정 장비(PEMS)로 조사하자 유로5와 유로6 경유차들에서 인증성적을 크게 초과하는 질소산화물(NOx)이 배출된다는 게 발각된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폭스바겐이 판매한 1100만 대의 경유차에 달린 배출가스저감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 차량들은 영국의 연간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인 약 95만 톤(t)을 뿜어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차량만 12만 대가 팔렸다.

수입 디젤차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교통대 연구팀이 2013~2014년 현대기아차의 카니발과 베라크루즈, 르노삼성차의 QM5에 대해 PEMS를 사용해 조사한 결과, 유로5 질소산화물의 1킬로미터(km)당 배출 기준 0.18그램(g)의 최소 2.2배에서 최대 10여 배, 언덕길에서는 이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질소산화물 배출이 확인됐다. 유로5보다 기준이 더 엄격(1km당 0.08g)해진 유로6의 실내 실험실 인증기준을 통과한 국산 디젤 차량들에 대해 작년과 올해에 걸쳐 조사한 내용도 기준을 6~7배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수입차건 국산차건 휘발유보다 싸고 연비가 높은데다가 깨끗하기까지 하다는 이른바 '클린디젤 차량'은 존재하지 않는 사기였다는 게 국내외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클린디젤에 휘둘린 대기환경정책

클린디젤의 사이비 신화는 대기환경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2년 나온 '수도권 대기개선 특별대책', 그리고 2005년 시행된 '수도권 대기 특별법'에 따라 시행되는 '운행차 배출가스 저감사업 대상차는 2011년 8만 3000대에서 올해 3만 3000대가 됐다. 클린디젤 차량 증가로 저감사업 대상차량 자체가 6년 만에 5만 대나 줄었다는 것이다. 클린디젤 열풍은 더 나아가 경유택시 도입까지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경유차 판매 증가세는 지속돼 올해 역대 최고 판매실적을 거뒀다. 2012년 30%가 안 됐던 경유차 판매량은 올 1분기에는 44%를 넘어섰고 올해 내에 50%를 넘어서고, 2020년에는 판매량이 아니라 전체 차량 중 경유차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유차 확산은 우선 휘발유보다 1리터(ℓ)당 200원꼴로 싼 경유의 가격 우위 때문이고, 또한 정부의 클린디젤 차량 확대정책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10월 24일 경유택시 도입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로6 질소산화물 배출기준 0.08g/km을 충족하는 클린디젤은 LPG차량과 환경적으로 차이 없고, △유류세를 전액 환급하는 LPG보다 유류세를 일부만 환급하는 경유가 국가 재정에 유리하다고 밝혔다. 결국 2014년 12월 국토교통부는 택시연료 다양화를 기치로 '여객자동차 유가보조금 지침'을 개정했다. LPG택시가 경유택시로 전환하면 유가보조금(1ℓ당 345.54원)을 지급해, 연간 1만 대씩 경유택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함께사는길

폭스바겐·아우디 사태가 터지기 전인 올 초, 환경부는 2016년부터 3.5톤 이상 대형경유차를, 2017년부터 그 미만 소형경유차에 대해 실제 도로운행 시험인증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후 폭스바겐·아우디 사태로 클린디젤의 실체가 사기로 드러난 이상 인증제가 실제 도로 운행기준으로 바뀐다고 해도 경유차들이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말 그대로 클린디젤 기술이 발전해왔다면 지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질소산화물 배출허용기준이 1km당 0.5g(유로1)에서 0.08g(유로6)으로 여섯 배나 강화되는 동안 그 효과가 실제 도로에서 나타났어야 하는데 실제 저감량이 겨우 40%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바로 폭스바겐 사태로 드러난 '클린디젤의 사기' 결과였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클린디젤 기술의 허구성을 기반으로 하여 대단히 중요한 대기오염 저감목표들이 국가계획으로 잡혀 있는 것이다. 제1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2005~ 2014)은 '2014년 질소산화물 22ppb 수준'으로 경감이라는 1차 달성목표 성취에 실패했다. 그런데 제2차 기본계획(2015~2024)은 경유차 배출허용기준 강화에 의한 삭감량을 최대 8000여 톤으로 잡고 있다. 이는 질소산화물 농도를 약 38% 개선해 2010년 34ppb에서 2024년 21ppb로 줄이겠다는 뜻이다. 경유택시처럼 클린디젤 확대로 이를 실현하려던 것인데 폭스바겐·아우디 사태로 드러난 클린디젤의 허구성이 밝혀진 탓에 2차 기본계획도 목표 달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로 위의 살인자들을 퇴출시켜라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경유의 연소분진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WHO는 이어 2013년, 2014년에도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WHO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전 세계의 연간 사망자가 7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현재 우리나라 전국 대기오염배출량 중 일산화탄소의 63퍼센트, 질소산화물의 32%, 미세먼지의 11%가 자동차에서 배출되고 있는데, 특히 질소산화물은 '그 자체로도 호흡기질환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면서 대기 중에서 VOC 및 햇빛과 반응하여 PM2.5와 오존(O3)을 2차 발생시키는 대기오염의 주 원인물질'(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는 "초미세먼지, 이산화질소 등 현재 관리되지 않는 대기오염은 상당 부분 경유차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로6의 배출기준을 만족하는 경유차량조차도 다른 차량에 비해 초미세먼지, 이산화질소의 배출량이 휠씬 많다"고 지적하면서 국민 건강보호 차원에서 경유차가 배출허용기준을 지키는지에 대한 관리 및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환경단체들 또한 시민들이 경유차를 선택하는 유인을 제도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아무도 신청하지 않고 있는 경유택시부터 정책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 경유차 보유의 가장 큰 유인 요소인 휘발유보다 싼 경유의 가격 어드벤티지를 '경유차량 건강부담금제'를 실시해 경유차 비용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없애야 한다. 경유의 건강위해성과 대기오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하고 시급한 조치다. 생계형 경유차 운전자들을 빙자한 반론은 시민 전체의 건강권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상식 앞에 무력하다. 생계형 경유차 운전자들은 복지정책으로 구제할 대상이지 환경정책과 건강보건정책의 정당한 집행을 가로막을 명분은 아니다.

즉각적인 대기오염 완화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미세먼지 경보 등 대기오염이 심각히 예보되는 상황에서는 자동차2부제를 실시하는 교통환경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도 시민들의 요구다. 파리시는 디젤 차량 증가로 도심 대기질 저하가 지속되자 2부제를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서울 등 공장 없는 도심 지역 미세먼지의 70% 이상 절대량이 도로 위의 경유차에서 발생(2012, 환경부)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차량 운행을 줄이는 것 이상의 효과적인 도시 대기질 개선책은 없다.

ⓒ함께사는길

지난 2005년 이후 작년까지 1조1406억 원의 노후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보조금이 집행됐다. 저감장치를 달아도 경유차의 대기오염은 심각하다. 예산은 경유차의 유지가 아니라 폐차에 더욱 집중돼야 한다. 경유차를 장기적으로 축소하고 전기차량 등으로 대체시켜 나가는 것이 도로 위를 달리는 살인자들에게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폭스바겐·아우디 사기극은 단지 이익에 눈 먼 자동차 회사의 실수가 아니다. 더러운 연료를 고도의 기술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술주의 구호 아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과 그런 기업행동을 두둔하고 장려하는 정부와 환경과 건강보다 장기유지비용이 싼 차량을 선택하는 이기적인 시민들이 모두 다 자신들의 윤리적 파산상태를 들켜버린 사건이다. 파산에서 일어서는 첫 순서는 파산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이다. 자신의 파산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용 피해를 입히고 그들조차 파산으로 이끌게 된다. 경유차 퇴출이 클린디젤로 촉발된 우리 세계의 윤리적 파산에서 벗어나는 방향이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