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여당과 관료들이 뱉은 말은 너무도 선동적이고 반민주적이라 과연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일간지를 통해 이런 기사를 내보낸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을 인용했다는 이 기사는 북한이 국정화 반대 지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졸지에 국정화를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 역사학 교수들과 지식인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내몰리게 된 셈이다.
여당 최고의원이란 사람은 이에 맞장구를 치듯이 "지령을 받은 단체와 개인이 누구인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런 근거 없는 일간지의 보도를 근거로 '이념몰이'를 하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여당 원내 대표란 사람은 아예 북한이 국내 종북 세력에 지령문을 보낸 것은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전형적인 통일전선 전술이라고 말한다. 여당의 최고의원은 국정화 반대가 "언젠가 북한체제로 적화통일 됐을 때를 대비해 남한 어린이들에게 미리 교육시키겠다는 의도"라고 극언을 태연하게 내뱉는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다. 심지어 이런 반헌법적인 발언에 대해 법과 정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태일 뿐 아니라, 국가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극도로 분열시키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공공 영역은 너무도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 한심한 것은 언론이 아닌가. 이 나라의 언론과 기자는 일부 의식있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모두 죽었거나 언론이 아니거나, 언론이 아닌 그 무엇이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고도 언론이라고 말할텐가?
이런 야만스러운 발언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다. "당 보고 찍지 사람보고 찍나. 대통령이 찍으라카면 다 찍을끼다." 이 말은 지난 10일자 국내 발행 부수 1~2위를 다투는 신문에 실린 자극적 기사였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대구 지역을 인터뷰한 기사 가운데 한 대목이다.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 할머니는 인물이나 정책과는 무관하게 그들 지역에서 배출된 대통령이 찍으라는 데로 투표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했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서 알아 들어야 할 기사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그나마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구의 23살짜리 민주 청년은 "저나 친구들이나 대통령이 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한다고 말했단다. 그밖에도 "나라가 안되는 건 대통령 탓이 아니고 국회의원 탓이죠. 그 양반(대통령) 안타깝잖아요"라는 말에서 이들이 지닌 정치의식과 정서를 남김없이 볼 수 있다. 이것이 한 두 사람의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은 "올바른 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하거나, 이 땅의 국사학자 90%를 좌파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도 국민들은 이들을 지지한다. 대선, 총선 공약이 거짓말 잔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여당 대표가 공공연히 '대선에서는 무슨 공약인들 못하냐'라고 해도 그들에 대한 지지율은 고공행진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이 정도면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 '무뇌아'이거나 거의 노예 수준의 정신상태가 아닌가. 뭐 맛있는 것 먹을지, 뭐가 재미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욕망이다. 욕망으로 생각을 대신하지 말라. 그건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정치권이 정권재창출과 통치를 위해 왜곡과 거짓 선동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그 진위 여부를 가리고, 민주 사회에 필요한 판단으로 적절히 대응한다면 이런 원색적 선동이 자리할 곳이 없을 것이다. 거짓과 불의를 일삼고, 공직을 이용해 사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고 우리 삶을 왜곡시켜 결국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상태로 몰아갈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삶으로 내몰릴 이들이 다만 그들의 진영 논리에 따라 모든 정상적 판단과 정치적 선택을 포기하는 행동을 너무도 태연히 자행하는 사회가 어찌 민주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떠한 합리적인 말도 정치적 편 나누기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사회, 진영 논리에 갖혀 우리 편이라 믿어지는 사람의 어리석고 선동적인 발언도 아무런 비판 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사회가 올바른 혼을 갖춘 사회인가.
국민을 '호갱님'으로 알고 자신들을 무조건 추종하리라 생각하기에 온갖 거짓말과 현혹시키는 행동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사익을 추구한다. 공약 이행률은 바닥 수준이고, 주요한 공약은 거의 전부를 파기해도 막무가내로 지지하는 국민을 누가 무서워하랴. 지난 시대와 지난 정권의 구역질나는 부패, 치를 떨 수밖에 없는 폭력과 불의에 책임을 묻지 않았기에 그 일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젠 아예 그게 올바른 역사였다고 말하려 한다.
말이 제대로 된 길을 잃고, 제 뜻을 상실한 사회, 말이 가리키는 바가 아니라 말한 사람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고 수용되는 사회, 아무런 내용 없는 말, 자신을 스스로 뒤엎는 말이, 문장도 성립되지 않는 말이 자신을 통치하는 최고 지도자 입에서 나와도 "그 분이 하는 데는 다 뜻이 있겠지"하는 사회는 절대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삶은 식민시대의 야만과 독재정치의 폭력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그 불의와 폭력의 야만으로 회귀한다. 이 시대의 정치와 사회는 남김없이 그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여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나보다. 이 과정은 "역사 전쟁"이며 그 전쟁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할 전쟁"이라고. 참으로 근래 보기 드문 올바른 혼을 갖춘 발언이다. 이 과정은 민주와 독선, 올바른 정신과 전체주의 정신, 생각하는 사람과 맹목적으로 "대통령이 찍으라카는 사람 찍는" 사람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 따라 우리 삶은 극명하게 갈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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