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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서고, 왕복 10시간 청도에 있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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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서고, 왕복 10시간 청도에 있는 사연?

[전진한의 알권리] 첫 삽 뜬 서울시 기록원의 과제

서울시민 A 씨는 근대건축물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A 씨는 현재 서울에서 사라진 각종 근대건물 설계도와 당시 사진 등을 연구해 서울 근대건축 양식과 관련된 책을 편찬하기로 마음먹었다. A 씨는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에 관련 도면과 사진 원본을 열람할 수 있는지 문의하니 놀랍게도 '청도 문서고를 방문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A 씨는 서울시의 기록을 보기 위해 청도까지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민 A씨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서울시 문서고가 청도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1000만 수도 서울에 기록원 하나가 없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서울시청은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위기 상황을 대비해 71년부터 청도에서 문서고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9만6036권의 문서·도면·카드 등 종이기록물과 30년 이상 보존문서 32권, 마이크로필름 8001롤이 소장돼 있지만 방문객은 거의 없다. 서울시민 중 누가 기록 열람을 위해 왕복 10시간에 가까운 수고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시는 이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10월 28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은평구 녹번동 옛 질병관리본부 대지 지하 2층∼지상 5층, 전체면적 1만5004㎡ 규모로 서울기록원을 만들 계획을 확정했다. 위 결정은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서울시 기록원 조감도. ⓒ서울시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서울시 기록원

서울시가 기록원을 설립하는 것은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처음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기록물관리법) 제11조에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영구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립을 강제하고 있지만 이 조항을 이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없다. 현재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영구기록물을 임시 서가에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영구히 보존돼야 할 기록들이 제대로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부임 이후 서울시 기록원 설립에 관한 논의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서울기록원의 기획을 확정하는 단계부터 부지선정까지 참 많은 난관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부지확보'와 '예산'이었다. 서울시는 498억 원(부지 예산제외)에 달하는 예산 확보와 적절한 시유지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온갖 건물로 꽉 차 있는 서울 시내에서 기록원에 적합한 공간을 찾는 것 자체가 고역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시유지를 물색하다 보면 '문서창고 설립 반대'라는 현수막이 붙는 경우까지 있었다. 대부분 서울시 기록원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더 큰 문제는 공무원들의 인식이었다. 많은 공무원들은 전자기록 시대에 왜 건물이 필요하냐며 기록원 설립에 난색을 표했다. 기록원이 기록문화의 시작이자 서울시의 재산을 보호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 선진국들은 전자기록 시대에도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을 체계적으로 설립하는지 종합적인 이해도가 떨어졌다. 이런 난관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문제를 끝까지 추진해 드디어 첫 삽을 뜨게 된 것이다.

서울시 기록원,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러면 서울시 기록원은 어떤 정책을 수립해 의미 있는 기록을 수집‧보존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서울시 기록원은 공무원이 생산하는 기록을 보존하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서울시민'이 생산한 기록을 수집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재 서울시민들은 서울과 관련된 수많은 기록(사진, 영상, 도면, 구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수집 및 보존하는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서울시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변화를 경험했다. 이런 변화에도 서울시민에 의해 남아 있는 수많은 민간기록은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서울시는 이를 수집할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우고, 서울시 기록원을 시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에 존재하는 다른 기관과도 적극적으로 협조를 이루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현재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고, 각 마을에서 기록을 수집하는 마을 아카이브 사업도 활발하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마을별 특색 있는 수많은 기록물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 기록원은 이들 기관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마을 기록 수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물만 존재하는 기록원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명실상부한 기록원을 설립해야 할 것이다. 우선 기록원은 단순히 기록을 보존하는 문서고가 아니다. 기록원은 서울시 역사를 평가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기록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이를 위해 기록연구사 및 학예연구사, 기록 활용 전문교육담당자, 보존 및 전시 전문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

기관도 전문가들이 있을 때 가치가 발현된다

기관도 전문가들이 있을 때 그 가치가 발현된다. 가령 '작은 도서관' 사업처럼 도서관 공간은 존재하는 데 사서가 없어 창고로 변해가는 현실은 냉정하게 봐야 할 것이다. 기록원도 전문가를 영입하지 않고 기록만 채운다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럽다. 국가권력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막고 역사를 마음대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반민주적 행태다. 반면, 서울기록원은 서울 역사 사초의 보고(寶庫)가 되어 시민들 스스로 역사를 기술하는 주체적 공간으로 이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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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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