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에 대한 분노와 방어가 뜨겁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반대의 열기가 뜨겁게 퍼져가고 있다. 찬성의 맞불도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일의 미화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일본이 이 모습을 보면서 흘릴 미소를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고 속에서 불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뜨거운 분위기를 조금 벗어 나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몇 가지 따져보고 싶은 문제들이 있다.
친(親)일파가 아니라 부(附)일파
흔히 '친일파'라 부르는데, 이 용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사실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을 수도 있다. 지일(知日)파도 있고 친일파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대외적 관계를 튼튼히 하려면 친일파, 친미파, 친중파, 친러파 등이 다양하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친일 정도가 아니라 일제에 부역(附逆)한 경우이다. 부역(附逆)이란 국가에 반역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빼앗긴 나라에 반역하여 침략국에 가담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파'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의 편을 들어 부역한 행위가 주는 반역의 의미를 오히려 탈색시켜 주는 용어라 하겠다.
1948년 9월 22일 제정된 '반민족행위 처벌법'의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한 것은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들을 처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법 제4조에 12가지 죄가 규정되어 있는데, "악질적", "반민족적"이라는 형용사가 여러 번 쓰였다. 이런 표현을 본다면, 이는 느슨하고 애매한 이미지를 주는 "친일"을 넘어서 반민족적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벌과 청산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반민족 행위자"이며, '친일파'라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부일(附日)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뜻을 좀 더 분명하게 하여 통용하려면 "반민족 행위자"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일제시대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일본에 적대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일본인들과 친하게 지내려 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친일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반민족행위 처벌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일반인들조차 모두 문제를 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때 늦은 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
참여정부 시절 2004년 3월 22일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05년 12월 29일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무산되고 해방된 지 60년이 지나서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상을 규명하고자 참여정부가 법제정에 나섰던 것이다.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은 친일반민족 행위를 18가지로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커다란 역풍을 맞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조용히 묻혀 있던 반민족 행위자와 그 후손들의 반격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정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현재 친일파와 그 후손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집권 여당과 그 세력 하에 더 많이 있다. 참여정부의 어설프고 미지근한 접근이 오히려 살벌한 앙갚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의 핵심적인 오류이다. 그러나 때를 놓친 것이 더 큰 오류일 수 있다. 친일 청산은 역사적, 도의적으로는 옳으나 정치적으로는 이미 실기를 하였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기 보다는 교육적, 학문적으로 풀어 갔어야 한다. 어설프게 정치적으로 손봐주기 또는 망신주기 정도의 대응을 하다가 친일 아니 부일세력들이 강시처럼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부일세력들은 이미 1951년에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폐지되었으므로 이 문제는 끝난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참여정부가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입법을 하고 시행에 들어가니 기득권의 결집된 힘으로 반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참여정부는 어설프게 문제를 삼았다가 크게 되치기를 당한 셈이다.
이제는 반국가 행위가 문제다
70년 동안 이렇다 하게 해결을 못하고 끌어온 문제가 반민족행위자의 문제, 즉 소위 친일파 문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그것을 청산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실패였다. 당시 친일 부역을 했던 당사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이제 그것을 정치적으로 거론하면 후손들은 명예에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통념적 정서를 생각해 볼 때, 조상, 그것도 먼 조상이 아니라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와 언사를 하게 되면 그 자식이나 후손들은 매우 심한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일으키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제는 국가의 존립과 통합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한반도 북쪽을 고구려가 남쪽의 서쪽을 백제가 동쪽을 신라가 지배했던 삼국시대가 재현되는 듯 한 양상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 국가의 3요소는 영토, 주권, 국민이다. 영토를 무단 점거하거나 주권을 부정하고 타국에 넘기거나, 국민을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은 곧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들은 반국가적 범죄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타국에 넘기거나, 세금을 포탈하고 병역을 기피하는 등 국민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국민이 낸 세금을 자기 돈처럼 빼 먹는 짓들은 전형적인 반국가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 아버지 또는 조부가 친일파였다고 지적할 필요가 없다. 그의 행위 자체가 반국가 행위이므로 그 이유만으로 즉시 처단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꼴이라도 갖출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군대의 작전권을 왜 남의 나라에 넘기는가? 게다가 가해자이며 침략자였던 일본군마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는 현실, 이것은 지극히 반국가적 행위이다.
21세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반국가적 행위들이 넘쳐나고 있다. 국회는 반국가 범죄를 규정하고 이를 단죄하는 입법에 나서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나라의 유지와 발전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70년 전, 아니, 100년도 더 지난 친일 문제를 여전히 정치적으로 따지는 것은 문제해결보다 오히려 갈등과 극한 대립만을 부추긴다.
중국 대륙의 왕조들은 평균 250년 정도 유지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고려와 조선은 대략 500년을 유지했다. 대한민국은 몇 년이나 유지될까?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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