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며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왜 박근혜 정부는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를 '2016년 총선을 앞둔 보수층 결집'으로 본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가 무능한 야당을 졸로 보며 장기 집권을 준비하고 있다"며 "공천권 장악 등 당 내부를 정비하고, '역사 쿠데타'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있다"고 한 것에서 이런 인식이 묻어난다. 전문가들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교과서 국정화 등 이념 문제가 총선 의제를 '박근혜 정부 3년 평가'나 민생·경제 문제가 아닌 '보수-진보' 대결로 몰고 가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여론 구도를 보면, 박 대통령 특유의 '여론 갈라치기'(☞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분열통치와 행복의 하향평준화) 전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13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최근 여론조사 결과(10월 2일, 리얼미터)를 보면 이념적으로는 보수층, 지지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이 국정화를 지지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준 52:48의 '범보수 대 범진보'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수의 단결을 유도하면 어떤 의제에서건 '52% 다수'를 점한 여권이 유리하게 된다. 실제로 이런 '갈라치기' 전술은 2014년 세월호 사태 때나, 2013년 국가정보원·사이버사령부 등 이명박 정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가 불거졌을 때 지지율이 폭락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박 대통령을 구해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 대통령 특유의 이 '프레임' 전술을 "두 국민 정치"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이번 '전투'에서 이길 것이냐, 패배할 것이냐가 아니라, 그가 이 싸움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다. '보수진영을 결집시켜서, 진보진영을 이기고, 그 다음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이번 논란을 통해 가져가고자 하는 실익이 뭐냐는 부분이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현재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수층 결집을 시도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보수진영 입장에서, 지금 굳이 교과서 문제로 결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앞서 박근혜 정부가 '여론 갈라치기'를 시도한 때를 보면 △대선 개입 △연말정산 '폭탄' △연금 축소 지급 △세월호 사태 등 정권에 불리한 이슈가 터졌을 때다. 모두 박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 이하로 국정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였다. 이는 기존 지지층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뜻이었고, 따라서 다시 한 번 보수층을 결집시켜야만 했던 필요성이 명징했다.
반면 지금은? 박근혜 정부 국정 수행 지지도는 8월말 남북 고위급 합의 이후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줄곧 앞서고 있다. 또 대통령 지지율에 호재로 작용할 오바마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 등이 예정돼 있다. 새누리당 내 공천 룰 갈등에 청와대도 휘말려 있긴 해도, 위기 상황까지는 아니다. 국정 교과서 때문에 정치적 국면이 전환되긴 했지만, 청와대가 국면 전환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면 전환용? 총선 대비책?…'갸우뚱'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면, 청와대의 '총선 대비 전략'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결과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선거가 6개월 이상 남았으니 그 전에 (이슈 파급력이)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총선에 보수를 결집시키기 위해 교과서 카드를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만약 청와대가 이를 총선 의제로 삼으려 했다면, 국정 교과서가 실제 채택되는 해를 2018년으로 한 해 늦추더라도, 국회의 예산안 통과 뒤인 12월 중순 이후나 내년 초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촉박한 일정에서 부실·날림 편찬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며 "(박 대통령) 임기 내 끝내겠다는 데 집착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역사 교육이 정치에 휘둘린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함께 일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인식도 이와 유사하다. 이 교수는 12일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교과서 국정화는 총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 포석이라는 해석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보수 결집이라고 하는데, 박 대통령에게 보수는 기본적으로 '있는 표'"라며 "오히려 여기에 불만족한 다른 유권자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선거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이슈라는 취지다.
이날자 <조선일보>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익명으로 한 말에서도 '오히려 선거에는 역효과'라는 시각은 드러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학계와 교육계, 야당의 반발은 예상됐던 바"라며 반대 여론에 대한 정면돌파 결심이 필요했던 상황임을 시사했다. 다른 청와대 인사는 "보수 진영 일각에서도 국정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이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을 까먹을 수도 있다"며 부담감을 표현했다.
보수 성향 일간지들 역시 여전히 국정화 방침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자 사설에서 "국가 개입이 적은 검정도 부실하게 했던 교육부가 국정화는 제대로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으며 "그러지 않아도 민생이 어려운데 국정화가 이념 대결로 치달아 '노동 개혁' 등 모든 개혁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여론 동향을 보면 지난 2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검정 교과서 선호'가 43.1%, '국정 교과서 선호'가 42.8%로 팽팽하게 나타나고 있다.
박성민 대표는 "(박 대통령 등 여권이) 이것을 총선 전술로 고려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교과서를 놓고 싸움이 붙으면 노동시장 개편이나 예산안 통과 등이 쉽지 않다"며 "그런 전략적 계산을 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이것을 꼭 '총선용'이라고 한정해 본다면 오히려 (그렇게 진단한) 진보진영 쪽의 시야가 총선까지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가 바라는 건 '박정희 체제' 복원…단지 상징적 차원일까?
대부분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박 대통령의 개인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개발을 주장한 대통령 한 사람을 정치권·시민사회 전체가 감당하지 못했던 일의 박근혜 정부 판(版)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13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었고, 지난해 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도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달라"고 하는 등 역사 교과서 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날도 "각계 의견을 잘 반영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며 국정화가 박 대통령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했다. (☞관련 기사 : 朴대통령 "역사교육 정상화로 국민통합")
박성민 대표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를 보면,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을 제대로 인정받으려 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과(過)'도 털어내려는 흐름이 보인다"며 "인사청문회마다 '5.16이 혁명이냐 아니냐'라는 유치한 질문이 나오지만, 정작 똑부러지게 답하는 사람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박 대표는 "박 대통령은 '국가 정체성' 문제만큼은 꼭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종북'과의 싸움, 국정원 보관 대화록 공개, 통합진보당 해산 등은 본인의 신념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지 거기 어떤 전략적 사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평했다.
김윤철 교수도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 박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며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보수세력이 언젠가는 하고자 했던 일들이었다"고 평했다. 이처럼 교과서 국정화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면 '왜 지금이냐'는 시점 문제도 풀린다. "지금 해야 관철된다"는 것이다. 이철희 소장은 "기본적으로 교과서 문제는 박 대통령의 소신"이라며 "총선이 지나면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니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김윤철 교수는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종의 '이념 전쟁'이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좌우한 가장 강력한 체제가 '박정희 체제'였는데, 박 대통령은 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복원하려는 것"이라며 "단순히 총선용이나 국면 전환용이라기보다, 한국사회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체제' 차원"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특징을 이념적으로는 "보수·반공", 사회경제적으로는 "노동에 적대적인 사회동원체제"로 규정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재단사 전태일이 분신 자살을 선택한 때는 1970년 11월 13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취임 7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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