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지도부는 12일 황우여 부총리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 직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직접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새정치연합은 이와 함께 10만인 서명 운동을 추진하는 등 여론전에 적극 나섰다. 문 대표는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전 세계의 상식에 반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우기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비난하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김무성, 교과서 공개 토론하자")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에서 "박근혜 정부의 반(反)역사, 반민주적 망동"이라며 "교과서 개정 작업은 4대강 사업의 박근혜판 사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환경을 오염시켰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회영 선생은 영화 <암살>의 배경이 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와 규탄 결의대회를 잇달아 열고 "박근혜 정부는 친일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규탄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들은 규탄문에서 고시 철회와 교육부 책임자의 사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특히 문재인 지도부와 각을 세워온 당내 비주류도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새정치연합 비주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진짜 혁신 토론회'(☞관련 기사 : 새정치 비주류 총출동 세 과시…문재인 압박)에 참석한 안철수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시대착오적 음모를 꾀하고 있다"며 "국정교과서는 한 마디로 '박근혜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수구(守舊)로의 회귀"라며 "우리 아이들이 왜 '박근혜 교과서'를 배워야 하나. 배울 이유도 없고, 그런 교과서를 만들 이유도 없다. 단호히 반대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한길 전 대표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겠다는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하루하루 커져가는 이 때에, 느닷없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겠다는 집권세력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의 상처가 재발하고 있는 것 같다. 친일과 독재의 과거가 두려운 집권세력이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를 왜곡해서 친일·독재 과거를 미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박근혜 정부는 무능한 야당을 졸로 보며 장기 집권을 준비하고 있다"며 "첫째로 당 공천권 장악 등 내부를 정비하고 총선에 대비하고 있고, 둘째로 '역사 쿠데타'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화 안 돼" 야권 전체 의견 통일, 문제는 '어떻게?'
새정치연합 외부에서도 정의당이 "박정희 독재 시대의 교과서를 부활시키기 위한, 참으로 저열한 수작"이라고 대변인 논평을 내어 비판하고 나섰다.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의원도 "헌법 파괴와 독재 부활의 암울한 역사로 끌고 가려는 쿠데타적 발상"이라며 "야당을 포함한 시민사회·교육계·학계 등 수구 기득권 세력의 역사 독점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비상대책회의 구성을 촉구했다.
이처럼 새정치연합 주류·비주류와 야권 전체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문제는 교육부의 고시 강행을 저지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 고시는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정조치다. 현재 검토되거나 거론되는 방법은 △국정화 금지 입법 △국정조사 △황우여 부총리 해임 △여론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성사만 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당연히 입법화다. 지난 9일 새정치연합은 박수현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현재 교과서 고시에 대한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며 "새정치연합은 정부가 고시로 교과서를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도록 법률로 입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국회 전체 의석 298석 가운데 128석, 정의당은 5석에 불과하다. 실제로 입법을 추진한다면 소관 상임위가 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전체 30명의 위원의 소속정당별 분포를 보면 새누리당 16명, 새정치연합 12명, 정의당 1명, 무소속 1명(박주선 의원)으로 돼 있다.
국정조사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연일 주장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전반에 관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거듭 촉구한다"고 공식 요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새누리당은 "야당이 좌편향 교과서의 왜곡을 모른척하며 국정조사와 국정화 고시 발표 중지 가처분 신청 등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책임함을 인정하는 것"(김정훈 정책위의장, 12일 새누리당 최고위)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황우여 부총리 해임 건의안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정화 강행의 총대를 맨 국무위원에 대한 '처벌' 방안에 가깝다. 문 대표는 이날 "만일 국정화 교과서가 공포될 경우 황 부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 역시 즉각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황 부총리 해임 역시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헌법 63조에 따라 국회가 국무위원을 해임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지도부의 광화문 1인시위 등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펴며 유권자들의 호응을 유도, 내년 총선까지 교과서 의제를 가져가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를 '표'로 압박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문재인 대표가 이날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은 국민들과 함께 친일 독재 교과서 총력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다. 절대 다수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보여줄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금지를 법제화할 것을 다짐한다"고 한 발언이나, 천정배 의원의 '범 시민사회 비상대책위' 제안은 이같은 구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문제는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과 이같은 선거 전술을 수행할 야당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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