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경기흐름이 양호한 미국의 기업들마저 대거 감원에 나서는 등 전 세계에 실직 공포가 커지고 있다.
6일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지난 3분기 감원 발표가 지난 2009년 이후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이달에도 감원 소식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세계적인 불경기와 미국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연말부터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3분기 감원예고 20만명…금융위기 이래 최대
민간 조사업체인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CG&C)에 따르면 9월 미국 기업들이 발표한 감원 계획 규모가 HP 3만명을 포함해 모두 5만8천877명으로 전달(4만1천명) 보다 43% 급증했다.
3분기 전체로는 20만5천759명으로 분기 기준으로 6년 만에 최대였다.
올들어 3분기까지는 49만여명으로 작년 동기대비 36% 증가했고 작년 연간보다도 2% 많다.
유가 급락에 따른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감원이 많았다.
CG&C에 따르면 에너지 업계는 올해 들어 7만2천여명이 감원했다.
미국 2위 천연가스 생산업체 체사피크 에너지는 전 세계 인력의 15%(740명)를, 세계 2위 석유채굴기업 할리버튼은 19%(2천명) 이상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엑손모빌(AAA등급)과 셰브론(AA등급)도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약 30년간 유지해온 등급에 대해 부정적 전망 평가를 받은 만큼 비용 감축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중장비 제조업체 캐터필러(CAT)는 원자재 시장 환경 악화와 중국 성장 둔화로 인해 내년 말까지 최대 5천명을 감원하고 2018년까지 1만명 이상 내보낼 계획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수백명 감원키로 하는 등 금융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 들어서는 반도체 업체 AMD가 수요 감소로 인해 전체 인력의 5%(500명)를 줄인다고 밝혔다.
월마트가 본부에서 450명을 내보내고 식품업체 콘아그라도 전 직원의 30%(1천500명)을 줄이기로 하는 등 앞으로 경기 전망에 따라 선제적으로 비용 절감에 나선 업체들도 잇따랐다.
델타 항공과 통신회사 스프린트는 생산성 증대와 비용 절감을 위해 규모를 정하지 않은 채 인원 감축을 발표했다.
CG&C CEO 존 챌린저는 "경기 팽창기가 끝나기 전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해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 전 세계 대규모 감원 소식 없는 날이 드물어
스위스 광산기업이자 원자재 거래업체인 글렌코어는 남아공 석탄 탄광을 폐쇄하면서 620명을 해고했으며 1천명 해고로 이어질 백금 광산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원유기업인 셸 말레이시아는 2년간 전체 인력의 20%(1천300명)를 감원한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곧 이어 태국 철강업체 SSI도 영국 공장에서 1천700명을 정리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철강 밀어내기로 철강가격이 폭락한 탓이다.
스페인 에너지업체 렙솔은 앞으로 3년간 1천500명을 줄인다.
원자재 가격 약세의 진앙지인 중국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동북지역 최대 석탄기업인 룽메이 광업그룹은 적자 누적으로 인해 3개월 내 직원 10만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선진국 주요 대기업들도 감원을 피해가지 못했다. 에어프랑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2천900명을 해고할 수 있다고 밝혔고, 항공기 엔진업체로 유명한 롤스로이스는 유가 폭락 탓에 400명을 내보낼 계획이다.
퍼실 세제로 유명한 독일의 헨켈은 중국 수요 감소 탓에 아시아 지역 중심으로 1천2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파문을 일으킨 폴크스바겐은 감원을 피하기 위해 주당 교대근무를 1회 줄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폴크스바겐이 독일 뿐 아니라 중국과 브라질, 동유럽 등의 생산시설에서 감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본에서는 샤프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3천200명의 직원이 희망퇴직했다. 회계부정 문제가 불거진 도시바도 적자 사업부의 감원을 고려하고 있다.
◇연말 다가오며 한국도 불안감 확대
한국에서도 연말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실직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신규 수주가 뚝 끊긴 조선업종은 구조조정이 이미 진행 중이며 저유가와 중국 수요 둔화로 직격탄을 맞은 석유화학 업계도 쉬쉬하며 인력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마저도 인력 재배치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는데도 대규모 감원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 실적과 연결되는 수출이 9개월 연속 감소하는 상황에 향후 중국 등 신흥국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 보니 불안감이 팽배하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감원을 생각할 정도라면 상황이 심각한 것"이라면서 "한계 기업은 정리하는 한편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침체와 중국 성장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실업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으며 미국 금리인상까지 더해지면 상당기간 안좋을 것 같다"면서 "우리도 4대 구조개혁을 더 구체화하는 한편, 일본이 통화가치를 내려서 경기를 살린 점을 참고해 단기 대책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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