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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격차 크지 않은데 이념갈등 극심한 이유는?

[김제완의 좌우간에·25] <황해문화> 중도특집 비평 1

우리사회에서 이념갈등의 심각성은 한계치를 넘은 듯하다. 진보 보수 양극단 사람들이 사사건건 맞부딛치며 이 사회를 쥐락펴락 한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삶의 질은 높지 않다. 소득양극화와 함께 이념양극화가 그 이유일 것이다.

<황해문화> 2015 가을호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서”라는 주제의 특집을 기획해 네편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들은 잘 짜여진 한편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먼저 이념갈등의 증폭 원인 네가지를 윤성이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가 제시한다. 이 특집의 기획자는 이념갈등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중도라고 본다. 그래서 중도 연구의 권위자인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가 ‘복잡성의 중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이어서 중도수렴의 실험결과를 채진원 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가, 과거 해방기의 사례들을 김기협 선생이 소개한다.

윤성이, 무엇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는가

윤성이 교수는 “무엇이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는가”에서 이념갈등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소개하고 이념 갈등 증폭의 원인 네가지를 제시한다.

“여러가지 사회갈등 요인가운데 국민들은 이념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2014년 국민대통합위원회 '사회갈등 해소와 통합을 위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집단간 갈등이 가장 심각한 관계는 여당과 야당(평균값 4.54, 5점 척도)이 가장 높았으며, 보수와 진보 갈등이 4.32점으로 그뒤를 이었다. 한편 노사갈등(4.12), 빈부갈등(4.08) 그리고 영호남갈등(3.80), 새대갈등(3.64)은 이념갈등에 비해 갈등의 인식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기간 어떤 갈등이 가장 심각할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3%가 이념갈등을 지목했고, 빈부갈등과 노사갈등은 각각 20.3%와 6.3%에 그쳤다.” --<황해문화> 2015 가을호 40쪽

윤 교수는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 네가지를 꼽았는데 그중 첫째는 집단극단화이다. 미국 하버드대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 집단극단화가 잘 설명돼 있다. 그는 아랍 테러리스트의 생성과정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집단 구성원들이 모여서 토의를 하고 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성향과 같은 방향을 유지하면서 더 극단화되는게 보통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생각하는 공간은 극단적인 운동을 키우는 토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온건한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은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에 반감을 품고 떠나게 된다. 이같은 패턴은 특정 시기나 문화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선스타인은 말한다. 미국 프랑스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풀뿌리 사회운동단체 내부에서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념갈등 증폭원인중 첫번째로 집단 극단화를 꼽은 것에 동의한다.

두번째 증폭원인은 정당정치이다.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고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이상으로 과장돼서는 안된다. 정치인은 사회갈등을 수렴해서 대신 싸워주는 ‘갈등 대행’ 임무를 맡고 있다. 싸움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사당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리게 된다. 그 싸움에는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그 정파를 지지하는 국민을 대변한다. 학자들이 정치권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책임전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세번째 이념갈등 증폭원인으로 “매개집단의 정치화”를 들었다. 매개집단이란 시민단체나 언론을 말하는데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정치화되어서 선거과정에 개입하였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했다고 말한다. 매개집단인 시민단체의 정치화가 이념갈등을 증폭시켰다는 견해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윤 교수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약화시켰다고 말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뚜렌은 사회운동은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된다고 했다. 좌파정권에서 우파사회운동이, 우파정권에서 좌파사회운동이 활기를 띤다. 사회운동이 좌편향 또는 우편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균형잡기를 위한 것이다. 더구나 한국과 같이 정치적 모순이 심한 곳에서 시민운동이 정치와 구분되는 시민사회 고유의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한국사회 이념갈등 증폭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며 언론이 공론장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역기능을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최근 들어 정치화된 언론의 편집이 지지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종편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네명의 패널이 등장하면 한두명은 야당 성향 패널이 앉아있었지만 요즘은 네명이 모두 보수인 경우가 많아졌다.

네 번째 원인은 온라인 공간의 양극화이다. 뉴미디어로 인한 끼리 집단 현상은 우리 정치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온라인 공간에서 다른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 모두 이념 양극화와 사회 파편화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다. 보수는 보수끼리, 그리고 진보는 진보끼리 소통하고 뭉치면서 이념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자연히 이념갈등은 증폭된다. 이러한 매체환경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소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지적도 적절하다.

이념격차 크지 않은데 이념갈등 극심한 이유는

윤 교수가 제시한 네가지 원인은 이념 진영간의 간격을 넓히는데 기여한다. 이것은 양진영의 이념격차가 크지 않음에도 이념갈등이 높은 한국적 특수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같다.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이념외적인 문제이다. 이념에 대한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무지와 오해가 그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갈등 양상에 대해서는 관련 학자 연구자들이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언젠가 김호기 교수가 고백했듯이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이념문제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이념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극심해졌음에도 수준높은 연구논문을 찾기 어렵다.

대표적인 혼란의 사례가 진보 보수 용어 문제이다. 진보 보수 중에 보수는 족보가 있는 개념이지만 진보는 특히 진보주의는 학문적 뿌리가 없는 말이다. ‘진보-보수’가 쌍으로 사용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 사실이 동국대 홍윤기교수가 2002년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졌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진보주의를 서양의 사회과학사전에서 찾아보니 항목이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말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생아처럼 태어나 사회과학 논의의 키워드로 자리잡은 진보라는 용어가 혼돈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0년대 중반경부터 언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80년대에 등장한 좌파가 우리사회에 세력화하자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학문적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이 용어는 어떤 마력을 갖고 있어서인지 너도 나도 선점하려는 대상이 되었다. 좌파 중도좌파 자유주의자 심지어 보수도 “진보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보쟁탈전이라 부를만하다. 현장을 들여다보자.

2012년 4월 진보대통합을 논하는 자리에 좌파의 대표격인 노회찬과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함께 앉았다. 노회찬이 우리와 함께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라고 했더니 유시민은 “아니 내가 진보인데요”라고 말했다. 봉숭아 학당같은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정치적 동업자였지만 노무현은 한번도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사실은 그의 비서였던 천호선이 필자에게 확인해주었다. 노무현은 늘 진보주의자를 자처했다. 이뿐 아니라 보수 이데올로그인 조갑제는 2005년 국민대 연설에서 “보수가 진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좌파 노회찬 자유주의자 유시민 중도좌파 노무현 우파 조갑제가 모두 자신이 진짜 진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진풍경인 진보쟁탈전은 한번 더 둔갑술을 부리는데 진보탈출 러시가 그것이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시도했던 진보대통합이 실패로 끝나자 국민들 사이에 진보혐오증이 퍼져나갔다. 통합진보당의 분당과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경기동부와 이석기 파동이 진보에 대한 실망감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너도나도 진보라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누군가 진보는 진부하다는 말도 남겼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개명했으며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당명에서 진보를 떼어냈다. 이어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통합진보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갑제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뉴라이트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만이 진보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은 이념갈등을 희화화시키고 무질서의 도가니로 밀어넣는다. 국민들은 이념은 지긋지긋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갈등을 악화시킨다.

진보라는 가짜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네 정파가 각축하는 모습을 필자는 사색당파를 패러디해서 "사색진보"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혼돈은 엄밀하게 말해서 이념과 직접 관계없는 이념갈등 이전의 문제이다. 이념 자체가 복잡한 세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난해한데다 이에 더해서 중심용어와 개념의 혼란이 더해졌다. 이런 혼돈으로 인해 실생활에서 겪는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저녁에도 직장인 대학생들이 정치를 안주로 술을 마시다보면 진보라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들은 저마다 사색진보중 하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곧 말들이 얽혀서 다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보수 새누리당과 비교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라고 말하면 그게 무슨 진보냐 이런 식이다. 이런 다툼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고 피곤하게 만들뿐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현상이어서 국제 학계에 보고해서 공동연구에 나설 만하다. 진보 보수 양진영은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연구자들을 파견해서 진보 보수 용어에 얽힌 혼돈을 논의하고 새로이 개념규정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의 의견을 붙이자면 좌파는 왼쪽으로 진보하자는 사람들이고 우파는 오른쪽으로 진보하자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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