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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장관, 평양으로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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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장관, 평양으로 가시오!

[정욱식 칼럼] 존 케리 미국 국무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존 케리 미국 국무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20일 전에는 애슈턴 카터 국방 장관께 공개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케리 국무 장관께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케리 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 관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이 방식을 택한 것이니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장관께서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시사한 것을 두고, "북한은 제대로 된 경제가 없기에 제재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재 이상(more than sanctions)"이라는 표현을 두고 설왕설래도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미국이 북한의 로켓 발사 시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겠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합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처럼 경제적으로 고립된 나라에는 오로지 제재만으로, 특히 미국의 양자 제재만으로 압력을 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수단"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그는 "새로운 수단에 대해 현재 발표할 만한 것은 없으며, 북한의 선택을 도울 수 있는 가용한 모든 수단에 대해서는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케리 장관님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고민은 이런 것 같습니다.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제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마땅한 수단이 없다'고 말이죠. 이러한 고민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 존 케리 미국 국무 장관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국무부에서 마이테 은코아나 마샤바네 남아프리카공화국 외무 장관과의 회담 후 공동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케리 장관은 북한의 핵 개발을 끝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제재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저 역시 북한의 언행에 대해 실망하고 있고, 또 깊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갖고 있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장관님께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과 관련해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나는 '먹고살기도 힘든 나라가 무슨 인공위성 발사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래서 북한의 우주 발사체는 인공위성의 탈을 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북한의 우주 발사체 프로그램은 탄도미사일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여깁니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인공위성 및 로켓 개발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 역시 쉽게 납득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북한은 독자적인 위성 체계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군사적 목적도 있지만, 경제적 측면도 있습니다. 대홍수와 대기근 등 자연재해를 여러 차례 경험한 북한은 기상 관측 위성이 농업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여깁니다. 농업뿐만 아니라 통신, 위치 확인, 자원 탐사 등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은 인공위성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독자적인 인공위성 체계 확보 의지가 강해질수록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북한이 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장거리 로켓 발사는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그러면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규탄과 제재를 가하고, 북한은 여기에 반발해 핵실험 등 도발적인 언행에 나설 공산이 커지겠지요.

그러나 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인공위성을 ICBM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이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또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2000년 북-미 간의 협상 당시 러시아는 북한의 인공위성을 대리 발사해주는 중재안을 내놓은 바 있고, 북-미 간에도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간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롭게 등장한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협상을 중단하면서 역사적 기회도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15년 전에 있었던 '미완의 협상'을 재개하는 것만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15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관님께서 이란 핵 협상에서 보여준 집중력과 의지를 대북 협상에서도 발휘해준다면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2012년 북-미 간에 채택되었다가 파기된 '2.29 합의'를 개선된 방향으로 되살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합의에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금지한 명확한 내용이 없었던 만큼, 이번에는 이를 포함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인공위성 대리 발사 문제도 의제에 포함시켜야 하겠지요.

아울러 9.19 공동 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 협상의 문을 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10년이 넘게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한 평화 협상의 문을 여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로켓 문제뿐만 아니라 핵 문제 해결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입니다.

케리 장관님을 비롯한 미국 사람들은 이란과 북한을 비교하곤 합니다. 대개 이란의 태도 변화를 강조하면서 '불변의 북한'을 비난하는 소재로 이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란의 태도 변화에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북핵 문제보다 더 어렵다'던 이란 핵 문제 해결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도 이 덕분이겠죠.

저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암시로 또다시 한반도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출발점은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무위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케리 장관님의 방북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장관님께서 방북이라는 용단을 내리신다면, 한반도 평화에 새로운 장을 여는 감동적인 장면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대신할 것입니다. 이건 시도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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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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