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권위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시정을 하는 유일한 국가 기관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며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 조사'를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SOGI법정책연구회는 1100여 명의 성소수자 대상 실태 조사, 100명의 교사에 대한 인식 조사를 수행했다. 국가 기관의 사업으로서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직접 조사 및 차별 실태 조사는 처음이다. 인권위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를 할 수 있도록 조사를 잘해 달라"는 당부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실태 조사 결과가 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책 권고를 하겠다는 이는 누구이며,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는 누구인가?
취임 전 이성호 인권위 위원장(당시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를 방청했다. 법조 관료 출신으로서 인권위의 독립성 유지와 인권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후보자가 서울남부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신청에 "서류가 미비하다며 성기 사진을 제출"하라는 보정 명령을 내렸던 일에 대해서 다수 의원들이 지적했고, 후보자는 "피해자에게 송구하다"는 사과를 했다. 청문회를 시작하며 후보자가 소수자의 인권을 살피겠다며 "성소수자"를 언급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슈에 대한 방어선을 미리 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지난 8월 취임 이후, 한국교회연합을 내방하여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금지법 문제에 대해 "한국 교회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소수의 인권을 위한다고 다수 인권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활동한다"고 답했다. 두 번 모두 반(反)성소수자 인사인 목사 출신 최이우 비상임위원을 대동한 자리였다.
인권위가 나라 안에서 정부, 국회, 사법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로 창설된 것은 "차별 시정의 선도적 역할"을 추진하기 위한 이유에서이다. "다수의 인권과 동의"라는 이해관계 개념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이해관계"를 호명하며 움직이는 곳이다. "교회의 염려"와 이해관계가 인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인권위는 모든 항의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불을 끌 것인가?
반성소수자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조직화된 항의와 차별 선동이 심각하지만, 무엇보다 성소수자 및 인권 운동에서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성소수자 인권을 끌어안지 않으려는 징후는 처절하다. 법무부, 여성가족부, 몇몇 지방자치단체 인권팀 등은 "성소수자 인권은 담당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인권의 바로미터를 계속적으로 앞으로 움직여 나가야 하는 인권위에서 위기 관리만 한다면 이를 더 이상 "인권" 기구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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