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성호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성별 정정 신청을 한 성전환자에게 성기 사진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자격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30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자가 서울남부지방지법원장을 지내던 지난 2013년, 이 후보자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기 위해 '등록부 정정 허가 신청'을 낸 A 씨에게 자신의 명의로 '보정 명령'을 내렸다. 이 보정 명령은 '여성으로서 외부 성기를 갖추었음을 소명하는 사진'을 2장 이상 제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전환자에게 성기 사진을 요구하는 것은 법원 내부 지침과는 상관 없는 것이다.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 신청 사건 등 사무 처리 지침'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성별 정정 신청자에게 요구되는 자료는 '정신과 전문의사의 진단서나 감정서',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 '전문 의사 명의의 진단서나 감정서' 등이다. 판사가 직접 신청자의 성기를 확인해야 한다는 지침은 어디에도 없다.
인권위원회는 징병 신체 검사 등에서 성기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가 헌법상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지난 2007년 국방부에 '징병 신체 검사 등 검사 규칙' 개정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2008년 1월 규칙을 개정해 성전환자는 신체 검사 때 법원의 성별 결정서와 병원의 신체 검사서, 방사선 소견서 등의 서류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정진후 의원 측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보정 명령 6년 전에 이루어진 사항임에도 이성호 후보자는 2013년 법원의 권위만을 이용해 인권 침해적 요구를 했다"며 "국가인권위의 인권 침해 권고 수준에도 못 미치는 행위를 한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의 수장 자리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명의로 보정 명령서를 보낸 것은 맞지만, 통상적으로 법원 사무관이 일을 맡아왔다며, "당시 담당 사무관한테도 잘못됐다고 얘기해 그 뒤로 그런 적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정 명령' 재판장 고유 권한인데, 사무관이 처리? 납득 안 돼"
'통상적으로 법원 사무관이 일을 맡아 왔다'는 이 후보자의 이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후보자가 성별 정정 신청을 낸 성전환자에게 내린 '보정 명령'은 말 그대로 '명령'에 해당한다. 만일 보정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소송에 대한 효력도 사라진다. 보정 명령이 이처럼 강제적 성격을 띠는 만큼, 재판장의 결재가 꼭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이 후보자가 말한 '법원 사무관이 맡는 것'은 '보정 공고'로, 보정 명령과 달리 강제성이 없는 조치다.
이 후보자의 해명은 책임 회피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김동현 변호사는 이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재판장이 자신의 명의로 명령을 내리는데 이를 사무관이 해온 일이라고 해명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프레시안>은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인권위 측에 연락했으나, 청문준비팀 관계자는 "후보자 재판장 시절의 일이라 저희가 답변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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