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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왜 원숭이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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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왜 원숭이가 없을까?"

[유학자의 동물원 ④] 조선 선비와 동물

조선 시대 '선비'와 '동물'은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의복을 갖춰 입은 다음에 꼿꼿이 앉아서 유학 경전을 읊는 그들이 하찮은 미물인 동물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유학자 가운데 하나인 이익은 "고기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의 물음"을 들으며, 육식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체계가 잡힌 '동물권'을 둘러싼 서양 철학의 관심을 이미 수백 년 앞서 선취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동물행동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동물을 치밀하게 관찰하게 또 세밀하게 기록했죠. 소나 말 같은 가축은 물론이고 물고기, 날짐승 심지어 벌레도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동물 세계에서 인간 세계의 모습을 보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죠.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동물의 세계.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당기는 이 주제를 재기발랄한 젊은 학자 최지원이 파헤쳤습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동물덕후'였던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공부했고, 그 결과를 이렇게 책으로 묶었죠.

자, 이제 이 흥미로운 책을 직접 읽어볼 시간입니다. <프레시안>과 알렙 출판사는 <유학자의 동물원>을 먼저 읽은 네 명의 독후감을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차례씩 연재합니다. 철학자, 수의사, 사학자의 흥미로운 독후감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마지막 독후감의 주인공은 광주우치동물원 최종욱 수의사입니다.

▲ <유학자의 동물원>(최지원 지음, 알렙 펴냄). ⓒ알렙
일전에 몇 번 동물원에 사슴뿔을 얻으러 오는 고고학 교수님이 있었다. 왜 사슴뿔을? 그는 학생들에게 선사 시대 도구를 만드는 실습을 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뭐! 아낌없이 주면서 물어봤다. 동물 유래 도구들을 많이 썼나요?

"그렇지요! 선사 시대 우리나라는 동물의 왕국이었어요. 심지어 매머드도 살았다는 기록도 있는 걸요. 반구대 암각화 보셨지요? 거기에 고래 말고도 여러 육상 동물도 나와요. 인간이 사냥하는 장면도 나오고, 고래도 종류가 아주 다양하지요. 우리나라는 예부터 중국, 러시아와 통하는 생태 통로였고 대륙에서 쫓긴 동물들의 안착지였어요. 그러니 사냥만 했겠어요? 동물의 이빨, 뿔, 뼈, 그런 것들은 아주 선진화된 도구가 되었겠지요."

아! 그렇구나. 난 돌도끼만 연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왜 우린 그런 걸 모르고 살지? 바로 기록의 부재인 것이다. 암각화가 없었다면 아직도 그런 고대의 한반도 생물 다양성을 몰랐을 것이다. 그게 기록의 힘인데 우리 역사엔 동물에 대한 기록이 아주 부족함을 절감했었다. 난 암각화나 동굴 벽화처럼, 애매한 글보단 그림을 통해 동물들을 만나고 싶다. 실체가 보여야 안심이 된다. 정말 애들이 살았구나! 하고.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아! 내가 한번 다루고 싶었던 그러나 너무나 어려웠던 주제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 역시 동물을 돌보고 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점점 더 궁금한 것이 늘어갔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많은 동물들이 살았었다. 육지에는 공룡에서 심지어 매머드까지 살았고 게다가 바다는 고래의 천국이었다는데, 이를 기록한 자료가 너무나 빈약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기록에 원숭이가 없는 것도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소위 대륙과 일본의 생태 통로라 하는 우리나라에,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는 원숭이가 없다니?' 의문투성이였는데, 공자 왈 맹자 왈 했다던 기록을 독점한 선비(유학자)들은 겨우 자기들의 집단 지성에 의거해 그 집단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쓰고 싶은 것만 쓰다 보니 자신들 멋대로 동물 주제를 다루지 않았나 싶었다. 그 역시도 대체로 저급하게 평가했고 그래서 세세한 자연 관찰 기록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르겠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이 아니더라도 이런 생태학적 증거들을 찾아보려면 사실 애매한 문서보다는 한 장의 작은 그림이 오히려 결정적인 힌트가 된다. 나는 이 책에서 발이 엉성한 이인문의 낙타 그림도 보았고 괴물같이 그린 심사정의 코끼리 그림도 보았다.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대체로 해학적인 호랑이 그림은 가끔 있어도 그 많았다던 늑대, 표범, 곰, 여우 들의 그림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이색적인 동물들은 외국 여행을 자랑하려고 아주 드물게 그렸지만 정작 이 땅에 함께 사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까치, 노루, 사마귀, 쥐, 고양이, 개, 소, 말, 닭 정도에 십장생이라는 학, 거북, 사슴, 노루를 비롯해 까치, 제비, 기러기(오리), 닭, 물고기 정도만 그렸다. 나열하다 보니 많게 보이긴 하지만 딱 그냥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책 또한 나의 관찰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정말 늑대나 곰, 청설모, 수달이 이 땅에 살았고 그걸 본 기록자들의 견해를 듣고 싶은데, 진보적이라는 조선 중기 실학자들도 앞선 고루한 선배 유학자들의 유추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대신 이전 선배들이 거의 동물들을 의인화, 자기 합리화하여 표현했다면 그들은 서구 기록 문화의 영향을 받아선지 좀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좀 더 다양하게 동물과 사물들을 살펴보았다는 것, 그러나 역시 그들 또한 한사코 자기를 그리고 인간을 투영해 바라보는 관찰 습관을 버리지는 못했다는 것 또한 알게 했다.

다 읽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 책의 작가가 의외로 젊다는 것에 놀랐다. 그만큼 자료가 풍부했고 사유의 깊이가 남달랐다. 그리고 역시 젊음이 좋다는 게, 당돌하다는 것이다. 유학자를 보면서 물과 기름 같은 자연과학을 동시에 보는 이중 투시법을 택하면서도 결코 한 길로 치우치지 않는 탁월한 평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쓴 아주 모험적인 책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이 만든 인공 지능의 산물이라는 것, 동물들보다 문을 하나 더 열고 나갔을 뿐 자연의 도구로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잔인하게 던진 말에 지극히 공감이 간다. 그런 말은, 하고 싶어도 참 내뱉기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에 작가가 많이 인용한 이익, 이덕무, 최한기,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같은 선비들이 현실에 있었다면 담뱃대로 꿀밤을 한 대 맞을 정도의 과격한 표현이지만 젊은 피가 그대로 느껴져서 좋았다.

나도 왜인지 잘 모르지만 내가 동물 책을 쓰면, 30대에 쓴 것조차 사람들은 50대 이상의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지극한 수의사가 쓴 글이라고 착각한다. 나 또한 이 작가를 50대 넘은 유학을 연구하는 교수님 혹은 철학자 정도로 지레 짐작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시선의 참신함에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가 아직 30세도 안 된 젊은 작가라니, 아! 그래서 이런 당돌한 글을 쓸 수 있었구나!' 하고 비로소 씁쓸하게 이해가 되었다. 인문학자들이 동물에 대해 쓰는 경우는 현재도 드물다. 자료도 빈약하고 왠지 변방으로 취급되는 지극히 고루한 인문학적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동물, 20대는 되게 하나의 라인으로 통한다. 10대부터 30대 현대 여성들은 누구보다 동물들을 좋아하고 그와 관련된 보호 활동에 거의 앞장을 선다. 작가 역시 평상시 동물들을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상시에 나와 같이 여러 호기심이 발로했을 것이다.

난 동물을 좋아해! 그리고 한학을 연구해! 그런데 가끔 조선 시대 화가들이 동물을 그렸던 게 보여! 어느 시대에 보면 이솝 우화처럼 동물을 비유해 권선징악을 표현한 글들도 많이 눈에 띄어! 왜 그들은 천하게 여기는 동물들을 그리고 썼을까? 그들이 그 동물들을 관찰하고 쓸 때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 의문, 나 역시 머리에 바람이 들어올 여유만 있다면 함께 연구하고픈 주제였다.

솔직히 난 유학자들이 자기 연민, 정치에 대한 철학, 동물에 빗댄 은유에 대해 쓴, 이 책에도 여러 편 인용한 문장들이 머리에 각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 느낌들은 알 것 같다. 이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졌고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측은지심이었다고, 곤충 같은 동물이라도 그 움직임에 감탄하고, 자연의 정언 명령에 따라 각자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순수성에 빠져들고 그 공허하지만 편안한 무념무상의 세계를 부러워하고 하는 마음을. 작가는 조선 중기 실사구시의 시대에조차 정조에게 요상한 문체라고 혼난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같은 실학자의 문장을 많이 인용했다. 아마도 그와 닮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이제 우리나라 역사 시대의 짧은 한 단락의 소중한 부분을 노크했을 뿐이다. 이런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이 좀 더 지평을 넓혀서 내가 잠깐 언급했던 선사 시대의 동물, 삼국 시대의 동물, 고려 시대의 동물도 좀 조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은 아마도 수사반장의 미제 사건보다 더 어려울 것임을 잘 안다.

대신 알기에 작가처럼 젊고 참신하고 관심이 많은 이가 찾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동물들 중 늘 애용하는 시를 한번 읊어본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한 쌍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네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왕의 '황조가'.

(최종욱 수의사는 광주우치동물원에서 동물을 돌보고 있습니다. <달려라 코끼리>(반비 펴냄), <동물원에서 프렌치키스하기>(반비 펴냄) 등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최지원은…

▲ 최지원 <유학자의 동물원> 저자. ⓒ알렙
청소년 시절 별 뜻한 바 없이 소위 홈스쿨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다. 고당(古堂) 선생님 문하에서 1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정규 과정으로는 상지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즐겨보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는데,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래와 대왕오징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재 델라웨어 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 '언어학과 인지과학'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데, 이 책에서 드러났듯이 사람이 구태의 습관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생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려는 공부 기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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