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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파리를 연민하고 호랑이를 혐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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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파리를 연민하고 호랑이를 혐오하다

[유학자의 동물원 ②] 동물 관찰기

조선 시대 '선비'와 '동물'은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의복을 갖춰 입은 다음에 꼿꼿이 앉아서 유학 경전을 읊는 그들이 하찮은 미물인 동물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유학자 가운데 하나인 이익은 "고기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의 물음"을 들으며, 육식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체계가 잡힌 '동물권'을 둘러싼 서양 철학의 관심을 이미 수백 년 앞서 선취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동물행동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동물을 치밀하게 관찰하게 또 세밀하게 기록했죠. 소나 말 같은 가축은 물론이고 물고기, 날짐승 심지어 벌레도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동물 세계에서 인간 세계의 모습을 보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죠.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동물의 세계.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당기는 이 주제를 재기발랄한 젊은 학자 최지원이 파헤쳤습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동물덕후'였던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공부했고, 그 결과를 이렇게 책으로 묶었죠.

자, 이제 이 흥미로운 책을 직접 읽어볼 시간입니다. <프레시안>과 알렙 출판사는 <유학자의 동물원>을 먼저 읽은 네 명의 독후감을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차례씩 연재합니다. 철학자, 수의사, 사학자의 흥미로운 독후감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두 번째 독후감의 주인공은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연암서가 펴냄)를 펴낸 김성한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입니다.

조선 선비, 동물을 관찰하다

▲ <유학자의 동물원>(최지원 지음, 알렙 펴냄). ⓒ알렙
<유학자의 동물원>은 매우 특이한 책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동물을 관찰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러한 내용을 단순히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면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 고유의 관점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으며, 이러한 관점이 단지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관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삶의 지혜를 제시하는 데에까지 뻗쳐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두루 담고 있음으로써 책은 말 그대로 융합적 태도를 구현하고 있다. 다른 모든 장점을 차치하고라도 오직 이러한 태도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만 책을 읽어도 독자들은 적지 않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세상은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갔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남긴 글들 또한 대체로 인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수하게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만 쓰인 글들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드문 편이다. 이는 국내의 사정도 다를 바 없었는데,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이 동물에 관심을 갖고 쓴 글이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데, 책은 이러한 생각이 잘못이며, 우리가 동물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책에는 우리에게 친근한 애완동물인 고양이에서부터 우리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소, 돼지, 닭, 심지어 우리를 귀찮게 하여 해충이라 일컬어지는 모기와 파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글은 주로 이익, 이덕무, 박제가 등 조선 유학자들의 것인데, 저자는 그들의 글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먼저 저자는 원전을 인용해 이러한 유학자들의 서술과 생각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를 동양학적 해석의 지평을 이용해 풀어내고 있는데, 만약 이러한 풀이가 고전에 대한 단순 해설에 그치고 있다면 동물에 대한 유학자의 설명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는 있어도 책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진화생물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오늘날의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지식을 넘나들며 해설의 생동감과 흥미를 강화하는데, 이러한 설명과 해설은 책에 실려 있는 선조들이 그린 동양화의 이미지와 대비를 이루면서 책에 대한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읽다 보면 유학자들의 동물들에 대한 서술이 얼마만큼 정확성을 담지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비록 저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주변적인 해설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잃은, 형제들을 돌보는 병아리 이야기라든가 새끼를 잡아간 솔개에게 복수를 하고 결국 자살하는 원숭이 이야기 등은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동물들에 대한 유학자들의 서술이 과학성을 결하여 증거 자료로서의 가치를 갖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관심사에 대한 초점에서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시 말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유학자들은 동물의 습성이나 특성을 과학적으로 정치하게 서술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며, 많은 경우 이보다는 동물들의 모습이나 행동, 그리고 특징 등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나 의의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유학자들 중에는 동물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묘사에 초점을 맞추려 하는 인물들도 분명 있고, 저자는 이들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나의 느낌은 유학자들이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 치밀하게 서술하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지식보다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가령 그들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으로부터 자신과 인간, 그리고 세상에 숨겨져 있는 이치를 발견해 보고자 했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을 얻어내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동물들에 대한 처우 방식에 시사점을 얻거나 이런저런 철학적인 고민을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이처럼 그들은 "크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성가시고 집안을 더럽히는 파리 앞에서 도리어 죄송함을 느끼고, 오히려 용맹하고 신령해 보이는 호랑이를 혐오스럽게 여겼다"와 같은 생각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동물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경우 동물들이 갖춘, 있는 그대로의 특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등한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이에 대한 관심으로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사실을 어느 정도 왜곡하는 경우마저 있었을 것이다.

어쨌건 이러한 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한데, 저자는 이 모든 내용들을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의 또 다른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낸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이들 자료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 틀은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기계의 숙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는 저자에 따르면 육체가 에너지로 삼는 '먹을 것'과 마음이 에너지로 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다. 자신이 존엄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작동 원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간이 이러한 원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언뜻 보았을 때와 달리 인간은 인간 아닌 동물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거꾸로 동물 또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가 희석되고, 반대로 동물이라고 굳이 인간보다 못하다고 비하해야 할 이유도 없음을 의식하게 된다. 다소 거칠게 보았을 때 인간과 동물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으며,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취함으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만의 인간과 동물에 대한 독특한 해석, 그리고 틈틈이 제시하고 있는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지혜로운 삶과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태도를 통해 독자들은 과거 유학자들의 지혜로운 생각들에 더해 또 다른 유학자이자 과학자인 저자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다른 방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성한 교수는 숙명여대 의사소통센터에서 재직 중입니다.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 <어느 철학자의 농활과 나누는 삶 이야기>(연암서가 펴냄) 등의 책을 펴냈고,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연암서가 펴냄)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최지원은…

▲ 최지원 <유학자의 동물원> 저자. ⓒ알렙
청소년 시절 별 뜻한 바 없이 소위 홈스쿨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다. 고당(古堂) 선생님 문하에서 1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정규 과정으로는 상지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즐겨보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는데,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래와 대왕오징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재 델라웨어 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 '언어학과 인지과학'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데, 이 책에서 드러났듯이 사람이 구태의 습관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생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려는 공부 기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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