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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고양이의 도둑질 습관 고치는 방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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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도둑고양이의 도둑질 습관 고치는 방법이라니!"

[유학자의 동물원 ③] 유학과 박물학

조선 시대 '선비'와 '동물'은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의복을 갖춰 입은 다음에 꼿꼿이 앉아서 유학 경전을 읊는 그들이 하찮은 미물인 동물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유학자 가운데 하나인 이익은 "고기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의 물음"을 들으며, 육식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체계가 잡힌 '동물권'을 둘러싼 서양 철학의 관심을 이미 수백 년 앞서 선취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동물행동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동물을 치밀하게 관찰하게 또 세밀하게 기록했죠. 소나 말 같은 가축은 물론이고 물고기, 날짐승 심지어 벌레도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동물 세계에서 인간 세계의 모습을 보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죠.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동물의 세계.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당기는 이 주제를 재기발랄한 젊은 학자 최지원이 파헤쳤습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동물덕후'였던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공부했고, 그 결과를 이렇게 책으로 묶었죠.

자, 이제 이 흥미로운 책을 직접 읽어볼 시간입니다. <프레시안>과 알렙 출판사는 <유학자의 동물원>을 먼저 읽은 네 명의 독후감을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차례씩 연재합니다. 철학자, 수의사, 사학자의 흥미로운 독후감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 독후감의 주인공은 손꼽히는 한국 과학사, 의사학 연구자 신동원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입니다.

관찰과 궁금증

▲ <유학자의 동물원>(최지원 지음, 알렙 펴냄). ⓒ알렙
'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100여 개의 관찰기로부터 이야기가 풀린다. 유학자들의 자연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궁금증이다.

왜 어떤 노루는 이리를 피하는 데 성공하고, 어떤 노루는 실패하는가? 사람이 육식으로 삼을만한 동물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하는가? 인간과 짐승과 초목, 무생물은 모두 친족일까 아닐까? 달세계라고 생명체가 없을까? 이 책의 1부 '유학자, 동물원을 가다'를 수놓는 질문들이다.

유학자의 관찰과 궁금증은 계속 이어진다. 도둑고양이의 도둑질을 고치기 위한 방법, 주인의 작대기를 계속 맞아가면서도 맛있는 모이에 덤벼드는 닭의 행태, 무의도식 일삼는 여왕벌에 봉사하는 일벌의 질서, 애지중지 기르던 비둘기가 죽자 구워 먹은 소년의 행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코뚜레 뚫린 채 죽을 때까지 밭 갈다가 도살되는 조선소들의 억울함, 자식 잃은 상실감에 자살한 원숭이, 어미 죽자 동생 병아리를 어미처럼 돌보는 누나 병아리, 코로 소리를 듣는 소 등등. 이런 질문이 2부 '너와 나를 먹여 살리는 동물원의 정치학', 3부 '생명의 억하심정', 4부 '인간이라는 미신', 5부 '인간, 동물이 설계한 인공지능'을 엮는다.

<유학자의 동물원>을 읽노라니, '오! 조선 선비들이 이렇게 흥미로운 동물 관찰을 했구나!'라는 놀라움이 첫 인상이다. 세세한 내용의 충실함이나 그 적절함을 논하기에 앞서 전례 없는 이런 사례 제시만으로도 성공이다. 더 나아가 독자는 이제 유학자가 남긴 수천, 수만의 자연 관찰 사례들에 궁금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관찰과 해석

각각의 관찰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100여 개의 장면이다. 대체로 저자는 각 장면을 길게 소개하며 각각에 대해 해설한다. 각 장면은 거의 모두가 다른 텍스트에서 추린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 곳이 펼쳐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를 읽고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음미해 가면서, 독자 자신의 상상을 펼쳐보는 방식의 독법이 통한다.

각 에피스드에 나타난 유학자의 관찰은 그 무엇인가를 발화한다. 노루도 인간처럼 욕심은 물론 자제심과 경계심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이 개체마다 차이를 지닌 개성적인 존재라는 것. 도둑고양이에게 음식을 배불리 먹인다면 인간 것을 훔쳐 먹는 도둑의 습성을 버리며 쥐를 잘 잡는 고양이로 거듭난다는 것. 주인의 작대기질보다 더 근본적인 어떤 것에 대한 닭의 호오가 존재한다는 것. 여왕벌과 일벌 사이에 군신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 기르던 가축을 먹을 때에는 미안한 감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 원숭이도 자식 걱정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고귀한 품성을 지녔을지 모른다는 것. 병아리도 피붙이를 알고 형제의 정을 나눈다는 것. 소가 코로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 것처럼 다른 동물의 지각과 감각을 인간이 함부로 단정 짓지 못한다는 것 등등.

해설자는 그런 관찰의 타당성 여부와 그 도덕적인 함의를 논변한다. 저자의 해설은 자신의 유학 지식에 국한하지 않고, 진화론, 진화심리학, 동물행태학, 동물 철학, 뇌철학 등의 지식을 활용하면서 진행된다. 흥미롭게도, 이런 해설을 하면서 저자는 이(理)와 기(氣), 사단칠정, 태화(太和) 같은 거창한 개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책의 구성과 저자의 생명관

저자는 이 책을 유학자의 동물 관찰기 에피소드의 집합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각각의 관찰 장면을 연결 지어 한 장(章), 한 장을 구성하고, 더 나아가 책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포괄하며, 궁극적으로 "습성이 천성"이라고 유학자 동물원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저자가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결론 마지막 부분에 정리되어 있다.

"벌레, 온갖 동물들, 그리고 사람은 자연의 도구다. 동물은 유전자와 자연 선택의 역사가 빚은 하드웨어에 종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아의 역사에 종속된 노예이기도 하다.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온갖 잡다한 역사적/개인적 기억과 습관을 나르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벌레나 짐승은 (욕망과 습성에 좌우되는 기계라는) 자신의 숙명을 모르며, 오직 인간만이 이런 숙명을 알고 "자기 방에 나와 다른 방을 구경할 수 있다. 바로 다른 짐승의 방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벌레, 고양이, 새의 방을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며 기계의 숙명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유학자들이 말하는 '습성이 천성이 되는' 상태이자 인간성이라는 기술의 한 방법이다."(340~341쪽)

조선 시대 유학은 소당연을 따지는 성리학과 소이연을 따지는 박물학 두 갈래로 발전해 왔다. 유학자는 당연히 양자를 분리해서 보지 않았다. 성리학은 격물로 얻은 지식을 품어 우주, 자연과 인간세계를 한 통으로 이해하려고 했으며, 박물학은 해와 달, 오성과 같이 큰 존재나 새·짐승·물고기, 벌레, 미물 등 모든 곳에 성리학적 질서가 관통해 있음을 읽어내고자 했다. 현대의 학자는 양자를 함께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유학 사상 논의는 관념화로 점철되고 박물학 논의는 시대와 사상이 거세된 자연과학적 요소만 골라 추려 해석하기에 바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양자의 동시 고찰을 회복한 데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책 구성의 완성도가 저자의 의욕을 따라주지 못한다. '인간을 비롯한 짐승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호오(好惡)에서 결정된다,' '인간과 짐승은 욕망과 습성에 좌우되는 기계다,' '동양의 자연관을 유기체적이라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등 저자가 주장하는 메시지는 크고 강하지만 정교함과 섬세함이 떨어진다. 뽑힌 사례들은 너무나 긴 시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의 텍스트에서 구미에 맞는 것만 임의로 뽑힌 혐의가 짙다.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이 양측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아슬아슬하게 커버하고 있다.

(신동원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소장은 손꼽히는 한국 과학사, 의학사 연구자입니다.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의약생활사>(들녘 펴냄),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역사비평사 펴냄), <호환 마마 천연두>(돌베개 펴냄)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최지원은…

▲ 최지원 <유학자의 동물원> 저자. ⓒ알렙
청소년 시절 별 뜻한 바 없이 소위 홈스쿨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다. 고당(古堂) 선생님 문하에서 1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정규 과정으로는 상지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즐겨보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는데,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래와 대왕오징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재 델라웨어 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 '언어학과 인지과학'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데, 이 책에서 드러났듯이 사람이 구태의 습관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생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려는 공부 기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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